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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와 한-아세안 관계의 전략적 모색 [정세와 정책 2020-7월호-제11호]

등록일 2020-07-01 조회수 6,360

코로나19 사태와 한-아세안 관계의 전략적 모색

 

 

최윤정 (세종연구소 신남방협력센터장)

yjchoi@sejong.org

 

들어가며

 

  2020년 4월에서 6.27-28로 연기되었던 제36차 아세안 정상회의는 6.26 화상회의로 약식 개최되었다. 2020년은 베트남이 의장국이 되어 아세안 중심성의 기치 아래 ‘결속과 대응’을 통해 지역의 흔들리는 다자협력의 구심점이 되고, 중국의 도전에 독립적인 대응의 기반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의장국인 베트남은 한 번도 제대로 아세안 회의를 개최하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후 코로나19) 때문이다.1) 

  

  코로나19가 아세안에 미친 영향은 의료, 보건을 넘어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본고는 아세안에서 코로나19의 전개 양상과 파장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코로나19라는 위기를 한국이 아세안 협력의 기회요인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책적 시사점을 모색하고자 한다.

 

코로나19에 휩싸인 아세안

 

  6.21 기준 아세안 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약 13만 명, 사망자는 4만 여명에 달한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신규 확진자는 여전히 빠르게 늘어나고 있고 초반에 강력하게 대응한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의 경우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2차 확산을 겪고 있는 싱가포르는 통제 가능한 상황이고, 신규확진자 0명을 기록한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는 통계의 신뢰성 문제는 있으나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아세안의 공중보건 시스템은 열악하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이 예기치 못한 사태에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동북아 국가들에 비해 검진과 대응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몇 가지 대표적인 의료 지표로 보았을 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동북아 국가들의 평균 인구 1만명 당 의사수가 20명인 반면, 말레이시아는 15명, 여타 국가들은 10명 이하로, 의사수가 현저히 부족한 형편이다. 아세안 국가들이 지출하는 의료 비용은 전체 GDP의 4%에 불과한 반면, 중국과 글로벌 평균은 10%이다.2) 그럼에도 아세안의 코로나19 대응이 양호한 데는 정부의 선제적 통제 조치 역할이 컸다.

 

 

  여타 지역보다는 관리가 잘 되었지만, 코로나19는 아세안 국가들에 심각하게 손상을 입혔다. 경기 침체를 야기하였고, 수백만 명의 실업자, 가계소득 감소, 소비위축 등의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에 아세안 회원국들은 강력한 경제회복 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적 한계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일부 국가들의 GDP 대비 부채는 30%를 넘는 등 재정 여건이 열악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EU, 일본에서 양적완화에 초저금리에 밀려 아세안에 모였던 단기성 투자자금이 회수되면 경제성장 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의 위기까지 올 수 있는 상황이다. 

 

 

  아세안은 5%대 경제성장을 지속하여 세계 4대 경제블록으로 부상하기 위해 아세안과 5개 주요 교역국간의 FTA인 RCEP도 서둘러 타결했다. 하지만 경제 자유화를 통해 아세안 통합과 지역 경제성장의 구심점이 되기 위한 항해는 코로나19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코로나19로 성장에 제동이 걸리면서 취약한 재정상태, 심각한 개발격차 등 아세안의 고질적인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세안 경제통합의 목표시한인 2025년까지 5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아세안 공동체 달성의 비전에 회의적인 시각도 대두되고 있다.   

 

코로나19의 파장과 주요 쟁점

 

  코로나19는 보건, 즉 사람(people) 이슈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여파는 평화(peace)와 번영(prosperity)의 전 영역으로 확산된다. 코로나19는 아세안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미중의 경쟁심화로 아세안은 정치, 외교적 어려움에 직면

 

  미중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공공연히 서로를 비난할 핑계를 만들었다. 미국은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중국을 제외한 동맹국과의 무역협력, 기술협력을 명시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3) 반면 중국은 오히려 미국을 바이러스의 근원지로 겨냥하여 비난하면서 코로나19 사태를 중국 부상의 전략적 기회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은 WHO 같은 국제보건기구 및 미국의 역할 부제를 기회 삼아 의료장비, 물품, 기술 지원에 앞장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개적으로 친중 국가와 일대일로 핵심 참여국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시스템의 우위를 자랑하고 원조 외교를 통해 글로벌 소프트파워를 강화하려던 중국의 계획은 오히려 반감을 낳고 있다.

 

  이처럼 미중의 전략경쟁이 체제우월성 경쟁으로 격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세안은 중국의 ‘아시아모델’과 미국의 ‘서구(민주주의)모델’ 중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4) 하지만 지금은 미중 모두 최악의 경기 침체와 내부 정치적 불안정을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상황이다. 따라서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미중간의 충돌이 재현, 확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아세안 역내에서의 존재감은 이전만 못하게 될 것이다.

 

▶ 아세안을 중심으로 하는 新 다자협력의 가능성

 

  그 공백을 아세안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다자주의가 메울 수 있을까. Malcolm Cook ISEAS 선임연구워원은 ‘미중 경쟁관계가 심화될수록 이슈별 비공식 각료급 회의가 잦아질 것으로 전망되며, 동남아 또한 이러한 기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5)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보건 분야 국제 거버넌스 부재에 대한 대응이다. 국제보건기구 WHO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특정 국가의 영향력에 좌우되는 모습은 거버넌스 부재 시대 중견국의 역할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아세안은 코로나19에 아세안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비록 국경은 봉쇄하였지만, 아세안 10개국 보건 공무원들간 정보를 공유하고 아세안을 중심으로 한 협의체에 아세안+3(한‧중‧일), EU, 미국 등 역외국 및 기관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및 ‘아세안+3 특별 정상회의(4.14)’에서 공동의 대응을 논의하고 코로나19 아세안 대응기금(COVID-19 ASEAN Response Fund) 및 의료용품 비축제도 구축 방안도 논의했다. 코로나19 앞에서 세계가 분열 양상을 보일 때 아세안은 더욱 결속하여 대응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아젠다 중심의 협력 메커니즘이 아세안에서 피어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다.

 

▶ 기존 무역체제의 와해는 아세안 경제에 도전과 기회

 

  코로나19로 사람과 상품의 이동이 막히면서 무역 규모만 축소된 것이 아니다. 각국이 에너지, 의료, 식료품 등 소위 전략 물자 산업을 중심으로 무역 제한 조치를 발동하는 등 보호무역주의가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생산과 소비 주체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던 글로벌 가치사슬(GVC: Global Value Chain)도 빠른 속도로 와해되고 있다. 이미 다국적 기업들은 지정학적 중요성이 높은 곳에 새로운 GVC를 구축하기 위해 아세안, 특히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6)


  아세안 역내 교역은 23%에 불과하지만 중국 및 중화권(홍콩, 대만) 국가에 대한 교역 비중은 25%, RCEP 체결 국가들과의 교역 비중은 60%가 넘는다. RCEP은 아세안의 교역 규모를 늘릴 뿐만 아니라 GVC의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WTO로 대표되는 다자무역체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대표적인 메가 FTA인 RCEP의 가치는 더욱 돋보인다.

 

▶ 디지털 경제 가속화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 된다면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고 있는 아세안 개별 회원국 뿐만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도 디지털 경제 달성이라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빨리 도달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7) 주요국의 4차 산업혁명 대응 정책으로는 싱가포르의 스마트네이션 이니셔티브, 말레이시아의 11차 경제개발계획, 태국의 태국 4.0, 인도네시아의 메이킹 인도네시아 4.0 등이 있다. 또한 아세안은 디지털 경제를 통해 2025년까지 GDP를 추가로 1조 달러 높일 수 있다는 목표로 아세안 디지털통합행동계획 2019-2025(ASEAN Digital Integration Framework Action Plan 2019-2025)과 경제공동체 청사진 등 다양한 논의의 장에서 디지털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실제로 언택트(untact)가 보편화되면서 온라인을 통한 경제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간 현금 중심 사회였던 베트남의 경우 온라인 거래 규모가 급증하여 온라인 신용결재 금액이 전년 대비 124% 증가했다. 외식 문화 중심에서 간편 조리, 건강 기능식품, 배달 음식의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재택근무서비스, e-learning, 온라인거래, 게임, 영화, 웹툰 등 디지털 콘텐츠 소비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아세안 관계에 대한 시사점

 

  코로나19는 예상 밖의 돌발적 사태이나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일련의 조류를 앞당긴 측면이 크다. 정치‧외교적으로는 미중간의 패권적 경쟁, 다자주의와 국제기구의 역할 축소, 경제‧통상 측면에서는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GVC의 급격한 위축과 이동, 디지털 경제의 전면적인 부상 등이 더욱 분명하고 빠르게 나타난 것이다. 

 

  전술하였듯이 코로나19는 아세안에게 심각한 위기인 동시에 기회가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아세안을 둘러싼 패권 다툼에 날을 세울 것이다. 하지만 아세안은 코로나19 대응을 통해서도 보여주었듯이 사회·경제·안보 측면의 이해관계에 따라 미국, 중국, 일본, EU 등 선호하는 파트너를 달리하여 이슈별로 다자협력의 기동성을 높이고 있다. Lim Jock Hoi 아세안 사무총장은 국수주의가 팽배하고 글로벌 대응이 부재한 상황에서 코로나19에 대한 지역 차원의 대응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8)

 

  아세안을 핵심 파트너국가로 설정한 한국은 코로나19에 맞서 아세안에 대한 사람, 번영, 평화라는 신남방정책의 3P 전략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코로나19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 차원에서 한국이 아세안에 물품 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K방역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9) 방역 모범국 한국의 이미지로 진단키트와 같은 의료 분야 수출 뿐만 아니라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자체에 대한 수용으로 아세안에서 한류의 지경을 넓힐 수 있다. 언택트 시대 디지털 콘텐츠 시장을 사로잡는 온라인 문화 한류도 기회를 얻은 것이다. 단,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다문화 이주민들을 우리의 사회안전망 속으로 편입시키는 노력과 아세안 문화에 대한 수용 노력이 병행되어야 진정한 한류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아세안은 코로나19 타격이 가장 적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미 아세안과 FTA를 체결했고, RCEP 체결을 앞둔 한국은 분명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세안을 단순한 생산이나 소비 시장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무역질서를 함께 수립하는 파트너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 하에 아세안에 상생의 GVC를 구축하고 활용하여 교역의 확대와 고도화를 달성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인프라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는 한국은 아세안이 디지털 경제를 실현하는데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다. ISEAS 여론조사 결과 아세안이 선호하는 5G파트너는 미국도 중국도 아닌 제3국(한국)10)이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슈별 지역 협력체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소다자협력에 대한 새로운 숙제를 안겨주었다. 협력 의제에 탄력적으로 부응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과 제도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1) 베트남이 2021년 의장국을 한 번 더 수임에 대한 제안을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협의하기 시작했다.

2) Guilia Ajmore Marsan. “Saving Southeast Asia from Another Economic Crisis.” ERIA (Andrea Goldstein OECD 수석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주아세안대한민국대표부 재인용)

3) 미중이 2020년 1월 합의하였던 1단계 무역협정의 핵심은 중국이 미국의 석유, 가스, 그리고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이었으나, 수요 축소와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중국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경제번영네트워크(EPN: Economic Prosperity Network) 구축과 화웨이 퇴출에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4) 마이클 그린.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5) Malcolm Cook and Hoang Thi Ha. “Beyond China, the USA and ASEAN: Informal Minilateral Options.” Perspective ISSUE: 2020 No. 63. ISEAS (2020.6.16).

6) Foxconn, Apple, Nintendo 등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들은 베트남으로 이전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 정부는 중국에서 아세안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기업에게 리쇼어링과 동일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발표

7) 주요국의 4차 산업혁명 대응 정책으로는 싱가포르의 스마트네이션 이니셔티브, 말레이시아의 11차 경제개발계획, 태국의 태국 4.0, 인도네시아의 메이킹 인도네시아 4.0 등이 있다. 또한 아세안은 디지털 경제를 통해 2025년까지 GDP를 추가로 1조 달러 높일 수 있다는 목표로 아세안 디지털통합행동계획 2019-2025(ASEAN Digital Integration Framework Action Plan 2019-2025)과 경제공동체 청사진 등 다양한 논의의 장에서 디지털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8) Lim Jock Hoi. “ASEAN solidarity and response in the face of COVID-19.” The Jakarta Post(2020.6.2).

9) 한국은 지난 6월 16일 아세안 10개국의 코로나19 진단 역량강화를 지원하기 위한 'Enhancing the Detection Capacity for COVID-19 in ASEAN Countries' 사업 출범식을 거행했다. 동 사업은 4월 14일 개최되었던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아세안+3 특별 화상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아세안 지원을 실천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주아세안대한민국대표부. 주간아세안동향 2020-23(2020.6.5.).

10) Malcolm Cook and Hoang Thi Ha. “Beyond China, the USA and ASEAN: Informal Minilateral Options.” Perspective ISSUE: 2020 No. 63. ISEAS (202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