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정책의 근본전제를 되짚어 보면서 공공외교를 해야 한다
[세종논평] No. 2019-35 (2019.12.18.)
진창수(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jincs@sejong.org
한일관계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대일정책의 근본 전제를 다시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지금까지 대일정책은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한다는 것이 그 근본 전제였다. 그러나 최근 일본 아베 정부의 태도는 그 근본 전제를 흔들고 있다. 지금까지 한일관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과거사문제에 대한 일본의 성의 있는 행동이 전제되었다. 이점에서 과거사문제는 항상 일본이 풀어야 하는 숙제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일 관계에서 일본은 과거사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의 요구(사죄와 반성, 경제협력, 기술 이전 등)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즉 과거사문제는 대일관계에서 한국이 사용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였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정반대이다. 즉 일본은 과거사문제에서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한국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징용공문제만 하더라도 일본은 더 이상 자신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은 한국에게 징용공문제의 해결책을 가져오라고 촉구한다. 심지어 한국은 징용공문제로 일본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징용공문제에 대해서 일본은 전적으로 한국 정부의 문제라고 치부한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작심하고 한국을 압박하면서 부터 한일관계에서 한국이 수세에 몰리는 형국이 된 것이다. 일본국민들 조차 한국의 주장에는 귀를 닫고, 한국의 압력에 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변한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일본 정부로부터 과거사에 대한 성의 있는 행동을 기대하는 것은 과거의 유물이 되고 있다.
또한 한일관계에서는 미국이 항상 한국편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을 통해 일본을 압박하는 것은 한국이 사용할 수 있는 전략적 카드였다. 수출규제조치로 촉발한 일본의 막무가내식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정부는 노골적으로 미국이 일본에 대한 견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결과는 의도치 않은 상황을 만들었다. 특히 지소미아 카드를 통해 일본을 압박하려는 의도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미국 정부는 한일관계를 악화시켰던 일본을 탓하기 보다는 오히려 한국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을 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증액을 요구하고 한국에게 지소미아를 되돌리라고 압박을 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는 이것을 틈타 독도를 침공하였다. 미국의 중재로 일본을 제압하고자 했던 기대는 트럼프 시대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국제관계의 변화에 대한 전략적 고려 없이 감정이 앞선 결과가 가져온 실패였다. 결국 지소미아는 미국의 압박과 함께 연장을 하는 수순을 밟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한일관계의 근본 전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과거사문제에 대해 도덕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한 공공외교는 역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 일상적인 외교에서 일본이 한국의 징용공문제에 대해 한국을 공격을 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과거사에 대한 도덕적인 정당성을 주장하는 공공외교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한일 양국 간 외교가 정상적으로 작동을 해야 공공외교도 선순환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재에는 대일 공공외교에서 과거사문제에 대한 일본의 올바른 인식을 목표로 한다면 그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또한 징용공문제 해법에 대해 한국 정부 내에서조차 확실한 가닥을 잡지 않은 상황에서 대일 공공외교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수 있다.
일본의 공공외교에서 주의를 해야 하는 점은 첫째 대북정책 위주의 공공외교는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공공외교가 효과를 가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정확히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최근의 일본은 한일관계에서 징용공의 해법을 알고 싶은데 대북정책에 대한 평화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공공외교가 진행됨으로써 한국이 대일정책을 방기하고 있다는 의심마저 생기게 했다. 그 결과 한국은 남북관계만 잘되면 일본이 저절로 따라 올 것이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일본에 보내면서 일본의 혐한 분위기를 더욱더 확대시키는 면이 있었다. 특히 일본은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신뢰가 약하기 때문에 문 정부의 평화프로세스의 설명이 한일관계에 순기능적인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최근에는 한국이 징용공문제에 대한 해법을 통해 한일관계의 개선의 실마리를 풀고자 했지만, 일본의 징용공문제는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한일정상들의 정치적인 결단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에 과거사문제의 해결이 장기적인 이익, 전략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하더라도 잘 먹혀들어가지 않는다. 일본은 한국의 과거사에 대한 주장에 피로감을 가지면서 한국의 과거사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일본의 국민들 사이에는 한국은 ‘1965년 기본 조약을 붕괴시킨다’, ‘과거사문제에 대해 골포스트를 움직이고 있다’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 따라서 징용공문제 해결과 과거사문제는 대일정책의 장기적인 과제로 생각하면서 현재의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사문제에서 한일의 인식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정책공공외교로 일본의 인식을 시정하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셋째 대일 공공외교의 중점은 한일 양국의 갈등이 얼마나 한일 양국의 국익을 해치는 것인지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한일 간에는 협력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서로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한일 양국이 윈윈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설명이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한일관계 악화를 막는 동결 방안을 한국이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 『세종논평』에 게진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