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포커스

중국과 호주의 극한 대립: 한국에 대한 함의 [세종논평 No.2020-32]

등록일 2020-12-14 조회수 7,126 저자 김기수

중국과 호주의 극한 대립: 한국에 대한 함의

 

[세종논평] No. 2020-32 (2020.12.14.)

김기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kskim@sejong.org

 

중국과 호주의 갈등이 대단히 심각하다. 단순 이해 충돌을 넘어 감정대립 양상을 띠고 있다. 호주 군인이 어린 양을 껴안고 있는 아프간 어린이를 조롱하는 사진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자 호주 총리까지 나서 중국을 맹비난했다. 과거 수십 년 잘 지냈던 호주와 중국 관계가 최근 급속히 악화되면서 다음 질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념, 사고, 그리고 행동이 다른 국가들은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이 어려운가? 돈에는 표시가 없으므로 돈을 벌 수 있다면 상대를 가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 경제의 기본 논리다. 오랜 세월 호주와 중국의 밀월은 바로 이 논리에 기초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양국관계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련 붕괴 후 세계화라는 거대한 파고가 지구를 휘감자 이념 역시 함께 사라지는 듯했다. 활발한 경제 및 인적 교류를 통해 지구촌이 하나로 묶이는 것처럼 보였다. 2001년 거대한 사회주의 시장경제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위의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중국과 호주 관계에서도 그런 변화는 그대로 투영됐다. 2000년 호주의 수출에서 중국 수입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5%에 불과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2020년 그 비중은 40%로 높아졌다. 바로 이것이 비경제적 요소를 삼켜버린 세계화의 위력이다.

 

하지만 힘이 세진 중국이 과도한 팽창주의 정책을 추구하자 양국관계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팽창과 지배를 상징하는 중화주의의 부활은 중국이 주변국을 속국으로 취급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중 경제의존이 큰 주변국들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중화주의를 거스르는 국가들은 처벌에 직면했다.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금지, 노르웨이 연어의 수입금지, 한국에 대한 관광금지 등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동남아시아 국가 전체를 위협하는 남지나해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돈 벌어 힘이 생긴 중국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줬다.

 

호주 역시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는데, 올 초 코로나가 창궐하자 그것의 기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홍콩과 위구르 인권 탄압에 대한 호주 정부의 대중 비판도 이어졌다. 중국이 자랑하는 화웨이의 호주 내 5G 사업에도 제동이 걸렸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중국은 호주산 와인 수입을 금지시켰고, 보리 수입에 추가관세 80%가 부과했다. 호주의 다른 주요 대중 수출품에도 제약이 가해졌다. 하지만 호주 총리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보면 호주는 중국에 굽힐 의향이 전혀 없어 보인다: “(경제) 때문에 주권과 민주주의(이념 및 가치)를 타협하지는 않을 것이다.”

 

호주는 과연 중화주의에 심취한 거대 중국의 성향을 몰라서 중국을 자극했을까?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중국 책임론,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 홍콩의 중국 본토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 분리주의를 품고 있는 위구르의 움직임 등은 중국의 가장 아픈 부분이다. 호주가 그런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무튼 호주는 이들 문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렇다면 호주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호주 역시 한국과 함께 자고로 미국의 핵심 서태평양 동맹국이다. 따라서 호주도 한국이 만든 용어인 안미경중(安美經中) 외교정책을 고수했다. 그 결과 중국에 물건을 팔아 많은 돈을 번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의 호주에 대한 영향력 증대 또한 피할 수 없었다. 중국인의 대규모 투자로 부동산값은 폭등했고, 급기야 호주 사람들이 중국인 주인인 집에 살아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전개됐다. 많은 중국 유학생이 유입되면서 중화 및 사회주의 사상과 행동이 호주에 퍼져나갔다. 중국의 특징인 사회적 부패 또한 호주에 수입됐다. 과거에는 거의 없던 호주 정치인의 부패가 심심치 않아졌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의 거친 대중 공세가 가시화되면서 미국은 동맹국들의 동참을 요구했다. 돈은 과연 가치와 이념을 앞서는가? 가치와 이념이 왜곡되면 단순 돈 벌기의 의미 또한 떨어진다는 것이 호주의 자각이었다. 미국과의 연대는 단순 군사협력을 넘어 가치동맹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인권 국가 간의 상호 밀착은 다른 가치와 바꿀 수 없다는 것이 호주 국민과 정부의 결론이라고 보면 된다.

 

전 세계 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들은 아마도 호주가 개척한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이들의 생각 역시 호주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충격을 완화하는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는데, 바로 그것이 미국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중국과의 탈동조화(decoupling) 정책이다. 다른 국가에게는 대중 경제의존도 낮추기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2010년 일본과 중국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에 대해 영유권 분쟁을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 중국의 독점 생산물인 희토류의 대일 수출금지 조치가 단행됐다. 비축 물자로 버티며 호주 등 다른 국가의 희토류 수입을 적극 추진한 결과, 일본의 피해는 별로 없었다. 201097%에 달했던 중국의 전 세계 희토류 직접 생산량이 지금은 70%로 감소했다. 이후 중국이 일본에 대해 손을 봤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호주와 비슷한 처지인 한국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 『세종논평에 개진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