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020대선과 민주주의의 위기
강명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miongsei@sejong.org
극단적 양극화와 사상 최대 참여율
결국 승자는 결정되었다. 2020 대선에 대해 거의 대부분의 예측조사는 선거기간 내내 바이든의 압도적 승리를 예상했었다. 선거 당일 여론조사 평균은 52.6% 대 44.6%로 바이든 우세를 예상했었다. 성인 대상 조사결과는 53.7% 대 41.8%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50.2% 대 47.7%이다. 일일기준 10만여 명이 확진되는 코로라 팬더믹 국면에서 누가 보아도 집권당 후보 트럼프의 패배는 당연했다. 사실, 트럼프 정부의 국정수행 평가는 41%로서 역시 최악이었다. 그것은 1992년 아버지 부시를 제외하면 역대 가장 낮았다. 그러나 승패확인은 예상과는 달리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번 선거는 미국사회의 양극화가 예상보다 아주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 선거였다. 2016년 대선을 기점으로 본격화된 정치적 양극화는 이번 선거에서 극도로 악화되었다.
양극화로 인해 투표율은 고조되어 32개 주에서 1980년 최고 기록은 갱신되었다. 이번 대선 투표율은 지난 120년 역사에서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 1). 예상 투표율은 약 65%이며 참여율은 특히 격전지 주에서 상승했다. 미네소타 주의 투표율은 80%에 육박한다. 위스콘신, 미시간, 플로리다, 노스 캐롤라이나 등에서 투표율은 2016년에 비해 5% 이상 높다. 바이든과 트럼프는 각각 740만표와 700만표를 얻은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는 각각 역대 최고치와 두번째이다.
2020 미국대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최근 미국학자들은 미국정치에 대해 사회심리적 관점에서 양극화를 “정체성의 위기"라는 렌즈를 통해 이해하려 한다. 위기의 저변에는 구조적 변화가 있다. 구조적 변화에 대한 행위자의 대응에 주목하지 않으면 극도의 양극화 현상을 이해불가능하다. 미국사회의 구조적 변화는 인구학적 구성의 변화이다. 이는 지속적 흐름이며 단순히 이번 선거에만 해당되지 않으며 그런 점에서 2020년 결과는 2016 대선의 연장이다. 미국은 지난 수십년 간 인구사회적 차원에서 다양성의 확대를 경험해왔다. 백인의 다수적 위치는 하락하고 라틴계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라틴계는 이민 증가와 다자녀 습성으로 흑인이나 백인에 비해 증가속도가 빠르다. 백인에게 수적 변화는 지위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된다. 위협은 처음에는 저학력 및 저소득 백인에 한정되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중산층 백인도 이에 공명하고 있다. 트럼프 현상은 백인 스스로가 역차별받는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에서는 패배했으나 그가 획득한 48%에 달하는 지지는 여전히 뚜렷한 추세임을 확인시켜주었다. 트럼프를 지지했던 핵심요인은 인종 및 이민관련 갈등이다.
집단 정체성과 양극화
이러한 쟁점의 핵심은 정체성 문제이다. 인종, 무스림, 이민자 등을 둘러싼 쟁점은 결국 개인이 스스로를 어느 집단에 속한다고 보는 가에 달려 있다. 지난 20년 동안 주도적 미국정치학자들은 집단의 사회문화적 성격에 주목해왔다(Bartels 2018; Green, Palmquist, and Schickler 2001; Sides, Tesler, and Vavrek 2019). 당파성이 다르면 팬더믹 대처방법에서도 편향성을 보인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지지자 중 18%만이 코로나바이러스보다 경제가 더 중요하다고 본 반면, 바이든 지지자의 80%는 경제문제보다 코로나 대처가 더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CBS 11월 7일). 사회심리적 이론에 따르면 개인은 잠재적으로 다양한 집단에 속하며 역사적 상황과 조건에 따라 내집단 즉 지배적 집단소속감을 갖는다. 내집단은 감정적 정서적 연대를 기반으로 정체성을 형성한다. 내집단 형성은 상황에 따라 외집단에 대한 배제로 발전한다. 집단은 스스로의 유대에 만족하지 않고 타집단에 대한 공격을 개시할 수 있다. 인종적 및 종교적 기반 위에서 만들어진 태도는 정치적 당파성과 결합한다. 민주당 지지층은 인종적으로 소수인종과 이민자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갖는다. 반대로 공화당 지지자는 이들에 대해 적대적이다. 정체성은 잠재적으로 인종, 세대, 계급(직업) 등에 기반하지만 일정 상황에서는 어느 하나의 정체성을 선택한다. 노동조합에 속한 백인은 잠재적으로 계급적 정체성과 인종적 정체성을 포괄하지만 특정 국면에서 어느 하나가 지배적이게 된다. 2016년 대선에서 백인 다수는 인종적 정체성에 따라 투표했다.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나 중산층은 시장이나 이민, 인종분포의 변화에서 지위가 위협받는다고 느꼈다. 트럼프는 이같은 위협을 자극하고 백인의 정체성에 호소했다.
1930년대 뉴딜시대부터 지속되어온 민주당 연합 즉 백인노동, 흑인, 유대인 등으로 구성된 자유주의 결합은 1960년대 민권운동을 거치며 공고해졌고 오바마 당선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자유주의 연대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것이 아니다 (Schickler 2018).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 선출은 저학력과 저소득의 백인 집단을 중심으로 자유주의 연대에 대한 반동을 낳았다. 회의는 중산층 백인으로 번져갔다.
집단 정체성의 내용이나 정치적 연관성은 맥락에 달려 있다. 첫 번째 맥락은 집단이 느끼는 손익이다. 수혜나 손실은 물질적인 동시에 심리적 위상 등을 포괄한다. 손익과 심리적 위협 등이 현저해지면, 집단 정체성이 발현되고 강화된다. 집단은 집단의식을 매개로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며 분노를 표출한다.
둘째, 맥락의 중요성은 행위자에 있다. 구조는 배경일 뿐 행동을 만들지 못한다. 배경은 동기부여와 결합하여 정치엘리트를 움직인다. 정당과 후보는 기업가적 자질을 발휘하여 구조적 배경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사회적 괴리를 과정하거나 심지어 만들어낸다. 행위자는 배경에서 불거진 사회적 불만을 과대포장하여 대중에 접근한다. 극심한 경제적 불황이 온다고 저절로 파시즘이 등장하지 않는다. 파시즘은 히틀러를 통해 국가권력에 접근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있다. 트럼프는 백인이 느끼는 신변위협(status threat)을 과장하여 집단적 정체성을 변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제조업 백인노동자는 민주당 지지에서 이탈하여 트럼프를 지지했다. 집단적 정체성이 다른 정체성을 압도하여 투표결정의 가장 주요한 키가 되었다. 집단적 정체성이 당파성과 결합할 때 집단적 정서는 정치적 무게를 강화한다.
<그림 2>에서 보듯, 당파성은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걱정에도 영향을 주었다. 트럼프 자신과 마찬가지로 공화당 지지층은 코로나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 반면, 민주당 지지층은 크게 우려한다. 전혀 우려하지 않는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6.4%만이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신 트럼프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코로나를 크게 걱정하는 공화당 지지층 87.4%가 트럼프를 지지하겠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객관적 사실도 정체성의 렌즈를 통해 왜곡된다. 자신의 지지하는 정부에 대해서는 실정도 감싸고 지지하지 않는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객관적 실적이 좋더라고 비판한다. 트럼프 지지층은 “내가 실직한 것이 아니라 다른 집단 사람에 비해 내 주변 사람들이 일자리를 더 많이 잃었다"고 집단적 분노를 표시했다. 경제적 불만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고 인종적 균열라인을 타고 분출되었다.
2020년 대선결과는 정치적 정체성이 역대 최대 양극화를 만든 원인이다. 이 결과는 사실 이전부터 존재하던 잠재적 사실의 재현이었다. 2020년 10월의 여론조사는 각 진영이 상대 진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잘 보여준다(PEW 2020). 바이든 지지자의 88%는 트럼프 지지자와는 정책선호가 다를 뿐 아니라 미국적 가치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한편 트럼프 지지층은 바이든 지지층 보다는 낮지만 77%가 바이든 지지자에 대해 본질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양 진영은 서로 병립할 수 없는 진영논리에 서 있어 향후 민주당과 공화당이 서로 적대적으로 대치할 것임을 예고한다.
양극화의 뒤끝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번 선거 결과는 바이든과 민주당의 승리이지만 완승이라기 보다 두 후보가 체현한 당파적 정체성의 팽팽한 격전이었다. 트럼프 지지층은 공화당 기득권을 비판하며 트럼프 방식을 지지한다. 백인은 전 유권자의 약 75%를 차지하며 그 중에서 53%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인종 뿐 아니라 교육수준, 거주지역 및 세대 별로 지지후보가 갈렸다. 대졸출신 투표자 57%, 여성 55%, 그리고 도심거주자 67%, 그리고 45세 이하는 55%가 바이든 후보를 선택했다 (AP, 11월 5일). 둘째, 인종이나 종교적 요인은 어느 후보를 선택했는지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백인 기독교도 81%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셋째, 2016년 선거와 다른 점은 코로나 바이러스 국면의 효과이다. 진영논리가 경쟁하는 과정에서 승패를 가름하는 것은 중간층이다. 일반적으로 중간층은 집합정체성으로 나뉜 양대 진영에 비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높은 투표율은 양대 진영 뿐 아니라 중간층의 참여를 높였을 것이다. 중간층의 참여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적극적 대처정책에 대한 요구일 것이다. 또한 2016년 트럼프를 지지했던 민주당 지지층이 바이든 지지로 회귀한 수가 당시 클린턴을 지지했던 공화당 지지층이 이번엔 트럼프를 지지한 표보다 많았음을 의미한다. 이 점은 핵심 격전지인 러스트 벨트의 역전에서 잘 나나났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지지후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매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민심으로 나타난 극단적 양극화를 생각할 때 이 선거는 트럼프 대 반트럼프 전선으로 이해된다. 미국인은 특히 이민과 재분배 쟁점을 중심으로 두 집단으로 양극화되어있다(그림 3). 트럼프 지지층은 사회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재분배를 요구하는 점에서는 진보적이다. 부유세 등의 재분배는 전통적 공화당 정책이 아니다. 반이민적 태도는 민주당과 어긋나지만 재분배 방향은 민주당에 가깝다. 양당이 경제정책에서 동일하다면 정체성에 기반하는 사회문화적 정책이 승패를 가를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공약: 코로나 극복과 경제회복
바이든은 역대 최고령 당선자이며 공직을 가장 오래 경험한 정치인이다. 그는 승리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가 만든 중차대한 국가적 위기를 처리해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제1차대전, 한국전 및 베트남 전의 피해를 합한 것보다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또한 팬데믹은 대공황이후 최대의 실업률을 만들었다. 2020년 10월 실업자 총수는 1110만 명이며 실업률은 6.9%이다. 4월 14.7%에 달했던 것에 비해서는 낮아졌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에 있다. 코로나가 본격화된 2020년 2월 이후 영구적 실직자는 크게 늘어 10월 현재 370만명으로 2월보다 240만명 늘어난 것이며 일시적 실직자는 320만 명이다.
바이든 후보는 실업을 해결하고 경제를 활성화하기위해 재정팽창 정책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행정부 국가 재정을 뉴딜급으로 확장하려는 목표이다. 뉴딜급 재정은 주와 지방정부를 지원하고 실업급여 등 사회지출을 확대하여 피해자를 보호하고 요식업 등의 중소자영업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뉴딜재정은 의회를 통해 입법화돼야 하지만 공화당이 상원의 다수를 지키게 되면 바이든의 목표는 장애를 만날 것이다. 상원의 반대를 비껴나갈 수 있는 대통령의 행정명령권은 일시적이다. 경제정책의 핵심은 코로나로 망가진 경제의 재건에 있다. 새로운 정부는 경제회복을 위해 재정팽창을 확대할 것이다. 기후정책은 2조달러를 클린에너지 산업에 대한 투자, 그리고 2035년까지 카본배출을 0으로 줄일 것을 제시했다.
그러나 의회구성은 팽팽한 대립을 만들어 내 새로운 정부는 만만치 않은 의회를 상대해야 한다. 공화당의 반대는 우려스러울 만하다. 공화당을 이끄는 미치 맥코넬 상원의원의 도전도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온건합리적 대화주의자인 바이든은 공화당이 상원을 지배할 경우 협상과 압력 모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30년 가운데 20년이 대통령과 의회가 각각 다른 정당이 지배하는 분점정부였다. 2011년의 오마바 정부와 의회 간의 진퇴양난이 재현될 지도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을 경제적인 면에서 좌로 사회적 차원에서는 우로 이동시켰다. 2016년 대선 당시 경제적으로 진보적(liberal)인 투표자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한편 트럼프는 민족정체성의 축을 보면 민족주의적(nativist) 성향의 투표자를 동원하는데 성공했다.
미국 민주주의의 숙제
200년 수령의 미국 민주주의가 도전받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건국자 매디슨이 추구했던 합의와 다양성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재의 양당제와 제왕적 대통령에서 기인한다. 제도적 해결은 다수결 선거제도를 비례대표제로 개혁하여 양당제를 다수당 체제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득권 정치가 비례대표제에 합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받은 7천만 표를 기반으로 현재 불복 태세에 있다. 트럼프를 지지한 7천만 투표자는 트럼프가 이용한 거대한 정체성의 저수지이다. 후자는 바이든 지지층과는 상반된 정체성이며 다른 정책을 지향한다. 선거에서 낱낱이 드러난 양극화의 정도를 감안하면 정책선호는 이미 정당일체감으로 결정되었을 수도 있다. 트럼프의 불복 움직임 속에서 그가 그림자 대통령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2024년 대선에 대비하려는 움직임도 제기되었다. 긴 대선레이스를 감안하면 재선을 “포기한” 바이든은 2년 반짜리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2020년 팽팽한 대결의 유산은 미국 민주주의의 불확실성을 더해주는 대목이다. 바이든 당선자는 통합의 대통령을 약속하지만 정체성의 정치는 약속이행을 매우 어렵게 만들 것이다. 통합은 약속하기는 쉽지만 구체적 정책으로 트럼프 지지층을 달래야 할 경우 지지기반이 이반할 수 있다. 국민통합을 추구하는 단임 대통령 바이든에게 의회의 반발과 시간 등 정치적 자원은 많지 않다. 1월 5일 실시되는 조지아 주 상원의원 결선투표는 바이든 정부에게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