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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와 유럽의 대응 [정세와 정책 2020-09호]

등록일 2020-05-07 조회수 11,072

코로나19 위기와 유럽의 대응


 

조홍식(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chs@ssu.ac.kr

 


2020년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19 위기는 얼핏 보면 전 세계를 일률적으로 혼란의 도가니로 빠뜨린 것 같다. 하지만 시간대에 따라 질병의 중심축이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019년 말 중국 우한(武漢)에서 처음 발생한 질병은 2020년 초기에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2월 이탈리아 북부가 질병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 잡은 뒤 주변국인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3월 유럽으로부터 질병이 옮겨오는 것을 방지한다며 유럽에 대한 입국 금지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4월 들어 새로운 질병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미국은 국가별 통계에서 가장 심각한 확진자(1백만 명 이상)나 사망자(6만 명 이상)의 수를 기록하는 등 코로나19 위기의 중심축으로 등장했다.


이 글에서는 동아시아-유럽-미국으로 진화한 팬데믹(Pandemic)의 지리 가운데 유럽 부분을 조금 더 세밀하게 살펴본다. 첫째, 유럽 내부의 다양성을 비교함으로써 위기에 대한 국가별 대응을 검토한다. 둘째, 코로나19 위기가 초래한 유럽통합에 대한 영향과 전망을 밝혀본다. 셋째, 세계적 차원에서 유럽과 다른 지역이나 세력의 관계를 통해 주목해야할 부분들을 짚어본다. 완전히 새로운 질병,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세계적 확산, 초유의 심각한 경제적 여파, 그리고 앞으로 닥칠 그 정치사회적 후과 등 현재 진행형의 코로나19 위기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무척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유럽 내 위기의 다양성

 

중국에서 코로나19의 중심이 우한이었다면 유럽에서 질병이 처음 확산하기 시작한 지역은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와 롬바르디아 지역이다. 실제 유럽연합 내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왕래하기 때문에 이탈리아로부터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질병의 확산은 시간 문제였다. 2004년 이미 중국 발 사스 위기를 경험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2020년 신속하게 국경 통제에 돌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유럽은 초기에 코로나19를 ‘심한 독감’ 정도로 치부하며 강력한 예방에 나서지 않았다. 사후적으로 보면 1-2월 유럽에서는 코로나19가 빠른 속도로 전역에 확산한 셈이다.


물론 국가별 차이점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탈리아는 5월 초 현재 사망자가 3만 명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국가이며,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이 모두 사망자 2만 명을 넘어섰다. 반면 이들보다 인구가 많은 독일은 6천 명 정도로 사망자의 수를 제한할 수 있었다. 동유럽은 서유럽에 비해 질병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데 성공했다고 평가받는다.


유럽은 EU만 27개 회원국이며, 영국, 스위스, 노르웨이 등 비 회원국까지 합치면 30개 이상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로 구성되어있다. 따라서 코로나19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나 사회문화적 대처를 비교하기 적절한 지역이다. 지금까지의 질병 전개에 대해 이미 많은 가설이 제기되고 다양한 논의들이 이뤄졌다.


대표적으로 유럽에서 관심의 대상이 된 질문은 왜 유럽의 대국 가운데 비단 독일만 심각한 질병의 확산에서 벗어날 수 있었냐는 점이다. 질병의 확산과 관련해 가족 중심 문화를 가진 지중해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독일 문화는 훨씬 개인주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영국 또한 개인주의에 있어 독일에 뒤지지 않는다. 독일은 또 가장 많은 응급 병원 시설을 보유하고 있었고, 덕분에 발생하는 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었다. 물론 독일은 환자 자체가 많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특징을 보인다. 후속 연구가 상세히 따져봐야 할 문제지만 현재로선 독일이 다른 나라보다 일찍 봉쇄 및 격리 조치를 시행한 덕분에 선방할 수 있었다는 가설이 가장 설득력을 가진다.

또 다른 질문은 정부의 사회 통제 방식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강제 봉쇄 격리 조치를 취한 반면 스웨덴이나 네덜란드는 ‘책임지는 자유’라는 슬로건을 따라 시민들의 자율적 거리두기를 선호했다. 이런 이유로 스웨덴은 이웃 덴마크보다, 네덜란드는 이웃 독일보다 질병이 더 많이 확산되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경제적 파급효과는 줄일 수 있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어떤 대응이 더 적절한지는 역시 두고 봐야할 문제다. 코로나19 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유럽통합의 붕괴?

 

코로나19의 충격이 가져온 가장 심각한 국제정치적 효과는 유럽통합의 핵심 기둥을 순식간에 붕괴시켰다는 사실이다. 일반 시민들에게 유럽통합의 가장 가시적인 효과는 유럽연합 내부의 국경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1980년대 실현한 솅겐(Schengen) 조약을 통해 유럽은 국경 검색 없이도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공간으로 부상하였다. 이 오랜 통합의 성과는 지난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로 잠시 위협을 받았지만 이번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완벽하게 붕괴되었다. 국가 간 이동이 아예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다들 이런 상황을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지만 그 누구도 언제 비상사태에서 벗어날지, 완전히 이전의 상태로 복귀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위기는 질병과 보건의 위기로 시작했지만 이 대처 과정에서 국경을 봉쇄하고 강제 격리(confinement)라는 조치를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함으로써 경제의 위기로 전파·확산되었다. 중국은 40여 년 간 지속된 경제성장의 열차가 멈춰 섰고, 미국은 이미 3천만 명이 넘는 실업자가 발생하였다. 유럽 또한 2008년 경제위기보다도 심각한, 더 나아가 1929년의 대공황보다 심각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이미 유럽 지역이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 – 유로존의 경우 –7.5% - 이라고 예상하였다.


문제는 유럽 내부에서 코로나19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불평등하게 표출될 것이라는 점이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심각한 지경에 이른 반면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편이다. 남유럽은 이미 2010년대 글로벌 경제위기에 이어 유럽을 강타한 유로 위기에서 제일 심각하게 타격을 입은 지역이다. 그리스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PIGS(Portugal, Italy, Greece, Spain)라는 명칭으로 불릴 정도로 유로 위기의 최전선에 있었던 나라들이다. 2015년 시리아 난민 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남유럽은 유럽의 외부 국경을 형성하는 피해 지역이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이번 위기를 통해 유럽 위기의 모든 부담은 자신들이 집중적으로 짊어지는데 북유럽은 연대의식을 발휘하지 않고 이기적인 태도로 일관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남유럽 전체도 중요하지만, 특히 이탈리아나 스페인과 같은 대국에서 반(反)유럽 정서가 우세하게 되면 유럽연합은 심각한 존재적 위기에 빠질 수 있다.

 

현재까지 유럽 차원에서 각 국이 보여준 반응은 기존의 남북 유럽의 대립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남유럽 국가들은 코로나19 위기의 심각성에 해당하는 강력한 유럽차원의 대응을 요구하고 나섰다. 공동의 예산이나 채무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 차원의 ‘코로나본드’를 발행하자는 제안이다. 하지만 독일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북유럽 국가의 입장에서 예산이나 채무의 ‘유럽화’는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수 있다며 냉정하고 책임 있는 접근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의 남북 대립이 기존의 논의를 확대 재생한다는 점에서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협력으로 나아가는 기미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 유럽중앙은행(ECB, European Central Bank)장은 위기에는 비상 대책이 필요하다며 코로나19의 위기에 ECB가 유로를 굳건히 지킬 것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밝힘으로써 공공부채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을 암시한 바 있다. 2012년 전임자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Whatever it takes) 유로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유로의 위기를 극복했듯이, ECB의 공개적 의지 표명은 국제 금융시장의 신뢰를 확보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유럽연합 회원국 정상들의 모임인 유럽이사회 또한 지난 4월 23일 5400억 유로에 달하는 공동 지원책을 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유럽과 코로나 위기의 국제정치

 

국제 사회에서 코로나 위기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을 부각시켰다. 2014년 구매력평가기준으로 중국이 미국 경제의 규모를 넘어선 이후 두 나라의 경쟁은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국면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중국의 시진핑 체제의 강화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은 양국의 대립을 극단적으로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미·중간의 무역 전쟁은 코로나 이전에 이미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코로나는 양대 세력의 대립을 다시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악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긴밀한 동맹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아래 미국-유럽 관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방위비를 둘러싸고 악화되었다. 기존의 경제적 경쟁 관계에 덧붙여 외교안보 차원에서도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한 셈이다. 올 3월 유럽이 코로나 위기의 중심으로 부상했을 때 트럼프는 유럽 국가들과 사전 협의나 통보도 없이 유럽에 대한 입국 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대서양 관계는 바닥에 떨어졌다. 유럽이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려고 하는 마스크를 미국이 웃돈을 주고 채갔다는 뉴스는 지엽적인 소식일수도 있지만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얼마나 악화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유럽이 중국과 더 친밀한 관계로 나아간다고 할 수는 없다. 질병이 발생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로비를 통해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를 압박하여 팬데믹의 선포를 늦추고, 독재 공산체제의 선전을 위해 자유 민주주의를 비난하고 나서는 중국에 대한 유럽의 시선이나 여론이 호의적일 수 없다. 유럽은 또 세계화를 통해 만들어진 공급 사슬에서 중국의 중심적 위치가 초래하는 위험을 이번에 톡톡히 경험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작동하는 한 유럽은 언제나 공급 차단의 잠재적 위협을 안고 있다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유럽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코로나19 위기는 중국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향후 전략적 경쟁 관계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유럽은 다수의 국가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 사이의 불평등이 만든 틈새를 중국은 항상 노리고 있다. 유럽이 위기에도 불구하고 상부상조의 공동 대응에 성공한다면 중국은 영향력을 확산할 여지가 그다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경제적 정책을 둘러싼 남북 대립이나 정치 노선에 대한 동서 대립이 극렬해 진다면 중국은 그 틈새를 백분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특히 유럽에서 코로나 위기의 여파로 극우 포퓰리즘이 강력하게 부상한다면 이들은 러시아나 중국의 지원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고, 혹시라도 이들이 집권한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를 우선시하거나 적어도 중시할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의 입장에서 유럽의 전략적 가치는 유럽의 취약성에서 비롯된다. 미국이나 중국이 세계 최강의 자리를 다투며 자국 중심의 세계관으로 국제질서를 구상하고 추진한다면 유럽은 바로 이런 능력을 결여하는 ‘이빨 빠

진 호랑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과 비슷한 입장에서 사고할 수 있고, 원칙과 규칙을 중시하는 다극적이고 다자적인 세계 질서를 지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위기는 이런 현실을 명백하게 드러냈고 그런 점에서 한국과 유럽의 협력 가능성은 높아진 측면이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