북한의 ‘국가적⋅계획적⋅과학적 자력갱생’의 허상
양운철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ucyang@sejong.org
제8차 당대회에서 다시 강조된 자력갱생
2020년 북한은 코로나19 사태, 경제제재, 태풍피해의 삼중고를 겪으면서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김정은은 2020년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북한 주민들이 전쟁 대신 번영할 수 있는 최강의 군사력을 비축했기 때문에, ‘부흥번영의 이상 사회를 최대로 앞당겨 실현할 수 있는 방략과 목표를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따라서 2021년 1월 초에 개최된 제8차 당 대회에서 과감한 개혁을 포함한 경제 부흥책이 발표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제8차 당대회에서는 간부들의 무능과 눈치 보기에 대한 비난과 함께 경제개혁보다는 사회주의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교시가 강조되었다. 김정은은 구체적으로 “새로운 전망 계획 기간의 자력갱생은 국가적인 자력갱생, 계획적인 자력갱생, 과학적인 자력갱생으로 발전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를 반영하여, 2021년 1월 29일자 노동신문은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의 문헌과 결정을 깊이 학습하자: 국가적이고 계획적이며 과학적인 자력갱생’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새로운 5개년 계획 기간의 자력갱생은 국가적인 자력갱생, 계획적인 자력갱생, 과학적인 자력갱생으로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하여 강조했다. 노동신문 기사는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든 국가와 인민에게 있어서 자력갱생, 자급자족의 기풍은 억대의 자금에도 비길수 없는 재부중의 재부이고 진할줄 모르는 전략적 자원이다.…오늘 우리 당이 자력갱생을 더 높이 들고나갈데 대하여 명백히 천명한 것은 우리의 주체적힘, 내적동력을 비상히 강화하여 객관적 조건의 유리함과 불리함에 관계없이 사회주의 건설의 획기적 전진을 이룩해나가려는 확고한 의지와 자신심의 표출이다”라면서 현재 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자력갱생이 절대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북한이 주장하는 국가적⋅계획적⋅과학적 자력갱생은 정교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 이론적 담론이기보다는 북한 주민을 압박, 독려하는 기존 정책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판단된다. 북한은 국가적인 자력갱생에 대해서는 “우리가 말하는 자력갱생은 결코 각 부문, 각 단위가 제가끔 자체로 살아나가는 자력갱생이 아니다.…개별적인 부문과 단위들이 국가적 이익은 안중에 없이 국가의 통일적인 지도와 통제밖에서 협소한 당면이익만 추구한다면 점차 우리식 사회주의의 존립의 물질적 기초인 자립경제토대가 약화되게 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북한경제의 모든 부문과 단위들이 우선적으로 국가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관련 생산과 경영활동은 국가의 통일적인 장악과 통제, 그리고 전략적인 작전과 지휘 밑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가의 자립적 발전 능력이 증가하는 것이 당이 요구하는 국가적인 자력갱생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자존심과 자강을 실현하기 위한 자력갱생은 마땅히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전략적 관리밑에 진행하는 중앙집권적인 자력갱생”으로 실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한이 강조하는 계획적인 자력갱생은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전략적 관리 아래 시행되기 때문에 부문별 시행이 아니라 국가의 계획에 따른 계획적인 자력갱생이 필수적이라는 논의로 귀결되어 진다. 따라서 계획적인 자력갱생은 국가적인 자력갱생을 전제로 한다. 구체적인 계획에 기반한 자력갱생은 실현가능한 계획에 의하여 시행되기 때문에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신문은 “국가적인 견지에서 경제사업을 진행하지 않으면 여러 단위가 같은 문제 해결에 로력과 자재, 자금을 투하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결국 사회적로동의 랑비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계획경제는 실패한 정책의 대표적 사례이다. 현재 북한에 필요한 것은 전향적 경제개혁을 통한 생산력 증대와 대외협력 강화를 통한 경제의 외부성을 확장하는 정책이다.
과학적인 자력갱생에 대해서는 현재가 과학기술의 시대임을 고려하여 “선진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의 투쟁기풍을 높이 발휘해나가야 그 어떤 어렵고 방대한 과업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국방과학부문에서 이룩한 자랑찬 투쟁 성과가 뚜렷이 증명해주고 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단위가 과학기술발전을 활용하여 ‘원료자재의 국산화와 재자원화’를 통해 당이 제시한 목표를 수행할 수 있어, 궁극적으로는 ‘자력부강과 자력번영’의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력갱생의 허구성
코로나 사태와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생산 침체와 외화 부족을 겪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내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정책이 ‘자립적 민족경제’의 틀 안에서 운용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이다. 이를 위해 생산 분야에서는 자급자족의 원칙을 적용하여 자원과 물자 부족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 한다. 주요 상품의 국산화와 함께, 수출상품이었던 지하자원을 내수용으로 활용하여 국내 생산을 늘리는 정책도 시행되고 있다. 북한은 “공화국은 자력갱생의 혁명적 원칙에서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함으로써 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경제적 봉쇄나 세계적인 경제파동에도 끄떡하지 않는 경제, 자체의 자원과 자체의 기술, 자체의 간부에 의하여 움직이며 다방면적으로 발전되고 최신기술로 장비된 강력한 국방공업과 발전된 경공업 그리고 현대적인 농업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주장해 왔다.
북한의 매체는 기존의 주체화를 내세운 자력갱생이 계획적 관리 방법 하에서의 전략이었다면, 국산화를 강조하는 자력갱생은 기업과 협동농장의 자율성이 대폭 확대된 시장적 관리 방법 하에서의 경제발전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다수의 생산 공장들도 중국산 설비와 자재 및 투자로 운영되는 실정이고, 시장에서도 중국 상품이 주로 판매되었고, 중국 인민폐가 상당 부분 유통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자력갱생 구호는 김일성 시대 이후 지금까지 강조된 실현 불가능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북한 주민들의 반응도 보도되었다.
이념적으로 자력갱생은 자국의 자원과 인민의 힘으로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을 완성하는 것이다. 김정은이 강조한 자력갱생은 지금까지는 주로 수입대체를 위한 지하자원의 개발과 경공업 제품 생산에서 일부 효과를 거두었다. 국산화를 위한 다양한 식료품, 담배, 화장품, 신발, 섬유제품, 생수, 가전제품, 핸드폰, IT제품 생산이 대표적 사례이다. 반면 주택이나 인프라 건설, 코크스와 수입 대체재처럼 자본이 필요한 부문에서는 강력한 행정명령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수입대체를 통한 외화 절약은 액수도 미흡할 뿐만 아니라 기술적 어려움도 많다. 예를 들어, 석탄으로 석유화학 제품을 대체하는 탄소하나 화학공업의 기술력은 아직은 미흡하고 전기소모량도 매우 높다. 이 같은 산업에서 자력갱생이 효과를 거두기는 요원하다. 특히, 북한 산업의 핵심인 중화학공업에 자력갱생의 원칙을 강제하는 정책은 이미 실패한 바 있다.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특정 산업에 대한 자력갱생 원칙의 적용은 기본적인 투입량과 산출량 비교가 나온 후에야 가능하다. 동시에 기회비용 문제도 고려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 자주 나타나는 전시성 건설은 효율성보다는 최고 지도자의 명령으로 시행되기 때문에, 비효율성은 높을 수밖에 없다.
북한의 자력갱생이 노력이 일부 자원개발이나 경공업 부문에서 성공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북한 산업의 핵심인 중화학공업은 대규모 자본투자 없이는 활성화가 힘들다. 매몰 비용(sunk cost)을 포함한 높은 초기 투자 비용, 감가상각의 가속화로 인한 추가 비용 소요, 전력과 원자재의 지속적인 공급 보장 등 현재 북한경제가 필요로 하는 발전 속도가 빠른 산업이 아니다. 북한이 계획경제 부문을 정상화시키려는 목적으로 4대 선행 산업부문(석탄, 전력, 철도·운수, 금속·기계 부문)의 성장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시장과의 협력이 없는 한 성장세를 달성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나마 지금까지 시장의 확산과 기업소법 제정 및 개선으로 돈주를 포함한 외부 투자자 유치가 달성되었고, 성공한 사례도 보도되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한다면, 국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자력갱생의 시도는 실패한 과거로 회귀하는 정책일 뿐이다.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 완성을 위해서는 특정 산업이나 기업소에 대한 국가의 선택과 집중을 통한 투자가 절대 필요하다. 자력갱생을 통해 일부 선도 산업과 기업소를 활성화하려 해도 북한경제 전반에 제공하는 파급효과 내지는 낙수효과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 이유는 현재 북한의 사회간접시설은 매우 낙후되어 있어, 국가가 제공해야만 하는 기반 시설의 개선은 상당한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전력 공급 능력도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렵다. 실제로 자력갱생 또는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소들은 대부분 평양, 남포, 함흥, 원산처럼 에너지 사용이 상대적으로 쉽고 우수인력이 포진해있는 산업단지가 지정된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
국가의 바람직한 역할은?
2021년 2월 11일자 조선신보는 ‘실효성이 높은 발전형 자력갱생의 체계화’ 기사에서 북한의 새로운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정책 방향은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전략적 관리 밑에 계획적으로 주도 세밀하게 진행하는 중앙집권적인 자력갱생을 실시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각 부문이나 단위들이 ‘각자도생’ 방식의 자력갱생에서 벗어나 국가의 통일적 지휘 아래 ‘발전형, ‘중앙집권적 자력갱생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에는 경제난으로 불가피하게 각자 살기 위한 자력갱생을 추구했지만, 이후 경제 전반에 무질서를 초래하게 돼 중앙집권적 자력갱생으로 선회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생존을 위해 시장 경제적 요소를 불가피하게 수용하며 중앙의 지휘보다는 기업과 기관의 자율성을 중시했으나, 이제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지휘와 통제가 힘을 잃고 각종 부작용이 생기면서 오히려 경제난을 가져오게 되었다는 논리이다. 신문은 이어서 “자력갱생하자고 계속 말은 해도 지난날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며 제재가 지속되는 속에서 자력갱생이 성과를 내기 위해 “과거의 것과 구별되는 자력갱생, 보다 개선되고 실효성이 높은 발전형의 자력갱생을 체계화, 제도화해 나겠다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북한 지도부는 자력갱생을 내세워 국가가 모든 경제 활동을 통제하려 하고 있다. 물론 이런 정책이 성공할 수는 없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다면, 북한경제는 다시금 북중 무역과 시장을 통한 부의 창출에 몰두할 것이다. 현재 북중 국경이 봉쇄되어 있지만, 지금이라도 생필품 수출입 관련 무역 활동은 허용하고 돈주를 비롯한 민간 자본을 유치해서 시장을 정상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 방법만이 북한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순기능을 담당하던 경제주체를 배제하고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할수록, 북한경제의 비효율성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자본과 기술이 절대 부족한 북한이 국가 주도로 단기간에 경제를 부흥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이미 북한경제에 시장화의 장점이 체화되었기 때문이다. 체제이행 과정에서, 동유럽과 러시아에서는 부족의 경제 문제를 결국에는 시장 가격기구를 통해 안정화시켰다. 자력갱생이 다시 강조된다면, 북한에서의 생산량은 감소할 가능성이 높고, 향후 심각한 인플레이션도 예상된다. 시장의 지원이 없는 계획경제의 완성은 이미 실패한 실험이다. ‘국가의 경제적 사업에 대한 통일적 지도 실현’과 같은 표현은 21세기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 시장과 개인 재산권 보장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개혁 대신 국가가 모든 책임을 주민에게 돌리는 자력갱생의 결과는 매우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와 당은 경제 행위에 대한 간섭 대신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공정한 게임의 법칙을 만들어 제공하고 관련 불법행위를 감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경제 후진국에서 지금의 경제 강국을 이루어 냈다. 한국 경험을 참고하여, 개인 사유권의 확대, 소규모 사유화 활성화, 동시에 남북한 경제협력 강화와 같은 보편적인 개혁과 후속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 경제정책의 대전환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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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의 오늘』, “자립적 민족경제,” http://www.dprktoday.com/index.php?type=101&g=1&no=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