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노동당 규약 개정과 김정은의 위상 변화 평가
[세종논평] No. 2021-02 (2021.01.13.)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
softpower@sejong.org
북한의 노동당 규약에 의하면 ‘당의 최고지도기관’은 당대회이다. 그런데 김정일 시대에는 당대회가 단 한 번도 개최된 적이 없었지만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당대회가 2016년에 이어 올해에도 개최되는 등 김일성 시대와 같이 당의 중장기적 노선을 발표하고 당 지도부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북한은 2016년 제7차 노동당 대회를 개최한 지 약 4년 8개월만인 올해 1월 제8차 당대회를 개최해 지난 5년간의 활동을 평가하고 향후 5년간의 정책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당 규약을 개정해 당의 최고직책명을 ‘위원장’에서 ‘총비서’로 바꾸고 김정은을 이 직책에 추대하면서 그의 유일적 지도체계를 더욱 강화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제8차 당대회에서 개정한 당규약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사회주의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했다고 밝혔다. 제7차 당대회에서 개정한 당규약은 “조선로동당은 선군정치를 사회주의기본정치방식으로 확립하고 선군의 기치 밑에 혁명과 건설을 영도한다.”고 규정했다. 김정일은 체제유지를 위해 인민대중보다 군대를 더 중시하는 선군정치에 의존했지만, 김정은은 군대보다 인민대중을 더 중시하는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기본적인 정치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것을 당규약에 명문화한 것이다.
로동신문은 이번에 개정된 당규약 서문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업 부분에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는 것을 명백히 밝혔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강위력(强偉力)한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선반도의 영원한 평화적 안정을 보장하고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앞당기려는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입장의 반영으로 된다.”고 설명했다.
제7차 당대회에서 개정된 당규약은 서문에서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몰아내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며 일본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을 짓부시며 사회의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하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언급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기존 당규약은 김일성 시대의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노선’에 따라 남한에서 미국을 쫓아내고 남조선혁명을 지원해 혁명에 성공한 정권과 연방제 통일을 실현한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북한의 이번 발표 내용을 보면 마침내 비현실적이고 실현불가능한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노선’을 당규약에서 삭제한 것으로 판단된다. 대신 북한은 핵과 미사일에 기반한 우월한 국방력으로 한반도 정세 안정뿐만 아니라 조국통일도 실현하겠다는 노선을 채택함으로써 향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더욱 고도화되어갈수록 남한에 대해 더욱 강압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당대회 개최 주기와 관련해 북한은 이번에 당규약 22조에 당대회를 5년에 한 번씩 소집한다는 내용을 추가하고 대회 소집에 관한 발표는 수개월 전에 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개정된 규약에서는 대회를 5년마다 개최하는 것으로 규정했으나 이 규정은 이후 30년 동안이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북한은 2010년에 개최된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대회 개최 주기에 대한 부분을 삭제했다. 그러다가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이 2016년에 제7차 당대회를 개최하고 5년만인 2021년에 제8차 당대회를 개최하면서 대회 개최 주기를 다시 규약에 추가한 것은 국정운영에 대한 김정은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또한 이번에 당규약에서 “당기관뿐아니라 정권기관, 근로단체, 사회단체를 비롯한 정치조직들의 책임자 직제가 모두 위원장으로 되어있는 것과 관련하여 최고형태의 정치조직으로서의 당의 권위를 철저히 보장할 수 있게 각급 당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 직제를 책임비서, 비서, 부비서로 하고 정무국을 비서국으로, 정무처를 비서처로 고치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북한은 김정은을 조선로동당의 새로운 최고직책인 ‘총비서’직에 추대했다.
북한은 2012년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조선로동당의 총비서로 ‘영원히’ 모시는 결정서를 채택하고 김정은을 ‘조선로동당 제1비서’라는 당의 새로운 최고직책에 추대했다. 그런데 북한은 제8차 당대회에서 제4차 당대표자회 결정서를 부정하고 김정은을 ‘조선로동당 총비서’직에 추대한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제7차 당대회에서 기존의 ‘비서국’을 ‘정무국’으로 바꾸었는데 제8차 당대회에서 다시 ‘정무국’ 체제를 폐지하고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의 ‘비서국’을 부활시켰다.
북한이 제4차 당대표자회 결정서 내용을 부정하면서까지 다시 과거의 총비서와 비서국 체제로 회귀한 것은 제7차 당대회에서 수립한 ‘조선로동당 위원장’ 체제에서 당조직의 각급별로 너무 많은 ‘위원장’ 직책이 만들어져 ‘김정은 위원장’의 권위가 충분히 서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북한이 다시 총비서와 비서국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이제 ‘총비서’ 타이틀은 오직 김정은에게만 사용되고, 지방당 조직의 책임자 직책명은 ‘위원장’에서 ‘책임비서’로 바뀌게 되어 김정은의 직책과 명확히 구별되었다.
제7차 당대회에서 기존의 비서국 체제를 정무국 체제로 바꿈으로써 정무국 내에는 약 10명 내외의 ‘부위원장’이 존재하는 기현상도 발생했다. 그런데 이번에 ‘2인자’ 인상을 주는 ‘부위원장’ 직책이 실무 책임자 인상을 주는 ‘비서’로 바뀜으로써 김정은의 권위는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핵심 간부들의 권위는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되었다. 결국 김정은이 집권 이후 ‘조선로동당 제1비서’와 ‘조선로동당 위원장’ 체제를 시험했다가 결국은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의 ‘조선로동당 총비서’ 체제로 복귀한 것은 총비서 체제가 최고지도자의 유일독재에 유리하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제8차 당대회를 계기로 북한은 당 규약에서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 방식과 김일성 시대의 대남혁명노선의 유산을 폐기하면서 강력한 핵무력과 더욱 공고해진 김정은의 통치시스템을 기반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을 주도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북한이 이번에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대남노선을 구체화한 이상 한국정부도 그에 상응하는 대북 및 외교안보 전략을 새롭게 수립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 『세종논평』에 개진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