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평가와
한반도 정세 전망
[세종논평] No. 2020-01 (2020.01.02.)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
softpower@sejong.org
북한은 지난 12월 28일 노동당 중앙위원회(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개최해 31일까지 4일간이나 진행했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지난 4월까지 모두 5차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했는데 모두 하루 만에 종료되었다. 김정일 시대에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2010년 9월 28일 단 한 차례 하루 일정으로 개최되었다.
북한에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당 대회 다음으로 중요한 정치행사로써 북한은 이 회의를 통해 경제․핵 병진 노선이나 경제총력집중노선 같은 새로운 노선을 발표하거나 대규모 인사 교체를 발표해왔다. 그런데 북한이 이처럼 중요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무려 4일간이나 진행했다는 것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그만큼 중요한 논의와 결정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김일성 시대에도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일반적으로는 하루 일정으로 개최되었지만, 1949년 12월에 4일간, 1950년 12월에 3일간, 1951년 11월에 4일간, 1952년 12월에 4일간, 1956년 12월에 3일간, 1974년 2월에 3일간, 1990년 1월에 5일간 개최된 바 있다. 과거에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몇 차례 수일간 진행되었던 데에는 당과 정권기관의 기율 강화 필요성, 대규모 숙청의 단행, 김정일 후계체계 구축, 동구권 사회주의체제의 붕괴와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인한 충격 등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북한이 1990년 1월의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이후 약 30년 만에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수일 간 개최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만큼 현재의 대내외적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1월 1일자 로동신문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 관한 보도」를 싣고 이것으로 김정은의 2020년 신년사를 갈음했다. 이 보도문의 분량은 김정은 위원장의 2019년 신년사보다 0.5배 정도 더 긴 것으로 김정은이 이 보도문의 내용과 크게 다른 것을 신년사에 담기 어려웠기 때문에 올해 신년사 발표를 생략한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에 김일성도 1956년 12월에 3일간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한 후 1957년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고, 1986년 12월 30일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1차 회의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라는 시정연설을 한 후 1987년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따라서 신년사 발표 생략은 전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작년 연말에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현정세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정면돌파전을 벌릴 데 대한 혁명적 노선”(약칭 ‘정면돌파노선’)을 천명했다. 북한의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보도에서 ‘정면돌파’라는 표현은 23회, ‘자력부흥’이라는 표현은 5회, ‘자력번영’이라는 표현은 4회 언급되어 이번 전원회의에서 핵심 키워드는 단연 ‘정면돌파’였다. 북한의 새로운 ‘정면돌파노선’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 북미 교착상태와 대북 제재 장기화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및 자강력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당에서 구상하던 전망적인 전략무기체계들이 우리의 수중에 하나씩 쥐여지게 된 것은 공화국의 무력발전과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보위하고 담보하는데서 커다란 사변”(강조는 필자)으로 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전략무기 개발에서 큰 성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첨단국방과학의 이 같은 비약은 우리의 군사기술적 강세를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들고 우리 국력의 상승을 더없이 촉진시킬 것이며 주변 정치정세의 통제력을 제고하고 적들에게는 심대하고도 혹심한 불안과 공포의 타격을 안겨줄 것”(강조는 필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김정은은 “앞으로 미국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조미관계의 결산을 주저하면 할수록 예측할 수 없이 강대해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으며 더욱더 막다른 처지에 빠져들게 되어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대미 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이처럼 김정은이 ‘시간은 북한 편’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향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김정은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우리는 우리 국가의 안전과 존엄 그리고 미래의 안전을 그 무엇과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임을 더 굳게 결심하였다”(강조는 필자)라고 밝혔다. 이는 다시 말해 북한의 전략무기를 제재 완화나 다른 것과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김정은은 “핵문제가 아니고라도 미국은 우리에게 또 다른 그 무엇을 표적으로 정하고 접어들 것이고 미국의 군사정치적 위협은 끝이 나지 않을 것”라고 주장함으로써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무용론’을 재강조했다. 비록 김정은이 미국과의 ‘협상 중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적으로는 비핵화 협상 무용론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과의 협상 중단을 선언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김정은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북한이 북미 신뢰구축을 위하여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선제적인 중대조치들을 취한 지난 2년 동안 미국은 이에 화답하기는커녕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합동군사연습들을 수십 차례나 벌려놓고 첨단전쟁장비들을 남한에 반입하여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하였으며 십여 차례의 단독 제재조치들을 취함으로써 북한을 압살하려는 야망에 변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고 미국을 비난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에서“지켜주는 대방[상대방]도 없는 공약에 우리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매여 있을 근거가 없어졌다”고 주장함으로써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모라토리엄 파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정은은 더 나아가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로 넘어갈 것”(강조는 필자)이라고 예고했다. 그리고 김정은은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강조는 필자)이라고 확언했다. 따라서 향후 북한이 신형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발사하거나 다탄두 ICBM 시험발사 등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중앙과 지방의 핵심 간부들을 평양에 모아놓고 무려 4일간 북한의 안보 및 생존전략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정부도 내부적으로 더욱 치열한 토론을 통해 새로운 안보 및 대북 전략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한반도 정세가 2018년 이전의 전쟁 발발 직전 상황으로까지 돌아가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한국의 외교․안보․대북 라인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능력이 없다면 너무 늦기 전에 전면적으로 쇄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세종논평』에 게진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