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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포커스]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2024의 결과분석과 시사점

등록일 2024-10-10 조회수 1,201

2024년 10월 1일, 일본에서는 새로운 이시바 내각이 출범했다. 지난 9월 27일, 금요일에 진행된 일본 자민당의 총재선거에서 12선의 이시바(石破茂) 전 간사장이 결선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신임 총재로 당선되었고, 내각책임제하 일본에서 다수당의 위치를 점하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2024의 결과분석과 시사점
2024년 10월 10일

 

    이면우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mwlee@sejong.org
      2024년 10월 1일, 일본에서는 새로운 이시바 내각이 출범했다. 지난 9월 27일, 금요일에 진행된 일본 자민당의 총재선거에서 12선의 이시바(石破茂) 전 간사장이 결선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신임 총재로 당선되었고, 내각책임제하 일본에서 다수당의 위치를 점하는 자민당의 총재가 국회에서의 투표를 통해 내각총리로 선출되기 때문이다.

      다섯 번의 도전 끝에 얻어낸 성과지만 이시바 전 간사장에 있어서는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지난 두 차례의 도전에서는 많은 당원 및 당우들의 지지를 얻었음에도 결국 동료의원들의 지지가 미비해 승리할 수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지난 2021년의 총재선거에서는 추천인 20명의 확보 등도 불확실해서 입후보를 포기하고 고노 전 디지털상을 지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초기에는 9명 이상의 의원들이 입후보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20명의 추천인을 필요로 하는 규정에 의해 승리는 고사하고 출마도 낙관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었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경력의 이시바 의원이 어떻게 이번에는 당선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숙원의 총재 당선을 이룬 이시바 의원이 향후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간략하게나마 예상해 본다.
    | 결과분석 : 선거 결과와 투표 동향 및 그 배경

     

      자민당 총재선거는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자가 당선되는데, 이번처럼 9명이나 입후보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입후보자가 2명 이상인 경우가 종종 있어서 상위 득표자 2명에 의한 결선 투표로 승자가 결정된다. 투표 총수는 1차에서는 국회의원 표와 동수로 맞추어진 당원 및 당우의 표로 구성되며, 2차 결선에서는 국회의원 표와 47개 도도부현에 맞춘 수치의 합이다.

      이에 따라 이번 총재 선거에서는 아래의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회의원 총 368표와 그에 맞춘 당원 및 당우의 368표, 총 736표가 1차 선거에서 던져졌는데, 이시바 의원은 의원표 46, 당원ㆍ당우표 108로 총 154표를 획득했다. 이는 총 181표를 얻어 1위를 차지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에 이은 2위의 성적이어서 결선 투표에 오를 수 있었다. 결선 투표에서는 이시바 의원이 의원표 189, 도도부현표 26, 총 215표를 얻어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던 다카이치(高市早苗) 의원을 21표 차이로 꺽고 신임 총재로 당선됐다. 다카이치 의원은 의원표 173, 도도부현표 이에 따라 이번 총재선거에서는 아래의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회의원 총 368표와 그에 맞춘 당원 및 당우의 368표, 총 736표가 1차 선거에서 던져졌는데, 이시바 의원은 의원표 46, 당원당우표 108로 총 154표를 획득했다. 이는 총 181표를 얻어 1위를 차지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에 이은 2위의 성적이어서 결선 투표에 오를 수 있었다. 결선 투표에서는 이시바 의원이 의원표 189, 도도부현표 26, 총 215표를 얻어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던 다카이치(高市早苗) 의원을 21표 차이로 꺽고 신임 총재로 당선됐다. 다카이치 의원은 의원표 173, 도도부현표 21, 총 194표를 얻었다.

     

     

     


      이시바 의원이 당선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는 일반 대중에게 인기가 높았던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의원에 대한 지지도가 유세기간중 행해진 토론 과정 등을 통해 점차 실추됐다는 점이다. 43세, 당선 5회의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의원이 아버지인 고이즈미 슌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50세가 되기 전에는 총재선거에 나가지 말라”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출마를 결정한 데에는 무엇보다도 지난 7월에 실시된 동경도지사 선거에서 나타난 이시마루 신지(石丸伸二)의 돌풍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겠다.

      지난 7월의 동경도지사 선거에서는 자민당이 묵시적으로 지지한 고이케 현 지사가 당선됐지만, 동시에 진행된 동경도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2승 6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보였다. 1) 이러한 패배는 이시마루 돌풍과 함께 자민당을 위시한 기존 정당들에 대한 유권자의 불신이 매우 높음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당내에서는 고이즈미 신지로와 같은 젊은 세대의 대두를 기대하는 흐름이 있었다. 49세, 4선의 고바야시(小林鷹之) 의원이 출마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기대에 따른 것이었다고 하겠는데, 이처럼 기대된 고이즈미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낮아졌고, 2) 그 빈틈을 이사바 의원이 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서두에서 간략히 언급했듯이, 이시바 의원이 오랫동안 일반 유권자나 자민당의 당원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어 왔었고 그러한 지지가 이번에도 이어졌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베 전 수상이 돌아와 다시금 총재직에 도전했던 2012년의 총재선거 1차 투표에서는 이시바 의원이 당원표 165, 의원표 34, 총 199표를 획득해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선거의 1차 투표에서도 이시바 의원은 당원 및 당우로부터 108표를 얻었는데, 이는 의원표 획득에서는 이시바 의원을 앞선 고이즈미 의원을 제치고 다카이치 의원과의 결선 투표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이었다.

      셋째로는 이번 선거의 뒷무대에서 진행된 세 명의 전임 수상들, 즉 아소, 스가, 기시다 사이의 권력투쟁이 이시바 의원에 대한 동료의원들의 거부감을 줄이는데 일조했다는 점을 제기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시바 의원은 당원 및 당우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음에도 동료의원들로부터 표를 얻는 데는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1차에서 획득한 의원표는 46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소 대 스가 및 기시다 사이의 경쟁구도에서 비롯된 스가 및 기시다의 지원에 힘입어 결선투표에서는 승리할 수 있을 만큼의 의원표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위의 (표-1)에서 보듯이, 1차와 2차에 걸쳐 던져진 표를 비교해보면, 대체로 이시바 의원에게는 스가 전 총리와 기시다 전 총리의 지원으로 고이즈미 후보, 하야시 후보, 그리고 가토 후보를 지지했던 의원들의 표가 온 것으로 보이고, 다카이치 의원에게는 아소 전 총리의 선도 아래서 고바야시 후보, 모테키 후보, 가미카와 후보, 그리고 고노 후보를 지지했던 의원들이 참여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는 당선 후의 인사에서 당내 요직이라고 할 수 있는 부총재직에 아소 전 총리를 대신해 스가 전 총리가 임명되고, 내각에서는 기시다파 소속의 하야시 의원이 관방장관직에 유임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정치자금 문제로 자민당의 파벌들이 해체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파벌정치가 역력히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파벌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가 파벌영수를 총재로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총재선거에서 파벌의 존재가 이처럼 재차 부각 되는 것은 당연한 전개라고 할 수는 있다.

      넷째는 이러한 권력투쟁에도 불구하고 파벌에 소속되지 않은 무파벌의 의원들을 움직인 요인으로는 다카이치 의원에 대한 경계감 및 불안감을 제시할 수 있다. 다카이치 전 경제 안보 담당 대신은 2021년에 이어서 이번 선거에서도 높은 지지를 얻었지만, 강경한 대중정책이나 야스쿠니신사참배 표명 등에서 나타나는 그의 지나친 보수성향은 한미일 3국 협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이나 지역정세의 불안을 우려하는 일반유권자들로부터 경계심과 불안감을 자아낸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러한 측면으로 인해, 중의원 총선거(이시바 총리는 10월 27일에 실시할 것을 표명)를 눈앞에 둔, 많은 초년생 의원들의 표가 이탈했다는 지적이다.

    1) 2024년 7월의 동경도지사선거에 대해서는 이면우, “2024년 동경도지사선거의 결과가 제시하는 일본정치의 향방” 참고
    2) 예를 들어, 일본의 민영방송인 제이엔엔(JNN)이 9월 9일에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고이즈미 의원은 28.5%로 이시바 의원과 다카이치 의원에 앞선 1위를 차지했던 것인데, 9월 18일에 발표된 일본 주요일간지의 여론조사에서는 3위를 차지한다는 결과였다: 한겨레신문, 2024.9.9.;,9.18에서 재인용.

     

    | 향후 일본의 정치 및 영향
      이시바 총리에 의한 새로운 내각의 외교에서 출범은 일본의 대내외적 정책, 특히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이시바 총리가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를 간략히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록 일본의 정책결정에 있어서 관료의 힘이 크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지만, 정책의 변화 등을 선도하는 것은 정치리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시바 신임 총리의 정책성향 및 리더십 스타일 관련해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헌법개정 및 집단적자위권 도입에 적극적이라는 측면이다. 1986년의 제38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 후보로 첫 당선을 달성한 이시바 총리는 1993년에 자민당을 탈당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당시 선거에서 패배해 야당이 된 자민당의 이미지를 유화시키고자 “헌법 개정 논의를 동결한다”는 방침을 정한 당시의 고노(河野洋平) 총재 때문이라고 제시했다. 차후 오자와 의원의 신진당, 신생당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이유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고 헌법개정에도 적극적인 신생당이야말로 ‘본래의 보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임을 밝혔다. 그러한 신생당을 탈당하여 다시 자민당에 복당(1997년)하게 되는데 그 이유 역시 신생당의 오자와 의원이 독선적으로 당 운영을 한 것도 있지만, 애초에 제시한 헌법개정이나 집단적자위권 도입에 진심이지 않다는 점을 제기했다.

      이처럼 이시바 총리가 평화조항이라는 헌법 9조 2항인 ‘전력불보유’ 조항을 삭제하는 헌법개정을 통해 자위대를 명실상부한 군대로 만들고 집단적자위권의 도입을 용인하자는 입장을 취하는 배경에는 자조(自助)적 근대국민국가주의가 자리잡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입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집단 안보 체제, 소위 말하는 ‘아시아판 나토’의 창설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침략을 받은 데에는 나토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오늘의 우크라이나가 내일의 아시아가 될 수 있다면서 아시아에서도 나토와 같은 구속력 있는 집단 안보 체제 집단을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조적 근대 국민국가주의는 미일지위협정의 개정으로도 연결된다. 미일관계가 협정개정으로 좀 더 대등한 관계가 되면 미일관계는 더욱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인데, 근대국민국가주의에 담겨진 민족주의적 측면을 엿볼 수 있는 측면이다.

      둘째는 소통을 중시하는 측면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담당대신인 안보법제담당상으로 관여한 안전보장법제의 통과와 관련해서 “(안전보장관련법안의 심의 관련해) 국민의 이해가 좋아졌는지, 진행됐는지는 보도 기사의 여론조사가 제시하는 바인데, 아직은 진행됐다고 말할 수 없다... (여론조사의) 수치를 보고 이해를 얻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는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충분한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통 중시의 측면은 다원주의적 성향과도 연결된다. 다원주의적 측면을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본다고 할 때, 이는 동성혼이나 선택적 부부 성별 문제에 대한 찬성 입장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하겠다. 예를 들어, 2017년 5월 19일에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그래도 (일본은 한국의) 납득을 얻을 때까지 계속 사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남경사건과 관련해서도 “적어도 포로의 처리방식을 잘못 진행한 것은 사실이고, 군기 및 군율은 지켜지지 않았다. 민간인의 희생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필요가 있다”라는 견해를 밝혔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 인식의 배경에는 다원주의적 측면 외에도 앞서 언급한 근대 국민 국가적 합리주의 및 현실주의도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남경사건이나 위안부 문제, 그리고 동경 재판과 관련해 ’대학살은 없었다‘거나 ’협의의 강제성은 없었다‘, 또는 ’평화에 대한 범죄‘가 사후법이니 무효라는식의 행위나 발언이 현재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관련해서도 전사자와의 약속은 정치가가 아닌 천황의 직접 참배라며, 본질을 흐려서는 안되며 정치가의 역할은 역사 인식과 관련해서 법률가나 역사가의 검토가 가능하도록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연유로 2002년에 방위 대신으로 첫 입각한 이후 야스쿠니신사에는 참배하지 않았다.
    | 한국의 대응 방향
       이상에서 살편본 바와 같이 이시바 신임총리의 취임은 양면적 측면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역사인식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 등의 입장을 좀더 이해하는 편이지만, 외교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이 우려하는 헌법개정의 추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위에서 언급한 ’아시아판 나토‘ 주장이주목 받고 있다.

      이처럼 양면성을 가진 이시바 내각에 대한 한국의 대응 방향은 역시 국익의 관점에 따른 적극 활용론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이시바 신임총리가 추진할 가능성이 높은 헌법개정은 결코 쉽사리 추진되기 어려운 난제이다. 무엇보다도 높은 인기를 누리던 아베 전 총리도 국민투표와 관련된 사항만을 수정하는데 그치고 결국 실행하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현재 10월 27일로 예정된 중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는 이시바 신임총리도 헌법개정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유권자의 관심이 그렇게 바라던 인플레가 소득증대의 효과 없이 발생함으로 인해 초래되는 생활의 곤궁함을 해결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정치자금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총선거 결과 여하에 따라서 이시바 내각은 매우 단명에 그칠 수도 있다. 이시바 신임총리가 국회해산을 통해 총선거를 치루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제까지의 예로 볼 때 새로운 총리의 탄생이 희망을 주는 측면이 있어서 지지도가 높게 나타나기에 그 여세를 몰아 선거를 치루고자 하는 것이다. 내년의 임기만료에 의한 총선거 실시가 발생하면 더 큰 패배가 예상되지만, 이번에 하게 되면 패배하더라도 1993년이나 2009년과 같은 대패에 의한 정권교체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계산상인 것이다. 확실히 헌법개정과 같은 난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시아판 나토‘ 주장도, 미국 의회의 부정적 시각에 더하여, 일본 내에서 대체로 실현성이 낮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중국에 대한 공통 위협인식이 약해서 참가자도 많지 않을 것이며, 현재의 평화헌법 상으로는 집단 안보 체제를 선도할 일본이 참여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등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런 이유로 이와야(岩屋毅) 외무대신도 기자회견에서 유보적인 태도를 제시했고, 이시바 총리 자신도 국회에서의 질의 중 "한 사람의 국회의원으로 생각한 바이며 일석이조에 될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따라서 이와 관련해서는 일본측의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면 협의에 응할 수 있다는 조태열 외교장관의 답변은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런 측면에서도 헌법개정은 당장은 아니어도 향후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며 주목을 요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설혹 정권이 유지되고 헌법개정이 추진되어 자위대가 명실상부한 군대가 되더라도 무조건 반대하고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하겠다. 일본의 방위력 강화가 중국의 공세적 부상에 대응해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러한 움직임이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과의 실질적인 협력하에서 논의될 것이고, 이에 따라 한국의 안보 및 국익, 그리고 지역의 안정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안을 주변국들과 함께 모색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긍정적인 역사 인식을 보이는 이시바 내각의 출범은 한일간 역사인식 문제를 탈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측면에서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시바 총리는 이제까지의 행적으로 볼 때 사과가 가능한 인물이다. 협력과 협의의 기초 위에 한국의 외교가 더 이상 과거사에 얽매이지 않도록 일본총리의 사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적절한 장을, 특히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을 앞에 두고 계기를 만든다면, 한국의 안보는 물론 지역의 안정과 평화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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