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포커스

김정은의 ‘위임정치’와 북한 파워 엘리트의 위상·역할 변화 [세종논평 No.2020-21]

등록일 2020-09-03 조회수 6,647 저자 정성장

김정은의 ‘위임정치’와 북한 파워 엘리트의 위상·역할 변화 


[세종논평] No. 2020-21 (2020.09.03.)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  

softpower@sejong.org 

 

  지난 8월 20일 국가정보원은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비공개 업무보고에서 북한의 국정운영과 관련, 김정은 위원장이 동생인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일부 측근들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방식으로 ‘위임 통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국정원은 “김 위원장이 여전히 절대권력을 행사하지만 과거에 비해 조금씩 권한을 이양한 것”이라며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남·대미 정책을 전반적으로 관장하는 등 권한을 가장 많이 이양 받았고, 경제 분야에서는 박봉주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가 권한을 조금 위임받았다고 밝혔다. 또 군사 분야에서는 당중앙위원회 군정지도부의 최부일 부장, 당중앙군사위원회의 리병철 부위원장 등에게 부분적으로 권한이 이양됐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김정은의 이 같은 통치방식과 인사정책, 용인술을 설명하는 데에는 북한의 ‘선군정치’와 ‘애민정치’라는 표현처럼 ‘위임정치’라는 용어가 ‘위임통치’라는 용어보다는 더 적절할 것으로 사료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위임정치’에 대해서는 “최고지도자가 절대권력과 핵심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보유하면서도 핵심 간부들에게 담당 분야에서의 정책결정에 대해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동시에 결정의 결과에 대해 승진이나 강등 등과 같은 방식으로 확실하게 책임을 묻는 방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기인 2012년에 항일빨치산 2세대의 대표 주자인 최룡해를 북한군 총정치국장에 임명하고 그에게 당시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보다 높은 지위와 막강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단기간 내에 군부의 개혁과 세대교체를 이끌어내었다. 만약 김 위원장이 직접 군부의 세대교체를 진행했다면 군부의 불만이 김 위원장을 향하게 되었겠지만 최룡해에게 권한을 주고 그에게 ‘악역’을 맡겼던 것이다. 김 위원장은 또한 2013년에 개혁적인 성향의 박봉주를 총리직에 임명하고 그의 경제개혁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 결과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장기간 침체되어 있었던 북한경제가 김정은 집권 이후 회복 국면으로 돌아서게 되었고 시장이 주목할 정도로 확대되었으며 ‘평균주의’에 젖어있었던 모든 경제 분야에서 경쟁이 확산되고 선진적이고 효율적인 경영 방식이 전례 없이 강조되었다. 그러므로 김 위원장의 ‘위임정치’는 그의 집권 초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 8월 30일자 로동신문 1면 상단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들인 박봉주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 총리의 황해남도 태풍피해복구 현장에 대한 ‘현지요해’ 기사를 소개했는데 이는 매우 파격적이고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로동신문 1면은 북한의 지도자들 중 김정은 위원장의 공개활동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해외 순방외교를 소개하는 데에만 할애되었고, 내각 총리나 당 간부들의 공개활동은 항상 2면이나 3~4면 등에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은 다시 9월 1일자 로동신문 1면 상단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들인 리병철, 박봉주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들의 태풍피해복구사업 ‘지도’ 사진을 게재했다. 김 위원장의 ‘위임정치’가 핵심 간부들의 위상을 더욱 높여주고 그들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9월 1일자 로동신문 보도는 또한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첫째, 1일자 로동신문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들인 리병철과 박봉주의 사진을 공개하면서 리병철의 사진을 박봉주보다 좌측에 소개함으로써 지난 8월 25일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와 정무국 회의에서부터 박봉주보다 더욱 높아진 리병철의 위상이 계속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핵과 미사일 등 북한의 전략무기 개발 책임자인 리병철 당중앙위원회 군수공업부장 겸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8월 13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되었을 때에만 해도 그의 주석단 서열은 김덕훈 내각 총리 다음 가는 5위였다. 그런데 8월 25일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리병철은 박봉주와 김덕훈 상무위원을 제치고 김정은 위원장 바로 옆자리에 앉아 서열 3위로 위상이 높아졌음을 보여주었고 그 같은 위상 변화가 9월 1일자 로동신문을 통해 재확인된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처럼 리병철 군수공업부장에게 경제 분야의 투톱(박봉주, 김덕훈)과 북한군 총정치국장 및 총참모장보다 높은 서열을 부여한 것은 그가 전략무기의 개발과 실전배치 그리고 대병력 위주의 기존 군대를 전략무기 위주로 개편하는 국방 분야의 현대화를 가장 중요한 국정목표 중 하나로 간주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둘째, 1일자 로동신문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아닌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들의 피해복구사업 현지 지도 사진도 1면에 게재하면서 이들의 활동에 대해 ‘지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과거에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아닌 고위 인사의 현지시찰에 대해 현지의 상황을 파악한다는 의미의 ‘현지요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지도’라는 표현은 김정은 위원장과 노동당에 대해서만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리병철과 박봉주 그리고 다른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들의 공개활동에도 ‘지도’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김 위원장이 그들의 현지시찰시 실무적인 ‘지도’까지 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권한을 부여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셋째, 로동신문이 태풍피해복구 지도에 나선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들을 김재룡(전 내각총리), 리일환(선전선동부장), 최휘(근로단체부장), 박태덕(농업부장), 김영철(대남 담당), 김형준(국제부장)의 순서로 호명한 점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 매체가 고위간부들을 호명할 때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의 이름이 선전선동부장보다 앞에 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장성택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장(사법, 검찰, 공안기관 지도 담당)도 선전선동부장보다 먼저 호명되었었다. 그러므로 이번 호명 순서에 비추어볼 때 김재룡이 당중앙위원회의 가장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나 8월 13일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16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신설된 부서(2013년 장성택 처형과 함께 해체되었던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와 유사한 부서로 추정됨. 신설부서의 이름이 ‘조직행정부’라는 보도도 있음)의 부장 직에 임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은 이 확대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신설부서가 “국가와 인민의 존엄과 이익을 수호하고 사회의 정치적 안정과 질서를 믿음직하게 유지담보하며 우리의 계급진지, 사회주의건설을 철통같이 보위해나가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의 ‘위임정치’가 이미 2012년부터 본격화된 점에 비추어볼 때 이 같은 통치방식이 그의 건강상태와 특별한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 김 위원장이 복잡한 국내외 현안들을 모두 다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위임정치는 간부들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면서 그만큼 책임도 지게하고 그는 핵심적인 정책 결정에 더욱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인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김정은의 통치방식으로 인해 김여정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지시 같은 일부 간부들의 미숙한 결정도 나타날 수 있으므로 ‘위임정치’가 북한의 대남․대외․안보․경제정책 전반에 미칠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세종논평에 개진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