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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강제징용문제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정세와 정책 2020-9월호-제20호]

등록일 2020-09-02 조회수 5,537

한일 강제징용문제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jincs@sejong.org

 

  광복 이후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룩한 국가로 탈바꿈했다. 코로나19의 대응에서 ‘K-방역’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한국의 저력은 세계에 알려졌고 이제 한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유독 일본과의 관계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한일 양국의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한국이 일본을 싫어한다는 비율은 70%, 일본이 한국을 싫어하는 비율은 62%로 이전보다 매우 높아졌다1)그런데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과제로 한국은 여전히 독도와 강제징용, 위안부문제 등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보는 반면 일본은 대화나 경제교류 등의 실익추구의 문제를 들고 있다. 한국의 일본에 관한 이미지는 이익과 전략보다는 과거사의 아픈 추억이 강하게 남아 있다.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감정의 골이 한일관계의 갈등과 대립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이 글에서는 문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의 의미,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 그리고 한일관계 전망을 해보고자 한다. 

 

 문대통령의 광복절 연설 

 

  한일관계는 다시 격랑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일본정부는 일본 기업의 압류재산에 대해 현금화 조치를 한다면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두고 대응하겠다고 예고하고 나섰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한일군사보호협정(GSOMIA)종료 통보 여부를 다시 대일 대항 카드로 거론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문대통령의 8.15 연설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문대통령이 8.15 연설에서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며 대화 의지를 부각한 것은 한일관계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작년과 비교하여 보더라도 일본에 대한 비판을 억제했고, 한일간의 대립을 가라앉히려 했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문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은 한일 양국의 인식 차를 줄이고 한일관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일본에 ‘볼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다. 지금까지 강제징용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 정부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양새였다. 이러한 상황은 이번 광복절 연설을 보는 한에서는 별로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문 대통령은 “강제징용 문제는 사법 절차로 진행돼 외교 당국이 개입할 수 없다”는 기존의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개인청구권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표명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광복절 연설에서 대화는 열려 있다고 하지만,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대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국내정치를 의식한 나머지 ‘무늬만 대화’였던 과거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강제징용문제의 해법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한국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아베의 무성의한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아베 정부는 한국이 굴복하기만 기다리는 듯 강경자세 일변도로 일관하면서 사실상 대화는 진전되지 못했다. 대화에 응하지 않는 일본만 탓할 수 있지만,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한국도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번 광복절 연설을 보면 기존의 입장에서 변화된 것은 별로 없다. 문 대통령은 강제징용문제에 대해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현안이 되고 있는 강제징용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한일간 실질적 대화가 이루어질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한일간의 대립으로 한일 양국은 잃은 것이 많다. 한국은 한일 대립이 지속되면서 아베 정부만 적으로 돌린 것이 아니라 일본 여론조차 등을 지게 만들었다. 또한 일본은 한국이라는 전략적 동반자를 잃어버리면서 북한문제에서 소외되는 초조감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한일간 대립은 자존심의 대결이 지나쳐 한일 양국의 이익, 전략마저 실종되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번 문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을 통해서는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없어 아쉬운 점이 많다. 그리고 한일관계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노력조차 보이기 않는 상황은 한일관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여야가 한일관계를 고민할 때  

 

  8월 4일부터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에 대한 압류명령 공시송달 효력이 발생하여 현재 한일관계는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 상태이다. 그렇다고 공시송달 효력으로 인해 당장 일본제철의 주식을 매각해 현금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 기간 동안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한다면 최악의 한일관계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강제징용에 대해 해법은 ‘백가쟁명’식으로 많은 제안이 있었다. 즉 정부차원의 1(한국기업)+1(일본기업), 1+1+@(정부의 출원), 국회에서는 문희상 안,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 등이 논의되었지만, 한일 양국 정부의 반발이나 여론의 반대로 인해 성사되지 못하였다. 문제의 근원은 일본에 있다고 한국은 생각하지만, 일본 역시 한국을 탓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정부와 시민단체는 일본에 도덕적인 자세를 요구하면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일본은 받아들일 자세가 아니다. 일본 정치권과 국민들은 한일관계의 갈등의 원인이 ‘한국에 있다’고 보는 경향이 팽배하다. 즉 ‘볼은 한국에 있으며’ 한국이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한국과의 타협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더 큰 양보를 요구한다는 불신이 강하다. 따라서 역사문제를 ‘화해의 과정’으로 보기 보다는 일본의 국익을 지키는 승패로 생각하는 경향은 뚜렷하다. 일본의 태도 변화 이외에 어떤 해법을 내더라도 한국내 불만을 잠재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한일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법은 찾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한일 양국이 해법을 찾지 못하더라도 한일관계를 관리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문제는 한일 양국은 감정이 지나쳐 서로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조차 둔감한 데 있다. 따라서 한일 정부는 갈등을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마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상대방에게 볼이 있다’고 책임을 회피하더라도 별다른 정치적 부담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아베 정권은 코로나의 대응에 실패하면서 내년 올림픽 개최마저 장담하기 힘들어졌다. 아베 수상이 목표로 해온 헌법 개정은 거의 절망적이다. 일본 나가다쵸(정치권)에서는 ‘향후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회복 불능이다’고 할 정도로 아베 정권은 벼랑길에 서있다. 일본 국내정치의 어려움으로 아베 총리는 한일관계의 개선은 안중에도 없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4월 선거에서 승리하여 정국 운영에 여유가 있지만 북한문제, 부동산 등의 악재로 인해 한일관계 개선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문 정부는 “사법부 판단 존중, 피해자 권리 실현, 한일관계 등을 고려하면서 다양한 합리적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데 대해 열린 입장”이라고 하지만, 정작 한일관계 개선에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청와대 일부에서는 한일관계의 파국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것은 일본이며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말이 새어나오고 있다. 그리고 반일을 국내정치의 유불리로 평가하려는 여당의 인식도 여전히 남아있다.      

 

  한일 양국 정부의 상황이 이런지라 강제징용문제 해법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 수 있는 마지막은 국회이다. 작년에 국회가 나서서 꽉 막힌 한일관계의 해법으로 문희상 안을 제안하게 된 경위에서도 절박감을 느낄 수 있다. 작년의 문희상 안에 대해서는 일본 정치권이 반대의 입장을 취하지 않아 해결의 실마리를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국회에서 문희상 안은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이번 국회에서는 야당이 제2의 문희상 안을 제안하였지만, 여당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원안은 여당 출신의 문 국회의장이 제안한 안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 탓인지 여당 의원들은 누구 하나 동참을 표하지 않았다. 제2의 문희상 안에 대해 여야가 실질적인 논의를 하지 못하는 것은 한일관계를 전략적으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외교문제는 정파의 이익이 우선할 수 없다. 국익과 장기적인 관점을 가진다면 강제징용문제에 대한 해법은 여야가 함께 발의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여당이 한일관계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제2의 문희상 안을 추진하였다면 야당도 반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문 정부도 뒷짐을 지고 국회의 논의를 지켜보아서는 안된다. 국회가 강제징용문제에 대한 올바른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문 정부가 나서서 피해자와 변호인단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한 정치적인 부담을 여야가 함께 질 때 강제징용문제의 해법은 현실성을 가질 수 있다. 

 

강제징용문제의 세가지 해법  

 

  한일관계의 파국을 막는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일 양국은 진정한 친구로 거듭나기 이전에 상대방의 전략적인 가치를 다시 재고해야 한다. 미중이 대립하는 국제질서에서 보면 한일이 놓여있는 상황은 비슷하다. 코로나 시대에 한일 양국이 협력을 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야말로 국익을 생각하는 바람직한 태도이다. 강제징용의 해법도 자존심의 대결에서 벗어나 장기적 국익의 관점에서 따져보아야 한다. 일본은 한국과 이익과 전략을 공유할 수 있는 중요한 국가로서 그 전략적인 가치는 그 어느 국가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무조건 반일이나 반한의 감정을 버릴 때 강제징용문제 또한 화해의 과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일 양국 정부는 국민의 감정을 관리하며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건만, 오히려 정부가 감정을 드러내면서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한일 정부가 우선 한일관계를 냉정히 바라보는 눈으로 돌아와야 한다.

 

  둘째 상대국 국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한일 양국 국민들은 반일과 반한이 애국인 것처럼 서로를 싫어한다. ‘일본이 코로나에서 힘든 상황이 되면 한국인들이 좋아한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 최근 일본의 정치권과 국민들은 ‘한국은 타협을 하면 더 큰 것을 원한다’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러한 인식의 근간에는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불신이 꽉 차있다. ‘법은 준수해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일본 문화와 연관되어 한국이 1965년 기본조약을 마음대로 악용한다는 불신마저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은 이번 판결에만 끝나지 않고 피해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종국에는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불신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이 강제징용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제안을 하더라도 일본이 받아들이기는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이 여유를 가지고 일본과의 신뢰 회복에 마음을 써야 한다.

 

  셋째 한일 양국의 정상들이 한일관계 개선에 의지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 한일관계의 이슈들이 국내정치화하면서 전략외교보다는 국내 정치이익에 매몰되는 경향이 많았다. 한일 양국 국민들의 여론이 악화되면 정상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대일외교의 방향이 여론에 휩쓸리고, 여론을 추동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외교당국자들의 공간은 더욱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전에 과장이 하는 일을 장관이 한다’는 자조 썩힌 말에서 현실을 읽을 수 있다. 대일정책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은 채 ‘한일 관계를 관리를 하거나 강제징용문제를 해결‘을 원한다면 무엇이 가능할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한일 양국의 정상들이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갖지 않는 상황에서 외교적 교섭에서 성과를 바라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꼴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강제징용문제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라는 극단적인 법적 해결을 한일 양국이 수긍하지 않는다면 양국의 정치적 결단을 통해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문대통령의 8.15 연설처럼 ‘일본과 한국의 공동 노력이 미래협력의 다리’가 되기 위해서는 문정부가 먼저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문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지금의 한일관계 파국을 막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한일 관계 개선의 첫걸음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장 정부간 교섭이라도 활발하게 진행시켜야 한다. 그러나 정부간 대화가 진행되더라도 신뢰할 만한 파트너를 찾기가 힘든 것이 문제이다. 이전에는 한일 양국의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 당국자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었다. 현재 한국 정부내에는 일본과 인맥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문정부가 남북관계에 몰입한 나머지 국제관계의 전문가들을 중시하지 못한 결과이다. 정부간 신뢰가 없다면 정치가 또는 재계의 유력자들이 나서야 한다. 정치권마저 한일관계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여 적당한 인재가 눈에 띄지 않는다. 당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일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지금이라도 현안인 한일관계에 대한 문정부의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 그리고 정부내 일본관련 부처와 정치권이 대화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또한 한일간 신뢰회복을 위해서라도 코로나 위기 극복에 한국이 일본과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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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특정비영리활동법인 언론NPO·동아시아연구원 여론조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