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되는 미중관계와 향후 중국의 대미정책 변화 전망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sunnybbsfs@gmail.com
미국이 중국에 대해 무역·기술·군사·인적교류 등 전방위 압력을 가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양제츠(楊潔篪) 정치국 위원, 왕이(王毅) 국무위원겸 외교부장, 그리고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가 며칠 간격을 두고 이구동성으로 미국에 대해 양국관계의 ‘정상 복귀’를 원한다는 공개 메시지를 천명한 것이 주목을 받고 있다.
8월 7일 양제츠는 미중관계에 관한 글을 관영 신화통신사에 게재했다.1) 눈길을 끄는 점은 이것이 무려 6400여자에 달하는 장문이라는 것이다.2) 길이만큼 구체적 내용이 담겼고, 무엇보다 시진핑에게 외교정책을 직접 보고하는 인물에 의해 쓰여졌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양제츠는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이다. ‘중앙외사공작위원회’(中央外事工作委員會)은 중국에서 외교정책 최고결정기구다. 양제츠를 ‘외교 총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다.3)
양제츠는 글을 미중 수교 41년의 역사를 연 닉슨-마오쩌둥 (毛澤東) 회담의 역사를 반추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간의 미중 관계를 역사적 맥락에서 조목조목 회고하였다. 핵심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70년대 중미 관계 정상화의 과정부터 양국 관계는 쌍방이 ‘서로 다른 사회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공통된 인식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 즉,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체제의 국가’라는 것을 미국이 애초부터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지난 40여 년간 미중이 잘 지내왔는데 왜 미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서서 새삼스럽게 중국의 정치체제를 문제 삼느냐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다른 고위 외교 관료들의 발언에서도 반복되는 내용이다.
둘째, 미중 수교 이후 지난 41년간 양국 교역이 수교 초에 비해 200배 이상 늘었다는 점을 포함한 쌍방 무역 교류 증가를 수치를 들어 상세히 설명하였다. 교류와 협력이 양국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셋째, 중국인민의 발전권(發展權)을 박탈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는 '헛된 꿈'(白日做夢)이다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미국이 막을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다. 양제츠는 또한 전 세계가 코로나 사태를 맞은 시기에 중국 경제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중국 경제의 강인성과 잠재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다면서, 이는 중국공산당의 영도와 중국식 사회주의 덕분이며, 중국은 이 발전노선을 통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주장한다.
넷째, 미국이 중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그는 대만, 홍콩, 티벳. 신장(新彊) 등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중국정부가 국가주권, 안전, 발전의 이익 (發展利益)을 수호하겠다는 결의는 확고부동하다고 역설한다. 시진핑이 자주 강조하는 ‘핵심이익’에 있어서는 중국이 양보하지 않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양제츠는 미중 양국이 '적'이 될 이유가 없고, 중국은 양국관계 정상화를 원하며, 그렇게 하는 것은 미국의 국가이익에도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양제츠의 글은 무역전쟁으로 시작된 미중 갈등이 2년을 넘어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시점에서 중국정부가 내놓은 대미 외교정책의 가장 권위 있는 시각을 담고 있다.
“미중관계: 수교이후 가장 엄중한 국면”
비슷한 시기인 8월 5일 왕이 외교부장은 관영 신화통신사 기자의 질의에 응답하는 형식을 빌어 현재 미중갈등에 관한 중국의 입장을 밝혔다.4) 그는 우선 현재 미중관계가 수교 이후 ‘가장 엄중한 국면’ (最嚴峻的局面)이라고 진단했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미중 ‘신냉전’에 대해서는 반대한다고 하면서 그는 “중국은 소련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중국은 미국을 대신해 '제2의 미국' (第二個美國)이 될 야심이 없다고 주장한다.
왕이 부장이 제시하는 미중 타협안은 미중 양쪽 모두 상대방의 정치제도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이다. "변화시킬 필요도 없고, 변화시킬 수도 없다" (沒有必要也不可能去改變對方)고 주장한다. ‘디커플링’ (脫鉤)에 관해서는 그런 식의 접근방법이 ‘연목구어’ (緣木求魚)식 해결책이며 궁극적으로 미국기업에게 오히려 더 큰 피해가 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왕이 부장은 구체적으로 미중관계 관리에 네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첫째, 서로 간에 마지노선 (底線)을 정하여 충돌을 피한다. 둘째, 미국이 중국을 ‘개조’할 수 있다는 환상(幻想)을 버려야 한다. 셋째, 디커플링을 추구하지 않는다. 넷째, 제로섬게임 (zero-sum game) 태도를 버리고 국제사회에서 미중이 공동 책임을 진다.
한편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도 7월 30일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Politico)에 기고문5)을 냈다. 그는 중국이 여전히 중미관계 ‘정상궤도 복귀’를 원한다고 밝히면서, 이러한 ”중국의 미국 정책은 변함이 없다“고 역설했다. 또한 최근 발생한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의 폐쇄는 미국이 먼저 폐쇄한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에 대한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한 정당한 대응일 뿐이라며, 중국은 여전히 선의와 성의를 가지고 중미관계를 발전시킬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올바른 궤도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hope the U.S. will return to the right track)고 했다. 더불어 추이 대사는 8월 13일6) 미 브루킹스 연구소가 주관한 웨비나에서 현재 중미관계의 근본적인 질문은 “미국이 다른 역사, 문화, 정치체제를 가진 중국과 같이 살 준비가 되어 있는가’ 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제츠, 왕이, 추이톈카이 발언에 대한 평가
중국에서 외교를 담당하는 최고위급 세 사람이 같은 시기에 대미 메시지를 내놓았다. 우선 세 사람 모두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피하면서 미중관계 악화의 근본적 원인은 미국 “일부정치세력 (一部分政治勢力)”이 중국에 대해 편견, 적개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에둘러 표현한 점이 눈에 띈다. 양제츠는 역사적 맥락을 짚으면서 협력을 강조했고, 왕이 부장은 중국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미국의 부조리’를 주로 짚었으며, 추이톈카이 대사는 워싱턴 현지에서 미국인들을 상대로 영어로 중국정부의 입장을 알리는 공공외교를 펼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즉, 세 사람이 같은 메시지를 내보내었지만 각자 강조한 내용과 염두에 둔 오디언스에 차이가 있다.
특히 미국 현지에 있는 추이톈카이 대사는 휴스턴 총영사관이 중국이 미국에 처음 설립한 공관임을 강조했다. 매년 양회(兩會) 기간 때마다 기자들과 질의시간을 갖는 왕이 부장은 다분히 중국 국내 오디언스도 감안한 듯하다. 특히 신화사 기자의 질문 자체가 중국이 잘한 점, 미국이 비판받아야 할 점, 공산당체제의 우월성 등, 이미 상정한 프레임에 의거해 대답을 유도하는 식으로 진행한 것은 주요 오디언스가 중국인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세 사람의 대미 메시지를 중국이 ‘유화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성급히 해석했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 같이 실상 그렇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중국 정부가 이들을 통해 내놓은 메시지가 대미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가 일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왜냐하면 왕이 부장은 문제의 미중관계 인터뷰를 내보내기 일주일전 7월 28일 프랑스 외교부 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에 대해 '만행' '난폭' '음모' '횡포' '국제질서의 최대 파괴자' 라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형용하며 거세게 비난했다.7) 그는 미국의 행동은 이미 국가 간 교류에 있어 ‘최소한의 예의’(最起碼的禮儀)나 국제 규범의 기본 마지노선조차 벗어난 ‘적나라한 강권 정치 (赤裸裸的强权政治)’고 한마디로 '무도한 횡포' (霸道)라고 주장했다. 즉, 미국에 대해서는 설득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다른 국가들에게는 신랄하게 미국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국’ 진영에 가담하지 않도록 유세(遊說)한 것이다.
중국 특유의 '화전양면(和戰兩面)' 전술도 여전하다. 미국과 협력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그렇지 않을 경우 중국은 미중관계에 ‘비바람’(風雨)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겁박도 같이 내놓는다. 또한 미국이 원하는 중국의 정치개혁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축하면서, 미국이 중국국민과 중국공산당 사이를 ‘이간질’ (drive a wedge) 하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그러한 시도는 ‘실패할 것’ (doomed to fail)이라고 경고한다. 양국관계의 정상궤도 복귀를 원한다면서도 정작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할 당사자는 미국이다. 중국이 개선할 점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 미국은 다른 국가와 무역분쟁을 일으키고 경제제재를 가하는 부당한 국가로 묘사되어 있는 반면, 중국은 개방, 포용, 상호협력을 강조해온 국가로만 묘사되어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중국 정부에서 외교담당 최고위직인 양제츠 정치국 위원, 왕이(王毅) 국무위원겸 외교부장, 그리고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중국대사가 동시에 대미 공개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중국의 대미 정책 변화의 신호탄이라기보다는 ‘여론전’ (public opinion warfare)의 성격이 짙다. 정치, 경제, 역사 모든 관점의 논리에서 미국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중국 입장과 논리의 정당성을 설득하려 했다. 중국 스스로의 핵심이익을 천명하면서 미국이 이러한 ‘레드라인’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각인시키려 했다. 미중간 충돌을 막자고 하였지만 전제조건으로 사회주의 중국정치체제를 미국이 인정하고 중국을 동급의 강대국으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미중이 ‘평등’한 관계라는 단어의 다양한 변용으로 표현했다. 이상에서 드러난 중국의 대미 인식은 2013년 캘리포니아에서 열렸던 오바마-시진핑 첫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이 제시한 ‘미중 태평양 분할론’ 인식에서 진화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 사회 중국인식의 ‘리셋’
미국이 40여 년 전 닉슨의 역사적 방문을 통해 중국과 관계 정상화할 때나, 20여 년 전 중국이 WTO에 가입할 수 있도록 조력을 제공한 것은 중국을 국제경제 체제 궤도 속으로 편입시키면 중국 역시 규칙에 기반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믿음때문이었다. 현재 미국사회는 그런 믿음이 잘못된 전제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미중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리셋'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기술적 디커플링을 포함해 군사적 대립과 비자 제한 등 인문사회 교류를 포함한 전방위적 ‘반중국’ 움직임으로 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미중관계는 미 대선이 끝난 후에도 양측이 계속 팽팽한 갈등과 긴장을 유지하면서 미중간 힘의 경쟁이 ‘우군 확보’라는 치열한 외교전으로 확대되는 양상이 가열될 것으로 본다. 최근 미중이 남중국해에서 대치 국면 중 중국이 실제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중국 관방언론은 중국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에 진입한 미군의 고고도 정찰기가 주한 미군 공군기지에서 날아왔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국은 미중갈등에 원치 않게 연루될 수 있다. 미중경쟁 심화 속에서 이상적인 한국의 최선책은 어느 한쪽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미중이 선택을 강요하는 작금의 현실이다. 한국은 현실은 직시하고 헌법정신에 의거해 한국이 지켜야 할 대원칙을 정하고, 정부 내에 사안별, 단계별 시나리오에 따른 대응 방안을 정교히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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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楊潔篪署名文章:尊重歷史 面向未來 堅定不移維護和穩定中美關係." 新華網, 2020.08.07.
2) 참고로 시진핑이 졸업한 칭화대학의 경우 기말고사 페이퍼 길이가 대개 6천자다.
3) 과거 명칭은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中央外事工作領導小組)다. 여전히 이전 명칭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4) "王毅就當前中美關係接受新華社專訪." 新華社. 2020.08.05.
5) Cui Tiankai, "China and the U.S. Should Reset Their Relationship," Politico, July 30, 2020, https://www.politico.com/news/magazine/2020/07/30/us-china-relationship-reset-387515
6) "Keynote Speech by Ambassador Cui Tiankai at the Webinar with Brookings Institution," Embassy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ugust 20, 2020, http://www.china-embassy.org/eng/zmgxss/t1807578.htm
7) "王毅:面对蛮横无理的美国,中国将作出坚定而理性的回应."
外交部. 2020.07.28, https://www.fmprc.gov.cn/web/wjbzhd/t1801745.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