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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의 재조명: 경제 분쟁을 넘어 패권 및 이념 갈등으로 [정세와 정책 2020-11월호-제27호]

등록일 2020-11-03 조회수 5,403

미중 갈등의 재조명: 경제 분쟁을 넘어 패권 및 이념 갈등으로

 

김기수(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kskim@sejong.org

 

 

 

서언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후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경제 압력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중국의 과도한 대미 무역흑자가 문제였다. 미국의 총 대외무역적자 중 거의 절반이 중국에서 연유된 사실이 특히 부각 됐다. 당연히 쟁점은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축소에 맞춰졌고, 이를 위해 미국은 상당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평균 25% 내외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부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의 요구 사항은 대중 무역적자 축소를 넘어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 시정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 보호, 공기업에 대한 보조금 중단 등 다양한 이슈가 도마 위에 오르며 분쟁은 더욱 확대됐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경제적 성격이 짙은 분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올랐다. 중국이 요구한 신형대국 관계와 중국의 남중국해 군도 점령 및 군사화는 패권 도전이라는 용어가 이슈화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이 미국 패권에 도전한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미국의 대응은 당연히 달라졌다. 경제, 외교, 그리고 군사 분야를 포괄하는 봉쇄 수준의 대중 압박이 가시화됐다. 여기에 흥미롭게도 2020년에 들어와서는 이념 논쟁이 덧붙여졌다. 미국 고위당국자들은 중국의 모든 문제가 결국 공산당 일당 독재, 즉 중국이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라는 사실에 기인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 양국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된 것일까?

 

중국의 대미 무역적자에서 시작된 경제 분쟁 

 

2018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기준 약 3,75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중 2,000억 달러 감축을 중국 측에 요구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시작됐다. 2017년 미국의 대중 수입은 5,050억 달러, 반면 대중 수출은 1,300억 달러였다. 같은 해 미국의 총 대외무역적자가 7,950억 달러였으므로 대중 무역적자는 미국 전체 무역적자의 무려 47%를 차지했다. 또한 당시 중국의 총 대외무역흑자가 4,225억 달러였음에 비추어 미국으로부터 얻은 무역흑자는 중국 전체 흑자의 무려 89%였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중국의 막대한 무역흑자는 미국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한 결과였다.

 

무역흑자를 2000억 달러 감축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중국은 난색을 표했다. 이에 대응 2018년 7월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미국이 25% 추가 관세를 처음 부과하며 경제 공세가 시작됐다. 곧이어 중국의 대미 수출 중 2,000억 달러 물량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도 확정됐다. 중국 역시 미국 수입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부과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중국의 대미 수출은 총 5050억 달러였지만, 미국의 대중 수출은 1300억 달러에 그치고 있어 중국의 양적 보복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중국 전체 무역흑자의 무려 89%가 미국에서 비롯됐다는 통계는 중국의 대미 의존성을 보여준다. 힘에서 밀린 중국의 요구로 2019년 1월부터 무역협상이 시작됐고, 우여곡절을 겪은 후 2020년 1월 양국은 1단계 합의에 도달했다. 다양한 내용이 있지만 향후 2년에 걸쳐 중국이 2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상품을 추가 구매한다는 것이 내용의 핵심이었다. 반대로 미국은 추가관세 부과를 유예했다. 결국 중국이 양적인 측면에서 밀리면서 미국에 승복했음을 알 수 있다.

 

전선의 확대와 불공정 무역 시정 요구

 

미국의 요구는 위와 같은 무역불균형 시정에 그치지 않았다. 양국 경제관계의 질적 변화를 요구했는데, 불공정 무역행위의 개선 혹은 근절 요구는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중국 제조 2025’에 따른 중국정부의 보조금 지급 및 일체의 지원을 중단하라는 요구는 대표적 사례였다. 미국회사의 지적재산권 및 상업기밀에 대한 중국의 절취 행위 중단, 중국 내 미국 투자자의 동등한 권리 인정, 그리고 외국인 투자 및 지분비율 제한 해제 등도 촉구했다. 금융을 포함 외국 서비스 기업에 대한 가시적인 시장개방 역시 미국의 요구 사항이었다.

 

2018년 기준 국유기업과 민간기업에 대한 중국정부 보조금이 624억 달러에 달한다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주장은 상황을 보여준다. 2017년 미국 지적재산권 도용 위원회(The Commission on the Theft on American Intellectual Property)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도둑맞은 지적 재산권 가치가 연간 6000억 달러로, 이 중 약 85%가 중국으로부터 기인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미국 상무부의 로스(Wilbur Ross) 장관 역시 “미국의 천재들이 중국으로부터 공격당하고 있다”는 과격한 용어를 사용하며 중국을 비난하는 데 앞장섰다. 바로 이런 시각에 기초, 미국정부가 중국 IT 기업 화웨이에 대해 강력하게 제재를 가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결국 중국의 경제체질 자체를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전환하라는 압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양국 분쟁의 확대, 그리고 패권 경쟁

 

2017년 6월 트럼프 당선의 일등 공신이었던 백악관 수석전략가 배넌(Stephen Bannon)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25-30년 후 미국과 중국 중 한 국가는 세계 패권국이 될 것이다. 지금처럼 나가면 중국이 패권 자리에 있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 핵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고,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중국과의 경제전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 중국과 경제전쟁 중이다.” 지금까지의 단순 경제 분쟁과는 차원이 다른 패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2017년 12월 미국 국가안보전략 보고서(NSS: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s States of America) 역시 중국의 패권 추구를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대체하려 하고 있으며 그들의 국가 중심 경제체제를 확대하여 이 지역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다시 구축하려 한다.” 약 10년 전부터 중국이 주장한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 즉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중국의 우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중국 패권 도전의 상징이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곧 중화민족의 꿈이다”라는 시진핑 주석의 주장 역시 중화제국의 부활과 세계적인 팽창을 의미했다. 난사 군도(南沙群島) 일부 섬의 무단 점령과 군사기지화, 그리고 반(反)접근·지역거부(Anti-Access, Area Denial) 전략 역시 미국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남중국해는 중국의 내해이고 이를 중심으로 동쪽의 광범위한 섬의 연계(도련) 부분도 중국의 관할이므로 미국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는 의미였다. 한마디로 서태평양과 인도양 동쪽에서 미국이 나가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앞서 배넌이 사용한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용어는 경제영역을 넘어 군사분야를 포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대만에 대한 적극 지원과 군사 요새화 시도, 미국, 일본, 호주 그리고 인도의 반중 외교・군사 연합체인 쿼드(Quad)의 출범, 남중국해 미국 해양 군사훈련에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참여는 중국의 패권 도전에 대한 미국의 대응인 셈이다. 결국 동아시아에서 미국에 의한 대중 압박과 봉쇄는 현실이 됐다.

 

 

최고 수준의 격돌과 이념 분쟁

 

2018년 10월 존 볼튼(John Bolton)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은 중국을 금세기의 주요 문제로 여기고 있고, 이 세계가 새로운 냉전 상황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중요하게도 미국의 핵심 정책결정자가 미국과 중국의 냉전을 인정한 셈이다. 냉전에는 ‘이념분쟁’이 포함돼 있다. 팽창적인 공산주의 소련의 대외정책에 대한 억제 내지는 봉쇄를 의미하는 1947년 ‘트루먼 독트린’은 냉전의 기원이었다.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대변하는 미국의 가치와 공산주의 공유경제를 주도하는 소련의 그것은 양립할 수 없다는 원칙이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두 국가 모두 핵 강대국이었으므로 핵 억지력의 결과, 직접적인 군사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열전이 아닌 냉전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이유다.

 

볼턴의 언급은 위의 상황이 반복됐다는 의미인데, 2020년 5월 공개된 미행정부의 대의회 보고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United States Strategic Approach to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에서도 중국이 미국의 가치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 즉 건국 이래 미국이 지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는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는 자신만의 가치를 중국이 전 세계에 전파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념 분쟁의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서 중국이 추구하는 가치는 당연히 공산주의를 의미하는데, 로버트 오브라이언(Robert C. O’Brien) 대통령 안보 담당 보좌관이 2020년 6월 아리조나에서 행한 연설에는 이와 관련 더욱 극적인 표현이 담겨 있었다: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 조직이고, 공산당 서기장 시진핑은 자신을 소련 요세프 스탈린의 후계자로 여기고 있다.” 결국 중국이 세계에 전파시키려는 것은 공산주의 이념과 체제이므로 이는 미국의 가치와 체제를 전복하려는 것과 매한가지라는 주장이 가능한 대목이다.

 

  시진핑 주석 역시 미국의 공세가 어떤 것인지를 잘 인식하고 있었다. 10월 초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항일 승전 75주년 좌담회에서 미국과의 정면 승부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든, 그 어떤 세력이든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왜곡하고 비하하려 한다면 중국 인민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 길을 왜곡하고 중국 인민의 사회주의 건설 성과를 부정하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 가장 최근인 지난 10월 25일 시진핑 주석은 2000년 장쩌민 주석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전쟁 참전 기념 행사에 참석하여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제국주의 침략 확대를 억제하고 중국의 안전을 수호한 전쟁으로서 침략자(미국)를 때려 눕혀 신중국(新中國)의 대국 지위를 세계에 보여줬다.” 미국이 중국의 핵심 이해를 건드리면 미국에 패배를 안겨주겠다는 의미인바, 이상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이념적으로 정면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무리가 없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가시화되기 시작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애초 경제분규를 넘어 패권경쟁의 양상을 띤 후, 급기야는 이념 분쟁의 수준으로 급속히 확대됐다. 상황이 이렇다면 미국은 경제적 수단을 넘어 외교, 군사 등 거의 모든 압박 수단을 중국 공산당의 소멸 시까지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소련에 대한 강한 압박을 통해 소련제국의 붕괴를 유도했던 것과 흡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과연 그런 강한 압력을 견딜 수 있을까? 중국의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