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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이후 [정세와 정책 2021-8월호-제30호]

등록일 2021-08-02 조회수 7,688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이후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in@mofa.go.kr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추이

 

항구적 자유작전’ (Operation Enduring Freedom)이라는 이름으로 200110월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이하 아프간) 전쟁이 20년 만에 막을 내린다. 지난 78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미군의 아프간 전면 철군을 831일까지 완료할 것임을 천명했다. 당초 제시된 9.11 20주년 기념일에 맞춘 철군 계획보다 다소 앞당겨졌다. 이미 72일 아프간 주재 바그람 미 공군기지에서 주요병력 전격 철군이 이루어졌던 터였기에 현지에서는 미군 철군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 나토군 철군도 곧 완료될 계획이다.

 

21세기 내내 지속되면서 미국 역사상 최장 기록을 세운 전쟁이다. 지난 20년간 미군 2,448명이 목숨을 잃었고 20,722명 부상당했다. 1조 달러가 넘는 전비가 들었다. 미국이 막대한 희생과 비용을 감수하고도 수행한 이 전쟁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일차적으로 9.11의 주범 알카에다 거점 제거 및 관련 테러리스트 검속이었다. 이 목적은 달성했다.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킴으로써 아프간의 테러기지화를 막았다. 알카에다는 거점을 상실했고 이후 형해화 수순으로 들어갔다. 테러리스트 사살과 검속이 이어진 끝에 마침내 오사마 빈라덴까지 제거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권력을 잃은 탈레반은 게릴라 전사들로 변해 친미 카불 정권을 위협했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이대로 병력을 철수할 경우 탈레반이 재집권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역내 불안정이 지속되면서 미국의 초기 전쟁 목표는 테러세력 제거에서 아프간의 안정화 및 국가건설 (nation-building)로 커졌다. 테러와의 전쟁과 맞물린 미국의 대 중동 정책은 민주주의 수립으로 수렴해갔다. 아프간 정책 역시 국제사회의 정권교체 개입과 안정화 관여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실현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은 2009년과 2017년 두차례에 걸쳐 아프간에 병력을 증파 (surge)하기도 했다.

 

증파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안정화 및 국가건설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탈레반의 발호는 지속되었고 탈레반은 남부 거점은 물론 반탈레반 성향이 강한 부족들이 분포한 아프간 북부 동맹 지역도 실질적으로 장악했다. 20217월 현재 카불, 칸다하르, 마자리 샤리프, 헤라트 및 쿤두즈 등 주요 5개 도시 및 일부 도시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방은 탈레반의 영향권 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나토 전회원국이 개입했음에도 20년 동안 반정부 단체 하나 무너뜨리지 못한 전쟁이 된 셈이다. 결국 미국과 탈레반은 평화협상을 시작했고 철군이 가시화되었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 배경

 

첫째, 전쟁 피로감 및 이에 따른 반전 여론 때문이다.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의 여파는 컸다. 전면전을 통해 정권을 붕괴시키기는 쉬워도 그 자리에 국가를 세우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미국인들은 깨달았다. 알카에다를 궤멸시켰다지만 더 극악한 ISIS (이슬람 국가)가 나타났다. 간신히 진압했지만 유사 폭력적 극단주의는 역내외로 확산했다. 이라크에서는 이란의 영향력이 커졌고, 아프간에서는 탈레반이 창궐했다. 전쟁 회의론, 반전 여론이 퍼지게 된 이유다.

 

둘째, 대중국 전략 경쟁의 일환이기도 하다. 중국의 부상이 가져다주는 압박이 컸다. 지난 20년 미국의 힘을 중동과 아프간에 투입하며 소모전을 벌이는동안 중국은 부상했고, 이를 견제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퍼졌다. 이에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 재균형, 소위 피봇 투 아시아를 내세우며 10년전 이라크 주둔 전투병력을 철수 시켰다. 같은 맥락에서 바이든 정부는 아프간 철군을 통해 중국 견제에 집중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셋째, 아프간 정치 문화에 대한 뒤늦은 현실 인식의 결과다. 종족 및 부족 네트워크와 종교가 결합된 아프간 정치 문화는 독특하다. 외부 세력이 들어와 세운 중앙정부가 전국단위로 힘을 발휘하며 민주화을 이루리라 기대했던 것은 오류였다. 미국은 20년의 전쟁을 통해 이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온 카불 정부는 여전히 취약하고 탈레반은 발호하고 있다. ‘제국의 무덤이라는 아프간의 별칭이 미국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넷째, 전술적인 한계도 있었다. 개전 초기 압도적 무력으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까지는 쉬웠다. 그러나 이후 안정화 작전이 문제였다. 지상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미군과 나토군은 공습을 위주로 전쟁을 수행했다. 협곡지대에 단위부대로 산개해 게릴라전을 펼치는 탈레반 세력을 공습으로 소멸시키기란 불가능했다. 드론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부수피해 (collateral damage)도 폭증했다. 그렇다고 전면적 지상작전을 펼칠 게재도 아니었다. 궁극적 승리를 보장하기 만성적 갈등으로 변해갔다. 여기에 나토군 병참 루트인 파키스탄의 일부 수뇌부가 탈레반을 비밀 지원하는 등 상황은 더욱 꼬였다. 스티븐 월트 교수가 이 전쟁은 나폴레옹, 클라우제비츠, 패튼 그리고 손자가 개입해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극단적인 부정 평가를 내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철군까지 오래 걸렸을까? 역설적으로 미국이 대국이기 때문이었다. 전쟁수행 여력이 뒷받침되었기에 전략적 이익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전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철군 결정이 불러올 정치적 후폭풍과 논란을 리더십이 부담스러워한 측면도 있다. 다니엘 엘스버그가 일갈했듯, 이길 수 없는 전쟁을 끝내는 대신, 지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택했던 베트남 전쟁의 묘한 데자부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이 고리를 끊기로 결정하고, 철군을 단행했다.

 

철군 이후 미국의 전략과 탈레반의 동향

 

우려가 작지 않다. 미군이 철수하고 나면 결국 탈레반이 정부군을 물리치고 아프간을 장악하리라는 예측이 중론이다. 1996년 탈레반의 극단적 이슬람 통치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비관적 전망이 뒤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군을 단행한 바이든의 아프간 전략은 무엇일까?

 

어차피 앞서 살핀 이유로 인해 미군의 무한 주둔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좌고우면 하지 않고 철군을 이행하겠다는 결의가 보인다. 그 배경에는 이른 바 대외 정책 3대 수단인 3Ds, 즉 방위력 (defense force), 외교 (diplomacy), 개발 (development) 중 외교 (개발)을 우선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문제는 아프간의 상황이다. 외교를 앞세우려면 정황이 안정되어야 하는데 탈레반 발호로 인해 향후 정국이 혼란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 철군 결정을 실수로 규정했다. 아프간의 황폐화 염려 때문이다. 내전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이런 우려 속에서도 철군을 결정한 이상 미국은 결국 탈레반의 변화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다. 탈레반과의 협상을 통한 미군 철수는 바이든의 위험을 감수한 승부수인 셈이다. 일단 탈레반은 스스로 변화했음을 공언하고 있다. 앞으로 책임있는 정파로 자리매김하겠노라 공언하고 있다.

 

실제로 리더십 내부의 변화가 있었다. 강경파 종교지도자로 탈레반을 이끌어 온 히바툴라 아쿤드자다 (Hibatullah Akhundzada)는 그간 시라주딘 하카니 (Sirajuddin Haqqani)를 신뢰하며 강경 투쟁 노선을 전개했다. 하카니 네트워크로 알려진 무장분파의 수장 하카니는 탈레반 내 극단적인 지도자로, 서열 2위였다. 그러나 서열 3위로 알려진 온건-협상파 모함메드 야쿠브 (Mohhammad Yaqoob)20205월 군사조직 지도자로 올라왔다. 탈레반 수장 아쿤드자다는 야쿠브의 노선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은 알카에다나 ISIS와는 달리 해외로 세를 확장하려 하지 않는다. 아프간에 집중한다. 자기 세력의 역내외 확산 대신 자국내에서 이슬람 공화국의 이념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집권 이후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국제사회 및 바이든 정부의 예측이자 기대이다.

 

탈레반이 집권하더라도 아프간이 정상적 국가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다. 동시에 이슬람 공화국의 정통성을 위해서 사우디 등 이슬람권 국가들의 인정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폭력적 극단주의 집단처럼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탈레반 지도부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현 아프간 재정의 50% 이상이 여성인권 등과 관련된 인도주의적 원조로 구성되어 있기에 집권을 꿈꾸는 세력이 이를 무시하고 폭력적 이념통치에 집착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원조를 통해 탈레반을 제어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출구전략이 생각처럼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탈레반이 변화하지 않았고 최근의 대화는 일종의 기만전술이라는 분석이다. 권력의 속성상 공존과 타협대신 배타적 권력 독점을 추구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원리주의적 성향을 가진 탈레반은 더욱 그러하다. 미군과 나토군의 부재는 곧바로 아프간 정부의 몰락과 탈레반의 집권으로 이어지고 이는 중세적 이슬람 국가의 부활로 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더 우세한 이유다.

 

역내외 역학관계 전망

 

미군 및 나토군의 철군은 단순히 아프간 내부 정세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지정학적 형국과 맞물려 새로운 갈등선들이 나타날 조짐이 보인다. 더불어 글로벌 신안보 이슈도 새롭게 부각될 전망이다.

먼저 중국의 경계가 높아지고 있다. 아프간-중국 접경 76Km 구간이 신장 자치구와 연결되어 있다. 미군 철군으로 아프간의 불안정성이 증대되면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 (ETIM)의 위구르 분리주의 독립운동이 발화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바이든 정부의 신장위구르 인권문제 제기와 맞물려 중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지점이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712일부터 16일까지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아프간 북부 접경 3개국을 방문, 향후 안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둘째, 역내 대표적 분쟁인 인도와 파키스탄간 갈등이 아프간에서 드러날 기세다. 친파키스탄 세력인 하카니를 물리치고 야쿠브가 득세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는 인도 친화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친파키스탄 하카니를 제어하려는 포석 때문이다. 인도 역시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중이다. 파키스탄은 이를 좌시할 수 없다. 향후 정세 변화에 따라 양국의 개입이 가시화될 경우, 아프간은 자칫 카슈미르 분쟁의 확장판이 될 수도 있다. 한편 신장위구르 문제와 별개로 중국은 파키스탄-아프간 관계를 예의 주시하면서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CPEC)도 챙길 것이다. 일대일로 구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셋째, 중동의 세력 관여도 눈에 띈다. 특히 터키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군 및 나토군 철군 이후 현지 상황 안정 유지의 최대 관건인 카불 국제공항 방호를 터키군이 맡겠노라 자임했다. 현재 미국과 협상 중인데 향후 아프간을 투르크 민족주의 확장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 아닌가하는 분석이 뒤따른다. 이란 역시 아프간 정세 변화에 고민이 깊다. 그동안 이란은 2001년부터 자국 동부 아프간에 미군 지상군이 대규모로 주둔하는 데 대한 부담이 컸다. 이란에게 큰 위협이었고 따라서 친미 카불 정권과는 거리를 두었다. 반면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탈레반을 소극적으로 지원해왔다. 그러나 향후 탈레반이 아프간내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경우 이란의 친탈레반 접근은 비례하여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서는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넷째, 아프간이 글로벌 신안보의 핵심 쟁점 지역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아프간마약 문제는 국제사회의 상시적 관심사라 할 수 있다. 더 큰 사안은 난민 문제다. 탈레반 통치 시절 공포의 기억을 가진 주민들이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이란을 거쳐 터키에 입국한 아프간 난민들이 30만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후 더 많은 난민들이 타지키스탄, 이란 국경을 넘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테러리즘 확산과도 연계된다. 현재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ISIS 호라산 지부 (ISK) 등 폭력적 극단주의 테러가 더 성행할 수 있다.

 

이처럼 미군 철군 이후의 아프간은 불안감과 함께 국제사회에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탈레반은 변화할 것인가? 평화를 함께 견인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이와 더불어 역내외 역학관계의 복잡화, 글로벌 경쟁 구도의 중첩 특히 미국이 빈자리에 중국이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비전통안보의 다양한 쟁점들이 겹치면서 국제정치사상 미증유의 혼돈을 발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제 아프가니스탄은 제국의 무덤이 아니라 글로벌 난제의 시험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