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보는 2020년 김정은 위원장의 ‘새로운 길’
[세종논평] No. 2020-02 (2020.01.06.)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sunnybbsfs@gmail.com
김정은 위원장이 2020년 선택할 ‘새로운 길’이 과연 어떤 길일지 중국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더불어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대신한 셈이 돼버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과 보고를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중국은 어떻게 보았는지 간략히 짚어본다.
우선 중국측은 연말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킨 북한의 ‘크리스마스 선물’ 언급을 한국과 미국이 ‘과대평가’했다고 본다. 이 단어는 미국의 중요 명절인 크리스마스에 맞추어 북한의 도발이 있을까 하여 트럼프 대통령도 언급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김정은이 한 말이 아니라 외무성 부상 (이태성)의 12월3일 담화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태성은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고 했다.
미국 언론은 이를 ‘김정은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첨단 정찰기·감청기가 잇따라 한반도에 전개되었다. 크리스마스라는 서양의 특별한 명절을 언급하여 미국측의 주목을 끄는 데 성공하였으나 북한 최고지도자가 정한 시한과 차이가 있다. 이는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이 “연말까지 인내력을 가지고 미국의 새로운 셈법을 기다리겠다”던 시한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연말’까지라고 데드라인을 공시했는데 외무성 관리가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혼동을 유발한 셈이다. 국가최고지도자의 발언을 암송하듯 하는 북한체제의 특성상 이태성 부상의 이같은 실수는 당연 ‘문책감’이라는 것이다. 한미와 달리 연말에 한반도 상황에 대해 중국이 상대적으로 ‘차분’했던 것은 이런 연유도 있었던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위협 체감온도 차이는 그 뒤 나온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 보고를 통해 엿보이는 김정은의 발언을 해석하는데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충격적 실제 행동’이란 단어다. 중국측은 이 단어를 실제 행동이라기보다는 ‘관념’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듯 하다. 즉, 이는 북한이 자동적으로 도발을 감행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략무기 개발을 비롯한 국방능력 향상에 있어서 북한이 실제적 노력을 경주하겠고 이를 성과로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본다.
한국 전문가들 사이에 이것이 북한의 병진노선 회귀하는 것인지에 대한 토의가 있다. 중국측은 얼핏보기에 병진노선과 유사하지만 이전의 병진노선이 아니라고 본다. ‘경제건설 총력 집중’이 변하지 않으면서 거기에 국방력 강화가 첨가된 것이라는 것이다. ‘정면돌파’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무려 23번 강조되었는데 이 역시 무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마침 1월6일 북한 관영언론이 "정면돌파전에서 기본전선은 경제전선" 이라고 이를 풀이해 주었다. 외부의 확대 해석을 방지한 셈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중국의 우려사항이다. 일단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은 낮게 본다. 김정은 스스로도 미국과 교착상태는 “장기화가 불가피”라고 판단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대중 의존도는 더욱 심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한반도 3대 정책의 한 기둥인 ‘비핵화’를 북한이 쉽게 위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 천명은 작년 처음으로 시작된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과의 북중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중국이 요구했던 외교적 ‘필요조건’이기도 했다.
큰 틀에서 볼 때, 중국은 북미 회담이 완전히 ‘종료’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트럼프가 북한과 이란을 다루는 방법이 180도 틀리고, 북한의 ‘크리스마스 선물’ 에피소드 후에도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호의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만일 트럼프가 ‘톱다운’ 방식으로 김정은에게 대화를 제의한다면 여전히 북미대화 재개의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반대로 실무 회담 차원에 북한이 다시 응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중국은 북한의 ICBM 실험은 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미국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경우 북한이 쓸 수 있는 ‘옵션’이며 그럴 경우 북한이 중국에 사전에 통보해 줄 것이라고 본다. 목적은 자신의 행동 정당화를 중국에 알려 ‘뒷배’를 미리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이 먼저 적대적 정책을 썼고 이에 북한이 ICBM을 통해 ‘반응’하는 것이라는 점을 중국에 알려 설득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중국이 이에 어떻게 나올 지는 과거에 중국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중국은 김정은의 이번 메시지를 ‘주체사상’의 얼개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북한이 국가의 운명을 ‘강대국에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로 본다. 외교를 강대국(미국)에 의존하지 말고, 자력갱생과 사회주의건설 정신으로 국방, 경제를 주체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요체이다. ‘경제발전 중심’은 변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이 "핵탄과 맞먹는 위력을 가진다"라고 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과 미묘한 해석적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이를 북한이 북·미 관계에 집중하면서 장기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선미후남(先美後南)’으로 보거나, 한국의 중재자 역할에 대해 실망하여 ‘무시’하는 처사로 해석한다. 반면 중국측은 이를 남한에 대한 ‘경고’로 본다. 차라리 미국에 대해 한 것처럼 남한에 대해서도 비난을 했으면 더 나았을 뻔 했다는 것이다. 북한측과 교류하는 중국의 한 인사는 “일절 언급이 없는 것이 더 두려운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것이 “북한이 경고 없이 한국에 대해 도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라며 남북관계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중국측 일부의 시각으로 보되, 우리가 참고할 부분은 참고하는 전략적 안목이 필요한 새 해이다.
※ 『세종논평』에 게진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