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정상회의 평가 : 일본의 시각
[특집]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3국정상회담: 평가 및 전망 지난 8월 18일, 미국 매릴랜드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과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그리고 일본의 기시다 수상이 모여 역사적인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평화협정과 같이, 전후의 국제정치사에 있어서 주요한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어낸 장소라는 점에서도 그 회담의 의의가 남다를 수 있는 이번의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제시된 '캠프 데이비드 원칙'과 '정신' 등에 대해서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는 어떤 평가와 전망을 제시하는지 간략하게나마 살펴본다. [편집위원회] |
[세종논평 No. 2023-10(2023.08.24)]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joyhis@mofa.go.kr
미국 워싱턴 교외 ‘캠프 데이비드’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일본 총리가 회담했다. 이번 회담은 세 가지 의미에서 역사적인 사건이다.
첫째, 이번 단독 3국 정상회의의 개최는 한미일 협력의 실질적인 태동을 의미한다. 이번 합의에 따라 3국이 정상회의 외에 외교장관, 국방장관, 산업장관, 안보담당 보좌관 등 각료급 회의를 연 1회 이상 개최하게 되면, 세계경제의 32%를 담당하는 강력한 협의체가 탄생하게 된다. 미국이 3국 간의 중층적이고 포괄적인 협력의 제도화에 적극적인 배경에는 각국의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협력의 추동력과 연속성을 유지하겠다는 의도가 있다.
둘째, 한미일 협력의 강화는 3국 관계의 ‘약한 고리’인 한일관계의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다. 한일 과거사 갈등은 ‘허브앤스포크’ 동맹의 관리자인 미국을 곤혹스럽게 하였다. 2014년에 헤이그 핵정상회의 계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역할은 한일 간의 위안부 문제를 중재하는 것이었다. 지난 3월 윤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의 결단을 통해 한일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였고,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마중물로 활용하여 워싱턴 회의를 개최할 수 있었다. 한일 간의 적대감, 경제적 유인 및 위협을 통해 한미일 연대를 견제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쉽지 않게 되었다.
셋째, 한미일 협력은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다자연대의 핵심 기제로서, 최근 정책 공조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 쿼드나 오커스를 능가할 가능성이 있다. 3국은 북한의 핵, 미사일, 인권 문제는 물론 인태 지역의 안보위협에 공동 대응하고 공급망과 신흥 기술 등 경제안보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한미일 협력은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의 도전과 도발,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협의체로 진화했다. 인도태평양을 매개로 한미일 3국의 국가전략이 동조된다면,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한미일 협력의 실질화는 인태 지역에서 힘의 균형을 바꾸는 역사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이번에 3국이 군사훈련의 정례화에 합의한 것을 두고 ‘군사동맹화’나 ‘미니 NATO’의 출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집단방어(collective defense)의 한 형태인 동맹은 양자 혹은 다자를 불문하고 ‘자동개입’ 조항을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정상회의의 성과 문서에 따르면, 안보협력 관련 3국의 합의는 국제법이나 국내법 상의 ‘의무(duty)’가 아닌 ‘공약(commitment)’의 범주에 있다. 뿐만 아니라 3국이 약속한 것은 도전이나 위협에 대한 신속한 협의이지 자동개입이 아니다. 미국과 달리, 한일 양국은 ‘3국 동맹화’에 신중한 입장이다. 3국간 군사훈련은 양자동맹인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미일안보조약을 보완하는 것이지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일 협력의 제도화는 미국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이다. 이번 3국 정상회의는 독립된 일정으로 워싱턴에서 개최된 만큼, 일본 정부는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검토하고 싶어했다. 그렇지만 바이든 정부는 미국에 우호적인 한일의 지도자들이 포진되어 있을 때 한미일 협력을 제도화하고자 했고, 한일 과거사 문제가 진전을 보이자 3국 정상회의의 개최를 서둘렀다. 한미 양국은 내년에 선거가 예정되어 있고 일본도 중의원 해산 가능성이 있는바, 한미일 협력이 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은 정상회의의 공동성명에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표현을 포함시키는 것에 신중했던 만큼, 일본은 이번 정상회의의 공동성명에 중국을 지목한 항목이 포함된 것에 주목하면서 향후 대중국 정책 관련 한미일 공조의 강화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의 비핵화’ 표현이 복원된 것은 윤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이 투영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일본은 한미일 협력이 북한 문제를 넘어 인태 차원의 협력으로 확장된 것도 이번 회의의 성과로 간주한다. 그동안 한미일 3국은 주로 한반도 문제를 중심으로 협의해 왔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도-태평양과 유럽 동맹국들의 중요성이 커졌고,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 대비한 공급망 강화, 해양 안보 등도 논의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와 동시에 일본 사회에는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고려하여 미중 대립이 과도하게 격화되는 것을 피하고 긴장 완화를 위한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그 연장선에서 한국은 중국과의 갈등을 피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일본과 이해가 일치하므로 한일 양국이 협조하여 한중일의 의사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은 한국과의 전략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자국의 안보에 유리하지만,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와 전략환경의 차이 등으로 인해 한미일 안보협력은 미국-호주-일본 간의 협력보다 수준이 낮다고 본다. 지난 광복절 기념사에서 윤 대통령은 일본에 있는 유엔군후방사 기지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일본 국민의 다수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연루를 우려하고, 개입에 신중한 입장이다. 지난 5월 한일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한미 간에 논의 중인 핵협의그룹(NCG)에 일본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은 환영보다는 당혹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핵무장 논의가 자유로운 한국과 달리, 피폭국 일본에서는 자체 핵 보유는 터부에 가깝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이상으로 삼으면서도 현실에서는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에 자국의 안보를 의존하고 있는 것이 일본이다. 핵 공유론의 경우 일본 국내에서는 여전히 알레르기 반응이 강하고, 한미와 같은 수준으로 협력을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미일 협력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일관계의 안정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관계는 ‘온탕-냉탕’을 수 없이 반복해 왔고, 아직도 과거사 문제의 불씨가 남아 있다. ‘컵의 반잔’을 채우라는 한국 측의 요구에 대해 일본의 대응은 더디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직시’와 ‘미래 협력’을 병행하는 현재의 어프로치는 유지되어야 한다. 한일이 미래협력을 확대하다 보면 과거사 화해가 더 용이해질 수 있다는 것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기본 취지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일국교정상화 70주년이 되는 2025년을 앞두고 동 공동선언을 업그레이드한 새로운 미래비전이 검토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과도한 미중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한일 양국이 연대하여 한중일 협력을 강화하는 노력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