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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포커스] 복합위기 시대 한미일 협력과 한중일 협력의 '병행 발전 2.0' 모색

등록일 2026-10-22 조회수 225 저자 정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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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국제질서는 안보위기와 경제위기가 서로 얽혀 증폭되는 '복합위기' 국면에 들어섰다. 첫째,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계속 고도화하고 있으며 러시아와의 군사협력도 확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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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2일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 | softpower@sejong.org
1. 트럼프 2기 시대의 복합위기와 '병행 발전 1.0'의 한계
동북아 국제질서는 안보위기와 경제위기가 서로 얽혀 증폭되는 '복합위기' 국면에 들어섰다. 첫째,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계속 고도화하고 있으며 러시아와의 군사협력도 확대해 왔다. 둘째,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동맹국이 자국 방위와 지역안보에 더 큰 책임을 부담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셋째, 우크라이나전쟁의 장기화에 이어 2026년 2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쟁(이하 '이란전쟁')이 발발하면서 에너지·해운·핵심광물·방산 공급망의 불안정성이 급격히 커졌다. 오늘날 군사안보와 경제안보는 더 이상 분리해서 다루기 어렵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미일 협력과 한중일 협력의 필요성은 오히려 동시에 커지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북러 군사협력의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동시에 이란전쟁과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정, 에너지와 공급망 충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역내 주요국간 경제안보 협력도 필요하다. 따라서 두 삼각협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약화시키는 접근보다,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도록 설계하는 접근이 현실적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확장억제 공약을 공식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2025년 11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Joint Fact Sheet)에서도 미국은 핵능력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능력을 활용한 대한국 확장억제 제공을 재확인했으며, 한미일 협력의 강화도 명시했다.1) 따라서 현재의 변화는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이 유지되는 가운데 동맹국의 역할과 책임, 실제 군사운용의 예측가능성, 전략자원의 가용성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2026년 미국 국방전략(NDS)은 이를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3) 미국은 본토 방어와 인도태평양에서의 대중국 억제를 우선시하면서, 유럽·중동·한반도의 동맹국과 파트너들이 자국 방어에 대해 '일차적 책임(primary responsibility)'을 지고 미국은 '결정적이지만 보다 제한된 지원(critical but more limited support)'을 제공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특히 한반도와 관련해 NDS는 한국이 강력한 군사력과 높은 국방비, 견실한 방위산업, 징병제를 바탕으로 "보다 제한된 미국의 지원 아래 대북 억제의 일차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명시하고, 이러한 책임 균형의 변화가 한반도 주둔 미군의 태세를 조정하려는 미국의 이익과도 부합한다고 밝혔다. 또한 여러 지역에서 위기가 동시에 발생하는 '동시성 문제(simultaneity problem)'를 강조하면서 동맹국의 국방투자와 방위산업 역량 확대를 촉구한다. 주목할 점은 NDS가 북한 핵전력을 미국 본토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으로 규정하면서도 북한 비핵화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이를 미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 목표를 공식 폐기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2025년 한미 정상 공동 팩트시트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명시적으로 재확인했다.2) 그럼에도 NDS가 비핵화보다 억제와 동맹 책임분담을 전면에 배치했다는 사실은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 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NDS는 중국을 지배하거나 질식시키거나 굴욕을 주는 것이 목표가 아니며, 인도태평양에서 모두가 '적정한 평화(decent peace)'를 누릴 수 있는 힘의 균형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3) 이는 동맹의 폐기라기보다 동맹 내부의 책임구조를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에 가깝다. 또한 미국 스스로 중국과의 안정적 관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한국이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을 병행할 공간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한편 2026년 들어 미중관계는 정상외교가 재개되면서 1년 전보다 안정된 반면, 중일관계는 2025년 11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의 대만 관련 국회 답변 이후 경색이 장기화되고 있다. 2026년 9월 워싱턴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와의 대화를 권유했으나 시진핑 주석은 "중일관계와 미중관계는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4) 미중관계의 안정은 한국이 대중국 협력 채널을 운용하는 부담을 낮추지만, 동시에 한국의 이해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강대국 간 거래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 말하는 '병행 발전 2.0'을 이해하려면 먼저 기존의 병행론, 즉 '병행 발전 1.0'의 성격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병행 발전 1.0'은 과거 정부나 학계가 공식적으로 사용한 명칭이 아니라, 한미일 협력과 한중일 협력을 동시에 유지·발전시켜야 한다는 기존 접근을 설명하기 위해 필자가 사용하는 분석적 개념이다. 1.0의 핵심은 두 협력체가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한국이 양쪽 협력을 병행할 수 있다는 '공존과 양립'에 있었다. 한미일은 주로 북한 핵·미사일과 안보 문제를, 한중일은 경제·통상·문화·환경 등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낮은 분야를 중심으로 발전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복합위기 시대에는 이러한 단순 병행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1.0에서 두 협력은 민감도에 따라 영역을 나눴을 뿐 서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일 갈등이나 미중 경쟁이 격화될 때마다 한중일 협력은 쉽게 중단되었고 한미일 협력은 대중국 블록화로 인식될 위험에 노출되었다. 이 글이 제안하는 '병행 발전 2.0'은 두 협력체를 단순히 병렬적으로 유지하는 단계를 넘어, 서로 다른 기능을 보다 명확하게 부여하고 이를 동북아 안정이라는 공동 목적 아래 연결하려는 구상이다. 한미일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억제·방어, 정보공유와 방산협력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한중일은 전략적 소통·위기관리·경제안보·공급망 안정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2.0의 핵심은 '두 협력의 공존'에서 '두 협력의 기능적 분업과 상호보완'으로의 전환에 있다.
이러한 전환을 뒷받침하는 것이 책임(Responsibility), 복원력(Resilience), 인정(Recognition)의 '전략적 3R'이다. 책임은 한미일 협력과 한국·일본의 자강을 강화하는 축이고, 복원력은 전쟁과 공급망 충격에 대한 한일·한중일 공동 대응능력을 높이는 축이며, 인정은 서로의 동맹관계와 전략적 위상, 정당한 안보우려를 인정함으로써 안보 딜레마를 관리하는 축이다. 세 요소 간의 관계와 구체적인 기능분담은 5절에서 정리하겠다.
2. 북한 핵위협과 북러 군사협력 확대: 한미일 협력의 구조적 필요
한미일 협력 강화의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이다. 2026년 4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한국·미국·일본 등 다수 이사국이 지적했듯이, 북한은 2026년 들어서도 신형 전략자산과 핵·미사일 능력의 질적·양적 확대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5) 또한 한국·미국·일본 등 11개국으로 구성된 다국적 제재 모니터링팀(MSMT)은 첫 보고서에서 북러 간 불법 군사협력을 상세히 기록했으며, 이 협력은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특히 북한 병력과 무기·탄약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전쟁 수행에 투입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6) 북러 군사협력은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와 병력을 제공하는 일방적 관계에 그치지 않고, 향후 러시아의 군사기술과 운용경험이 북한의 미사일·무인기·우주·잠수함 역량 강화로 연결될 가능성까지 제기한다. 여기에 2025년 9월 김정은 총비서의 방중과 2026년 6월 시진핑 총서기의 방북을 계기로 두 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나, 이에 관한 중국 외교부의 공식 발표에서는 모두 '한반도 비핵화'가 언급되지 않았다.7) 중국은 2025년 11월 발간한 군비통제·군축·비확산 백서에서도, 2005년 같은 분야 백서에 명시했던 ‘한반도 비핵화’ 표현을 삭제했다.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 양쪽으로부터 외교적·경제적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한미일 협력의 필요성을 더욱 높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안보전략은 한미동맹과 미국의 확장억제를 확고히 유지하면서 자체 방위역량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북한의 핵무력이 확대될수록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만 바라보는 구조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미국의 확장억제가 무의미해졌다고 평가하는 것도 사실과 맞지 않는다. 보다 정확한 문제는 미국의 '공약' 자체가 아니라 공약을 실제로 실행하는 '운용'과, 여러 전쟁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필요한 무기·탄약·함정·항공전력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전략자원'의 문제이다.
이 점에서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선언적 신뢰성, 운용적 신뢰성, 전략자원의 신뢰성으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선언적 신뢰성'은 한미 정상문서와 핵협의그룹(NCG), 한미안보협의회의 등을 통해 상당히 유지되고 있다. 반면 '운용적 신뢰성'은 미국 대통령의 판단,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방식, 북미관계와 미국 국내정치에 따라 일정한 변동 가능성이 있다. '전략자원의 신뢰성'은 우크라이나전쟁과 이란전쟁처럼 복수의 전장에서 동시에 미사일·탄약·방공체계가 소모될 경우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된다. 따라서 한국이 해야 할 일은 확장억제를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한미 간 핵·재래식 통합, 연합작전계획, 한국의 재래식 억제력과 방위산업 기반을 강화함으로써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부담분담 요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이 한국에 더 많은 방위책임을 요구한다면 한국은 이를 단순한 '비용 청구'로만 볼 필요가 없다. 한국군의 감시정찰, 미사일방어, 정밀타격, 해·공군 전력, 사이버·우주 능력, 탄약과 정비·군수체계가 강화될수록 한미동맹 전체의 억제력도 높아질 수 있다. 동맹에 대한 기여를 확대하는 것은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과 협상력을 함께 높일 수 있다.
한일 협력의 확대 역시 이 구조적 변화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동시에 받고 있다.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 해양상황 인식, 대잠수함전, 사이버 방어, 방산 공급망 등에서 양국이 협력을 확대할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일 협력이 곧 한일 군사동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양국의 역사문제와 국내정치, 법·제도적 제약을 고려하면서 실용적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협력을 축적하는 것이 지속가능하다.
한일 및 한미일 안보협력을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역사문제의 정치적 도구화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국은 일본의 방위력 증강, 장거리 타격능력 확대와 무기수출 규제 완화 등을 '재군사화' 또는 '신군국주의'와 연결해 비판하고 있다.7)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한국 외교의 중요한 원칙이지만, 과거사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와 현재 일본의 모든 방위력 강화를 군국주의의 부활로 규정하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한일 간 역사문제를 원칙 있게 관리하는 한편, 역사문제가 동북아의 새로운 진영대립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과거사와 현재의 안보현안을 각각 사실과 국제규범에 기초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한국과 일본의 자강과 협력은 중국과 북한에 새로운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에는 방어적 조치인 장거리 정밀타격, 미사일방어, 해양·우주·사이버 능력 강화가 상대방에게는 압박이나 포위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 정부가 우려를 제기해온 서해 구조물 문제와 중국·러시아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진입은 한국의 위협인식을 높이는 요인이다. 안보 딜레마는 일방이 아니라 쌍방향의 문제인 것이다. 이른바 안보 딜레마를 완화하려면 군사역량 강화와 함께 투명성, 위기소통, 군함·군용기 간 우발충돌 방지, 고위급 전략대화를 병행해야 한다. 한미일 협력의 강화와 한중일 전략소통의 확대가 동시에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우크라이나전쟁·이란전쟁과 경제안보: 한일 협력과 한중일 복원력
복합위기의 두 번째 축은 경제안보이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에너지와 곡물, 방산 생산능력이 전쟁의 지속성과 직결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2026년 2월 시작된 이란전쟁은 호르무즈 해협과 걸프지역의 에너지 수송망을 직접 흔들었다. OECD는 2026년 6월 중동 분쟁에 따른 에너지 공급차질과 가격 상승이 세계성장률을 낮추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핵심 요인이라고 평가했다.8) 2026년 10월 첫째 주에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에 대한 공격이 이란전쟁 발발 이후 주간 기준 최다를 기록하는 등 국제 원유와 정제유 시장의 불안정성이 장기화되고 있다.8)
한국과 일본은 이러한 충격에 특히 취약하다. 두 나라는 세계적인 제조업·무역 강국이지만 에너지와 주요 원자재를 해외에 크게 의존한다. 한국국방연구원에 따르면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한국 약 70%, 일본 약 94%에 달하며,9) 한국 정부는 전체 원유 도입량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하는 비중이 약 61%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약 46.8%로 상대적으로 낮다.9) 중동의 군사적 충돌은 서울과 도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유가와 전력가격, 해상운송비, 기업의 생산비용과 수출경쟁력을 통해 양국 경제에 바로 전달된다. 그래서 한일 협력은 북한 문제를 넘어 에너지와 핵심광물, 반도체·인공지능(AI), 조선·방산, 해상교통로의 안전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6년 5월 19일 안동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중동정세와 공급망 문제를 주요 의제로 논의하고, 원유·석유제품의 스와프와 상호 공급, LNG 수급, 에너지 공급망 회복력 강화 등을 구체적으로 협의하기로 했다.10) 이는 한일 협력의 확대를 모두 중국 견제라는 하나의 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상당 부분은 세계경제의 불안정과 공급망 충격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구조적 필요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복원력 협력을 한미일이나 한일 협력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 한국·중국·일본은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의 핵심이며 공급망이 깊게 연결되어 있다. 2024년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에서도 3국은 공급망 안정, 경제협력, 보건·재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11) 경쟁이 심화되더라도 에너지·핵심광물·해운·반도체 소재·의약품처럼 한 나라의 충격이 다른 나라에 곧바로 전파되는 분야에서는 최소한의 공동 대응체제가 필요하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24년 5월 서울에서 열린 제9차 정상회의 이후 의장국 일본이 추진해 온 제10차 한일중 정상회의는 중일 갈등으로 기약 없이 지연되고 있으며, 여러 장관급·국장급 협의체도 사실상 멈춰 있다.12) 중국이 일본에 대해 희토류 수출통제를 가하는 등 공급망을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한중일 복원력 협력의 전제를 약화시킨다.13) 더욱이 중국은 한일에 비해 호르무즈 의존도가 낮아 공동 비상협력에 참여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작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한중일 협력을 정상회의라는 최상위 형식에만 묶어 두기보다, 서울에 소재한 한일중 3국협력사무국(TCS)과 실무협의체, ASEAN+3의 기능적 협력 틀을 활용해 '낮은 정치' 의제부터 복원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여기서 복원력은 '탈중국' 또는 '탈동조화'와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특정 국가나 특정 해상교통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공급선과 생산거점을 다변화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위험관리이다. 동시에 중국과의 안정적인 교역과 생산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것도 한국 경제의 이익에 부합한다. 따라서 미국·일본과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는 것과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반드시 모순되지 않는다.
한중일 경제안보 협력은 거창한 통합계획보다 위기 때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제도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원유와 LNG, 식량, 핵심광물, 해상물류의 위험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공급차질이 발생하면 긴급협의를 가동하며, 조기경보와 비축 관련 정보를 가능한 범위에서 공유하는 방식이다. 정치·안보적 갈등이 존재하더라도 이런 기능적 협력은 유지될 수 있다. ASEAN+3의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와 비상쌀비축제도(APTERR)는 역내 정치적 긴장 속에서도 기능적 비상협력 장치가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선례이다. 평상시에 협력의 '바닥'을 만들어 놓는 것이 위기 때의 비용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4. 전략적 중강국 한국과 중국의 관점: '인정'의 조건
복합위기 시대에는 한국의 국력과 전략적 위상도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수동적 중견국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은 상당한 재래식 군사력과 조선·반도체·배터리·원자력·자동차·방위산업 등 전략산업의 생산능력, 그리고 미국·일본·유럽·아세안·인도·중동을 연결하는 다층적인 국제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한국은 2021~2025년 세계 9위의 주요 무기 수출국으로 부상했고, 같은 기간 유럽 NATO 회원국 무기 수입의 8.6%를 차지해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공급국이 되었다.14) 미국 역시 자국의 조선산업과 반도체·핵심광물 공급망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자본·생산능력·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2025년 11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는 미국 조선산업 현대화,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인력양성과 공급망 협력을 주요 협력사업으로 명시했다.15) 특히 같은 문서에서 미국은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평화적 목적의 민간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지는 절차를 지지하기로 했다.15) 이는 미국이 동맹 내에서 한국의 확대된 역할과 전략적 위상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사례로도 볼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한국을 '전략적 중강국(strategic middle power)'으로 규정한다. 전략적 중강국은 초강대국이나 대국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주변 안보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군사력, 강대국도 필요로 하는 전략산업과 핵심기술, 다층적 외교·안보 네트워크, 그리고 국익에 따라 일정한 독자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국가를 의미한다. 여기서 전략적 자율성은 동맹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맹을 유지하면서 자체 역량과 협력 네트워크를 넓혀 선택의 폭을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가 제안한 한국·일본·프랑스·영국·독일의 '전략적 중강국 5개국 안보협력체(SMP5)' 구상도 이처럼 확장억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전략적 중강국들이 안보 아키텍처의 능동적 설계자로 나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16)
중국의 대한국 정책도 이러한 한국의 변화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한국을 주로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한 가지 틀로만 바라보면 한국의 정책결정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의 대외정책은 한미동맹뿐 아니라 북한 위협, 국내정치, 한일관계, 산업·기술 이해, 유럽·아시아·중동과의 네트워크에 의해 함께 결정된다. 2026년 1월 이재명 대통령의 국빈 방중 계기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은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중요한 외교적 자산으로 재확인하고 관계를 안정과 발전의 궤도에 올리겠다는 입장을 확인했다.17)
그렇다면 중국은 두 삼각협력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중국은 두 협력체를 전혀 다르게 인식한다. 2023년 8월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직후 중국 외교부는 "강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를 표명하고, 아시아태평양이 강대국 경쟁의 '격투장'이 되어서는 안 되며 진영 대결을 역내에 복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국의 반응이 북한 문제가 아니라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에 집중되었다는 점은, 중국이 한미일 협력을 사실상 대중국 견제 연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18)
반면 중국은 한중일 협력을 경제·통상 중심의 협력 틀로 활용하려 한다. 2024년 5월 서울 정상회의에서 리창 총리는 보호주의와 디커플링, 공급망 단절에 반대하고 경제·통상 문제를 정치화·안보화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19) 이는 한미일 차원의 경제안보 협력이 대중국 배제로 이어지는 것을 견제하려는 의도와 맞닿아 있다. 동시에 중국은 양자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3국 협력을 멈춰 왔다. 2012년 센카쿠 분쟁, 2016년 사드 배치, 2025년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발언 이후가 그 사례이다.20) 중국에게 한중일 협력은 제도화된 원칙이라기보다 대일·대한 관계를 관리하는 지렛대의 성격이 강한 것이다.
따라서 '병행 발전 2.0'에 대한 중국의 수용 가능성은 영역별로 다르다. 경제안보·공급망 협력은 중국이 스스로 강조해 온 '공급망 안정'과 부합하므로 상대적으로 수용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25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제13차 한일중 경제통상장관회의에서 3국은 공급망 협력 강화와 한일중 FTA 협상 가속화 논의를 지속하기로 합의했다.21) 반면 전략안정대화와 같은 안보 의제는 중국이 이를 한미일 협력이나 대만 문제와 연계할 가능성이 커서 수용이 쉽지 않다. 결국 중국 참여의 가장 큰 장애요인은 3국 협력을 양자 갈등과 연계하는 중국의 '연계 전략'이다. 이를 완화하려면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디커플링 반대와 공급망 안정처럼 중국이 스스로 강조해 온 관심사를 의제화하는 이익 기반 접근이다. 둘째, 정상회의보다 정치적 부담이 적은 실무·기능 협력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셋째, 한미일 협력의 목적이 북한 대응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중국이 거부할 명분을 줄이는 것이다. 동시에 복원력 협력은 중국의 참여를 전제조건으로 삼지 않고, 한일을 중심으로 시작해 중국에 문을 열어 두는 '개방형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 그래야 중국의 불참이 협력 전체를 마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불참의 비용이 중국 자신에게 돌아가게 된다.
중국이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원한다면 한국의 한미동맹과 독자적인 안보우려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우려를 제기해온 서해 구조물 문제를 상호존중의 원칙 아래 건설적으로 해결하고, 북핵 문제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체제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한국도 중국이 미국의 군사력 배치와 한미일 안보협력을 왜 우려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인정(Recognition)'은 상대방의 주장을 받아들이거나 양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상대방도 독자적인 이해관계와 위협인식을 가진 행위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관리 가능한 범위 안에 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인정의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중국이 한미일 협력의 확대를 우려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미국 전략의 종속변수로만 보고 양국의 독자적 안보우려를 인정하지 않을수록, 두 나라는 오히려 미국과 더 긴밀하게 결속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중국이 한국과 일본을 독자적 전략행위자로 대우하고 중국과 협력할 실질적인 이익과 채널을 확대한다면, 한미일 협력이 모든 영역에서 자동적으로 대중국 블록으로 발전할 유인을 낮출 수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중국과의 협력은 미국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중국은 한반도 인접 강대국이자 핵보유국이며, 서해·동중국해·대만해협의 안정과 역내 공급망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이다. 한국은 안보상 경계가 필요한 사안과 협력이 가능한 사안을 구분하면서 한미동맹의 원칙과 한중 실용협력을 동시에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전략적 중강국이 취할 수 있는 현실주의적 접근이다.
5. '병행 발전 2.0'과 전략적 3R: 두 삼각협력의 기능적 재설계
앞의 논의를 종합하면 복합위기 시대 한국의 정책은 한미일과 한중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설계하기 어렵다. 북한의 핵·미사일과 북러 군사협력이라는 직접적인 안보위협에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 동시에 전쟁과 공급망 충격, 군사적 오판과 지역적 블록화의 위험은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과의 협력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 두 협력체가 수행해야 할 기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능분담을 '전략적 3R'과 두 삼각협력의 관계로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세 가지 R 사이에는 순서와 기능의 차이가 있다. '책임'은 억제와 방어의 기반이고, '복원력'은 군사·경제 충격의 확산을 막는 완충장치이며, '인정'은 상대방의 행동을 최악의 의도로만 해석해 위기가 확대되는 것을 막는 정치·외교적 조절장치이다. 책임만 강화되면 군비경쟁과 블록화가 심해질 수 있지만, 복원력과 인정이 책임과 결합될 때 자강과 지역안정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과의 협력이나 한중일 협력을 강조한다고 해서 한국의 억제와 자강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충분한 억제력과 자강이 확보되어 있을 때 위기관리와 협력도 더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또한 '인정'은 중국에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와 농축·재처리 관련 절차를 지지한 것은 동맹 내부에서 한국의 확대된 역할을 인정한 사례이며, 한일 간에도 역사문제에 대한 상호 인정이 협력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한다.
첫째 정책과제는 한미동맹과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한미 핵협의그룹과 연합방위태세를 내실화하고, 한국의 재래식 억제력과 방위산업 생산능력, 미사일방어·감시정찰·사이버·우주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NDS가 한국을 대북 억제의 '일차적 책임' 주체로 명시한 만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부담분담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한국이 맡을 수 있는 분야와 미국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를 명확히 구분해 동맹의 역할분담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일 및 한미일 협력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직접 필요한 분야부터 지속가능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정보공유, 미사일 경보, 해양안보, 사이버, 방산 공급망과 연합·공조체계를 강화하되, 한국 국민의 수용성과 한일 간 역사적 쟁점을 고려해 협력의 범위와 속도를 현실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한미일 협력의 목적은 특정 국가와의 대결 그 자체가 아니라 북한의 핵위협 억제와 역내 안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셋째, 한중일 차원에서는 '전략안정대화'를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외교·안보 고위당국자들이 북한 핵·미사일, 대규모 군사훈련, 해상·공중의 우발적 충돌, 위기 시 긴급소통을 논의하는 제도적 채널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정상회의 재개를 기다리기보다 3국 외교·안보 당국의 국장급 협의에서 출발하고, 한중 외교안보대화(2+2)와 중일 간 해공연락 메커니즘 등 기존 양자 채널과 연계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중일 정상 간 대화가 막혀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이 대화의 제안국이자 조정자 역할을 맡을 수 있다. 한중일이 모든 안보문제에 합의할 수는 없지만, 이견이 심각할수록 오히려 위기를 관리하는 상시적 대화가 필요하다.
넷째, 경제안보·공급망 비상협력을 제도화해야 한다. 원유·LNG·핵심광물·식량·반도체 소재와 해상물류에 대한 위험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특정 지역의 전쟁이나 주요 해상교통로의 봉쇄가 발생할 경우 긴급협의 절차를 가동할 수 있어야 한다. 한일 양국이 협력 분야로 제시한 원유·석유제품 스와프와 LNG 협력을 출발점으로 삼아, 참여 의사가 있는 국가에 개방하는 방식으로 한중일 또는 ASEAN+3 차원으로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한중일 협력은 중국 의존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상호의존의 위험을 관리하는 장치로 설계되어야 한다.
다섯째, 북한 핵문제에서는 현실적인 위험감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2026년 2월 노동당 제9차 대회를 통해 핵무력 강화 노선을 재확인했고, 이후에도 핵무력의 지속적 강화를 공식화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에 집착하면서 핵탄두와 핵물질, 운반수단의 무제한 확대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핵실험과 핵물질 생산, 군사적 오판과 우발적 충돌의 위험을 줄일 단계적 조치를 모색해야 한다.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경우 위험감축·군비통제 의제가 부상할 가능성에 대비해 한국은 미국에 전달할 우리 정부의 입장을 미리 정립해 둘 필요가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 확대를 우려하는 중국 역시 북한 핵능력의 추가 증강이 한국과 일본의 자강과 한미일 협력을 더욱 촉진하는 구조적 연쇄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병행 발전 2.0'이 지속되려면 제도적 지속성, 상호성, 의제의 개방성이 필요하다. 정상 간 관계가 좋을 때만 작동하는 협력은 정권 변화나 외교갈등이 발생하면 쉽게 중단된다. 고위급 전략대화, 실무협의체와 위기연락망처럼 반복적으로 작동하는 장치를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상대방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주의와 투명성을 원칙으로 협력의 범위와 한계를 분명하게 설정해야 한다.
결국 복합위기 시대의 동북아 평화와 안정은 '한미일이냐 한중일이냐'라는 양자택일로 확보되기 어렵다. 한국에 한미동맹과 미국의 확장억제, 한미일 협력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안보축이다. 한중일 협력은 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안보 충격과 군사적 오판, 불필요한 블록화를 줄이기 위한 보완적 안정화 장치이다. 책임·복원력·인정이라는 전략적 3R을 통해 두 삼각협력이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이 '병행 발전 2.0'의 핵심이다. 한국은 이러한 다층적 협력구조를 능동적으로 설계함으로써 복합위기 시대의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라 동북아 질서의 능동적 설계자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1. The White House, "Joint Fact Sheet on President Donald J. Trump's Meeting with President Lee Jae Myung," November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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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Muhui Zhang, "Northeast Asia's trilateral framework has hollowed out," East Asia Forum, August 1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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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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