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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외교부장 방한 의미와 새로운 한중관계 모색 [세종논평 No. 2019-32]

등록일 2019-12-10 조회수 5,011 저자 정재흥

왕이 외교부장 방한 의미와 새로운 한중관계 모색

 

[세종논평] No. 2019-32

정재흥(세종연구소 연구위원)

jameschung@sejong.org

 

 

최근 본격적인 미중 패권경쟁으로 인해 한반도 정세가 크게 요동치는 가운데 왕이(王毅)외교부장이 48개월 만에 한국을 방문하여 문재인 대통령,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한국 내 주요 정-재개 인사들을 만나고 떠났다. 이번 방한 기간 동안 왕이 외교부장은 시진핑 2기 지도부가 제시한 대외정책의 핵심키워드인 신형국제관계와 인류문명공동체 구축을 강조하여 과거와 달리 자국의 입장과 목소리를 강하게 피력하였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미국이 홍콩과 신장 위구르 문제를 계기로 연이어 홍콩 인권-민주주의법안(홍콩 인권법)과 신장 위구르 인권정책법안(신장인권법안)을 발의된 상황 속에서 한국을 방문한 왕이 외교부장은 "냉전 사고방식은 시대에 뒤떨어졌고 패권주의와 일방주의 행위는 인심을 얻을 수 없으며 중국 부흥은 역사적 필연이며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고 온갖 방법을 써서 중국을 먹칠하고 억제하며 중국의 발전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그 배후에는 이데올로기적 편견과 강권 정치, 오만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러한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날 것"라고 미국에 대한 불만과 중국의 입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가운데 왕이 외교부장은 한국을 향해서는 시종일관 신뢰할 수 있는 장기적인 이웃 국가이자 협력 파트너로 이미 양국간 무역액은 3천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이익공동체가 되었다면서 보다 긴밀한 한중간 전략적 소통을 강조하였다. 중국은 한국과의 전략적 소통 강화차원에서 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상호신뢰관계 구축 더 수준 높은 양자협력 실현 더 높은 수준의 다자협력 등 3가지의 새로운 한중관계 발전 방향을 제시하였다. 줄곧 중국은 한중간 무역액 3천억 달러에 비해 외교-안보협력수준은 줄곧 미약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미중 패권경쟁이 본격화될수록 특정이슈를 놓고 한국과의 외교-안보협력과 소통 강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 한국이 미국의 강한 압박과 한미동맹 차원에서 지소미아(GSOMIA) 조건부 연기를 결정하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미국이 중/단거리 미사일 배치 수용, 역내 미사일 방어망(MD)참여 등을 결정 할 경우 중국은 상당한 전략적 안보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왕이 외교부장 방한 과정 속에서 보여 지듯이 갈수록 격화되는 미중 패권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이 완전히 중국 편에 썰 수 없더라도 최소한 중립은 지키라는 메시지를 남겨놓고 떠났다.

 

지난 1122일 베이징에서 열린 신경제포럼에 참석한 키신저(Kissinger)미국무부 장관은현재 미국과 중국이 냉전의 언덕에 올라서고 있다(foothills of a Cold War)면서 미중 갈등이 계속 악화할 경우 제1차 세계대전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사실 1972년 닉슨 대통령 방중, 미중관계 수립, 소련붕괴와 냉전체제 종식 등 지난 40년간 새로운 미중협력관계를 구축하여 소위 키신저 질서(Kissinger Order)를 만든 장본인이 미중간 신 냉전 위험성을 예고하고 있어 상당한 전략적 시사점을 주고 있다. 특히 시진핑 지도부는 더 이상 미국이 규정하고 만들어 놓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중국식 규범을 만들고 제도(regime)와 모델(model)을 구축하면서 일대일로(一帶一路), 신형 국제관계(新型國際關系), 인류문명공동체(人類命運共同體) 등과 같은 새로운 중국식 질서를 추진한다는 중장기 전략 구상을 명확히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 가치규범 등의 확산을 목표로 하는 것과 달리 중국은 이데올로기, 정치체제, 문화차이 등을 넘어 실질적인 경제공동이익을 토대로 상호간 공존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인류운명공동체질서를 주요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어 미국과는 전혀 다른 중국식 협력모델 추진을 본격화해 나가는 중이다. 특히 시진핑 지도부는 미국 중심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 중국의 역할을 기존 참여자에서 기획 주도자(策劃者)로 전환시키고 있으며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더 이상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보다 주동적인 자세와 자기 목소리를 취하며 미국과도 수평적인 관계로 전환을 모색하는 중이다. 물론 중국은 아직까지 미국과의 군사력, 첨단기술력, 소프트 파워 방면에서 국력격차가 크다는 점을 인정하고는 있으나 기존 '일초다강' 국제질서는 점차 약화되고 '양초다강(兩超多強: 미중 강대국 중심시대)' 시대로의 변화는 필연적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결국 우리 역시 중국의 부상에 따른 역내질서변화가능성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미중 패권경쟁을 예의 주시하면서 미국과 중국관계에 있어 보다 균형적이고 유연한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시진핑 지도부는 '두개의 백년(兩個一百年)'을 통한 2049년 중국의 꿈(中國夢) 실현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중국의 안보적 우려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한미동맹(혹은 한미일 3자 안보협력)만을 강조한다면 한중관계에 큰 도전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북중수교 70주년을 계기로 이루어진 시진핑 주석의 방북을 통해 초심을 잃지 말고 서로 함께 손을 잡고(不忘初心, 攜手前進)’표어처럼 과거 혈맹수준으로까지 북중관계는 새롭게 복원되었다. 향후 북중 양국은 한반도 비핵화 추진 과정에서 당--군 최고 지도부 사이 보다 긴밀한 전략적 소통을 통해 한반도 정세변화를 이끌어 나갈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따라서 한국 역시 북핵문제 해결 차원에서 실현 불가능한 미국식 해법인 비핵화-보상조치식 일괄타결 해결방안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긴밀한 전략적 소통을 통해 단계적 접근 및 행동행동원칙에 따른 중국식 해법인 쌍잠정(雙暫停:북한의 핵미사일 발사와 한미의 연합군사훈련 동시중단)과 쌍괘병행(雙軌並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병행)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함께 조속한 시일 내로 4자 혹은 6자회담을 재개해 나가는 우리 주도의 과감한 정책적 노력이 요망된다.

 

이와 같이 시진핑 지도부는 중국 주도의 새로운 역내 질서를 구축 차원에서 한중관계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특히 미중패권경쟁 격화와 북중관계 공고화 등 새로운 대내외 환경 변화 속에서 한중관계도 새로운 전략적 협력과 소통이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작금의 안보적으로 한미동맹에 의존하고 경제적으로는 한중관계에 의존하는 구조 속에서 새로운 전략적 한중관계 구축은 상당한 어려움과 함께 구조적 딜레마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새로운 한중관계 모색차원에서 최대 경제교역액 3천억 불 수준에 맞게 정치, 외교, 안보분야까지 전략적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시키고 한반도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내 이슈들에 대해서도 한중간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시진핑 주석의 조기 방한이 성사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과 함께 한중 2+2 외교국방장관회의, 한중 고위급 전략대화(1.5 트랙)재개 등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향후 한국은 미국과 중국 모두 균형적이고 조화로운 발전을 모색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중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여 새로운 한중관계 모색을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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