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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부의 영공개방조약 탈퇴결정: 코로나팬데믹속 현실주의 국제정치 [세종논평 No.2020-10]

등록일 2020-06-01 조회수 7,638 저자 정은숙

트럼프 정부의 영공개방조약 탈퇴결정:
코로나팬데믹속 현실주의 국제정치

 

 

[세종논평] No. 2020-10 (2020.06.01.)

정은숙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chunges@sejong.org

 

 

코로나19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군사강국이라 해서 비껴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이 현재기준(2020.5.28.) 전세계 최대 확진자(1,745,803), 최대 사망자(102,107)를 기록하고 있다. 초기 진원지였던 중국은 상대적 안정화속 확진자 규모가 14위이지만 안심은 아니다 (확진자 82,995, 사망자 4,634). 반면 초기 방역성공을 과신했던 러시아는 확진자 규모 3위가 됐고(370,680), 이제는 사망률(3,968)이 낮은 것을 내세우지만 서방은 이 점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처럼 전세계와 미국, 러시아, 중국을 강타하고 있는 중에도 현실주의 국제정치관에 입각한 강대국 상호불신과 경쟁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코로나19로 미중관계는 더 악화됐다. 기존의 불신위에 코로나19의 진원 및 WHO 신뢰도 문제로 골이 더 깊어진 것이다. 

 

미러관계에서도 지난주(5,21) 트럼프 정부의 ‘영공개방조약’ (Treaty on Open Skies, OST) 탈퇴선언이 있었다. 2019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바이기는 하나 최종결정한 것이다. 국방부와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성명을 통해 미국은 반복되어온 “러시아의 비준수”를 이유로 마침내 유럽-대서양 35개국 다자조약으로부터의 탈퇴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히고, 이를 다음날 회원국에 통지했다.

 

“내일 (5.22.) 미국은 탈퇴결정을 회원국에 공식 통고할 것이다. 동맹과 주요파트너들의 견해를 포함하여 신중한 고려를 했다. 러시아가 준수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이 조약에 남는 것은 더 이상 미국의 최고 이익에 부합하지 않음이 분명해졌다. 6개월후 조약에 따른 미국의 의무는 종료된다.”(미국 국방부, 2020.5.21.)

 

영공개방조약은 일찍이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틀내 러시아·동서유럽·미국·캐나다 등 24개국이 1992년 헬싱키에서 체결한 조약이다. 20개 회원국이 비준을 마친 2002년 실효에 들어가  이후 지난 18년 유럽·북미 군사적 신뢰구축에 중요한 보조 축이 되어 왔다. 소련·동구권 붕괴로 인한 신생독립국 출현 등 회원국은 현재 35개국으로 늘어났다 (이중 카자흐스탄은 미비준). 당초 “상호항공감시”개념은 1955년 제네바 회의에서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소련수상 불가닌에게 제의한 것으로서 수용되지 않았으나, 40여년이 지난 1989년 부시(아버지)대통령이 이를 토대로 항공개방레짐을 제의하여 NATO와 바르샤바조약 회원국간 3년여 협상을 거쳐 1992년 3월 헬싱키에서 체결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냉전은 종식됐고 소련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직후였다.

 

영공개방조약은 회원국 상호간 단기 통보에 따른 비무장 감시를 허용함으로써 투명성을 제고하고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도록 설계됐다. 각 회원국에 대한 “수동 쿼터”와 “능동 쿼터” 배분, 지정항공기 사용의무, 4종의 센서 지정, 최소 72시간전 비행감시 요청, 도착 후 96시간내 미션완수, 수집 데이터 공유 등 매우 구체적 약속으로 구성된 레짐이다 (본문 30쪽, 기술부속서 57쪽). 준수관리 협의회가 출범됐으며, 5년마다 리뷰 컨퍼런스가 개최된다. 성과의 한 예로 2002년 발효후 첫 15년간 미국은 러시아-벨로루스 그룹 감시비행을 196회, 러시아-벨로루스 그룹은 71회 미국 영토를 비행감시할 수 있었다. 추가적으로 동기간 미국의 유럽동맹국들은 러시아-벨라루스 그룹을 500회 비행감시했다.

 

그러나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미 오바마 정부 2기, 2014년부터 러시아의 비준수를 지적해 왔고 여러차례 양국간 외교적 물의가 되고는 했다. 러시아의 신형기종에 대한 우려, 접근제한 부과 등을 말한다. 2017년 트럼프 정부 출범이후는 점점 더 큰 갈등의 고리가 됐다. 러시아의 2017년 칼리닌그라드 비행거리 500km제한 부과, 그루지야-러시아 국경 10km 비행거부, 2019년 9월 군사활동 감시비행 거부 등이 논란이 됐다, 미러 정치적 불신 증대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2019년 10월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공개방조약 탈퇴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탈퇴하는 경우 미국과 유럽동맹국에 안보위협이 된다고 강조해 왔다.

 

조약의 기한은 무한정하나 탈퇴권이 보장되는 만큼, 이변이 없는 한 규정대로라면 미국의 탈퇴선언이후 6개월, 즉, 오는 11월 22일이 되면 미국이 영공개방조약을 떠난다. 여타 국가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미국을 제외한 다수 유럽동맹국은 러시아가 최근 여러차례 특정지역 접근거부 등 비준수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라는 점, 그럼에도 11월 22일까지 모종의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 등 절제된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동맹국의 안보손실을 메꿀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 천명하고 있다. 결국 영공개방조약도 지난해 “러시아의 비준수”를 이유로 미국이 탈퇴한 중거리핵전력 조약 (INF조약, 1987)처럼 사라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다만 INF조약이 미러 양자조약이어서 소멸외에는 방안이 없었다면, 영공개방조약은 다자조약이어서 신축성있는 경로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견해가 없지 않다.

 

문제는 적어도 유럽동맹국들과의 관계에서 조약의 창출부터 유지관리, 기술제공까지 영공레짐의 실질적 리더십을 발휘해온 미국의 탈퇴는 레짐의 중요 축의 상실을 가져올 것이고, 러시아로서도 미국이 빠진 영공레짐에 남아 있는 것의 득실을 새로 계산해야 한다. 안보레짐의 보편적 딜레마 즉, 안보와 투명성 사이 득실이다. 러시아가 남아서 유럽내 미군기지를 감시하는 하는 것은 득이지만, 이도 거부될 가능성이 없지 않고, 또 유럽회원국들이 영공감시를 통해 얻은 러시아 군사활동과 시설 정보를 동맹국 미국과 공유하지 않도록 조건을 부과할 수 있는지도 불투명한 일이다.

 

조약에 따르면 일단 탈퇴결정 통고후 60일-90일 사이에 공탁국인 캐나다와 헝가리가 미국탈퇴의 영향을 가늠하기 위한 회의를 소집해야 한다. 7월 22일-8월 22일 사이가 될 터인데,  아마도 팬데믹에 따른 비디오회의가 될 터이고, 여기서 어떤 파격적 대안이 제시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미러 군비통제관련 관건은 2021년 2월이면 종료되는 마지막 남은 New START(새 전략무기감축조약, 2010)의 운명이다. 러시아는 이미 협상기간이 촉박해졌다는 입장인 반면 트럼프 정부는 서두르지 않고 있다. 종종 “중국”도 포함되는 좀더 포괄적 군비통제협상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는 정도다. 아시아의 중국을 구속하지 않는 한, 미국이 냉전기 미·소 양극체제를 전제로 한 유럽·대서양 중심의 군비통제협상에 구속받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새로운 안보환경(중국의 부상과 군비증강), 새로운 기술의 시대(사이버, 우주, AI, 초음속 미사일 등)라는 점에서 군사전략, 국방예산관리 등의 측면에서 트럼프 정부와 미국내 보수인사들에게는 기존 통제레짐에 구속될 이유가 줄어 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적대적 성격의 회원국이 준수하지 않고 그 결과로 장차 미국과 동맹의 안보를 위협받으면서까지 준수할 수는 없다는 논지다. 트럼프 정부의 「국가안보전략」(2017) 에 입각해 볼 때, 힘에 기반한 전략만이 초경쟁적 국제질서하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태세인 것이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다해도 포스트-코로나 제반 충격속 급격히 군비통제레짐으로의 복귀나 신설이 가능할지 알 수 없다. 우리에게는 미중관계에 이어 미러관계에서도 강대국 경쟁과 불신이 고도화되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