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방한의 외교학과 한중 정상회담 전망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sunnybbsfs@gmail.com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최근 방한이 있은 후 시진핑(習近平) 주석 방한 가능성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그 시기는 유동적일 것이다. 시 주석 방한 시 정상회담에서 다루어질 의제는 이번 왕 부장을 통해서 어느 정도 그 윤곽이 들어났다 할 수 있다. 이번 왕 부장 방한을 중국의 전략적 관점에서 반추해 보고 다가올 한중 정상회담을 사전에 점검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중국 외교부의 표현대로 왕 부장은 이번 방한에서 과연 ‘풍부한 성과’(豐富成果)를 얻었다. 중국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미국의 개입 없이 동북아시아 지역 협력을 중국 주도로 진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확보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코로나19 공동 대응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한중 FTA 2단계 조속히 추진, 한·중·일 FT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한중, 한·중·일 3국의 경제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과 한일 아시아 동맹관계 자체가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의해 도전받는 상황에서 미국의 동맹국들을 중국 쪽으로 견인하고자 하는 중국의 기회 본능이 상당 기간 지속돼 온 상황에서 중국이 ‘방역’과 ‘경제’를 한·중·일 협력 견인의 키워드로 삼았다. 미국이 부재한 상황에서 중국이 동북아 협력틀을 ‘디자인’하고 돌아간 셈이다.
왕 부장 방한을 ‘한국과 중국’이라는 양자 간 관계 역학으로만 보고 주요 현안 키워드를 뽑아내려고 했던 경우, 한중 외교장관 회담 후 왜 한국 정부가 강조한 사항과 중국 정부가 강조한 사항들이 서로 차이가 있는 지 궁금해지게 마련이다. 한국 측은 '한중관계 미래 발전위원회' 설립 등 한중 우호 양자관계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중국은 중국이 구상하는 동북아전략 큰 그림 속에서 ‘한·중·일’을 생각하고 그 안에서 다시 한중관계를 본 것이다.
이제 한국도 ‘한중’을 하면서 ‘미중’도 보고 ‘한일’도 보고, ‘한미일’과 ‘한중일’ 역학 관계를 다 고려할 수 있는 입체적 외교를 펼쳐야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왕이 방한의 목적에서 보면 한국의 큰 관심사인 북핵 문제는 중국 측 입장에서는 이번에 주요 방한 이슈가 아니었음도 알 수 있다.
왕 부장은 시 주석의 한국 방문 가능성에 대해 “여건이 허락할 때” (청와대 대변인. 2020.11.26.)라고 했다. 방한 시기를 한정하지 않았다. 왕 부장 방한과 관련 중국 외교부는 총 6개의 보도문을 발표했는데 그 중 어디에도 ‘시진핑 방한’과 관련한 내용은 담겨져 있지 않다. 한국 측이 중시하는 내용이 중국 측 내용에 담기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 외교의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한중 고위급 교류 ‘공공외교’ 효과와 실익 외교 모두 잘 살려야
이번 왕 부장 방한에서 중국 측이 얻어간 성과에 견주어 한국은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근까지의 한중 관계의 현안을 보자면 한국 측이 중국 측에 제기했을 만한 주요 사항들은 △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 시진핑 방한 등이다. 현재까지 볼 때 이들 중 해결된 것은 아직 없는 듯이 보인다.
왕 부장은 작년 12월 방한 시 "사드는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서 만든 것"이라고 미국을 비난했지만, 이번엔 "한국이 중한 민감한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하길 희망한다"(希望韓方妥善處理中韓間敏感問題)고 한국을 직접 겨냥했다. 한국 일각에서는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당장 마땅한 해결 방법이 없기에 되도록 의제화 시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것은 중국의 전략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중국은 잊지 않는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양국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심화하고, 양국 교류 협력을 더욱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2019.12).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시 주석의 방한은 박근혜 정부 때 사드배치 이후 냉랭해진 한중관계를 완전하게 복원하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2020.9).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한국 정부가 중국으로부터 원하는 것은 한중 관계 회복과 교류 협력 확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왕 부장은 사드 문제를 우선 해결하는 것이 한중 ‘협력의 기초’(合作基礎)라고 했다. 즉, 중국은 이미 해결한 듯 보였던 사드 문제를 미중 경쟁 심화 속에서 한국이 미국 바이든 출범을 앞두고 미국 측으로 선회하지 않도록 견제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중국은 한한령 해제와 시 주석 방한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
시진핑 방한은 정부 인사들이 거듭 반복해서 공개적 언급을 하여 국민들이 관심을 갖게 만든 측면이 있다. 2017년 12월 시 주석에게 한국을 방문해 달라는 뜻을 문재인 대통령이 천명한 후, 2018년 3월 대통령의 특사로 베이징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시 주석에게, 2018년 11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문 대통령이 다시 시 주석에게, 2019년 12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문 대통령이 다시 밝혔다. 그리고 다시 2020년 2월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중국 왕이 부장에게, 2020년 5월 문 대통령이 시 주석과 전화 통화 시, 그리고 2020년 11월 장하성 주중대사의 "시진핑 방한은 상수,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는 발언 등 2018년, 2019년, 그리고 2020년 말까지 3년 간에 걸쳐 중국 쪽에 전달되었고 관련 사항이 보도되었다. 한국 국민들의 눈에 이것이 중국에 대해 과공(過恭)으로 비쳐지는 모습은 없었는지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 오히려 이번 왕 부장 방한 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늦춰달라고 한국 측이 역제안 해보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참고로 중국 외교부는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란 표현을 쓰는 대신 '고위급 교류'(高層交往)란 광의의 단어를 써오고 있다. 중국 공산당 서열에서 '고위급' 인사는 일반적으로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 이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현재 204명이다. 이번에 방한한 왕이 부장도 중앙위원으로 고위급 인사인 셈이다. 지난 3년 간의 중국 외교부 기록을 전수 검사해 보면 중국 정부는 사실 한번도 '시진핑 주석 방한'이란 단어를 쓰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에 한번은 베이징 한국 특파원이 구체적으로 “시진핑 방한” 문구를 쓰면서 중국 외교부 대변인에게 질문을 했다. 외교부 대변인은 "당신이 질문한 구체적 문제(關於你問到的具體問題)에 관해서는”이라고 에둘러 표현한 것이 눈에 띈다.1) "2020年5月14日外交部发言人赵立坚主持例行记者会." 外交部. 2020.5.14
중국 측 정부 공식 문서에 ‘시진핑 방한’이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금년도 시진핑 방한은 난망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중국 측 표현대로 ‘고위급 교류’는 진행된 셈이다.
향후 문 대통령 답방 요청엔 3년째 관망하던 시 주석이 한국을 방문하면 어떠한 점이 좋은 지에 대해서도 국민과 더 많은 소통을 하며 한중 정상회담을 준비하면 더욱 바람직 할 것이다. 만약 일부 언론이 보도한대로 시진핑 방한을 통해서 중국이 한국 쪽에 제공하는 것이 사드 파동 이후 중국이 취한 관광객 제한, 한국산 제품과 한류 등에 대한 부당한 불이익 조치를 거두는 수준이라면 그것은 ‘정상회담 성과’로는 부족할 것이다.
경제적 인센티브로 안보적 양보 요구 가능성
중국 측이 이번 왕이 방한과 더불어 향후 있을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성취하려 하는 구체적 목표는 다음의 두 가지로 파악된다. 첫째, 코로나를 서방국가들보다 더 잘 대처한 아시아 국가 간의 상징적 연대다. 중국은 코로나 극복이 중국 공산당 지도체제의 우월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대내외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코로나 대처에 아시아 국가들이 잘 대처한 것에 대해 한중이 서로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은 응당 필요하고 격려할 사항이지만 한중 공동 코로나 극복 행사가 ‘중국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행사로 중국 관방언론에 보도되고 한국이 이에 들러리 서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2015년 한국 지도자가 천안문 망루에 오른 사건의 교훈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당시 한국엔 이를 ‘외교적 성과’인줄 오해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둘째, 중국은 경제적 인센티브로 한국의 안보적 양보를 요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 내수시장 확대 정책인 ‘쌍순환’(雙循環)정책에 한국 기업 참여를 인센티브로 하여 미중갈등 심화 과정에서 한국의 미국 편중을 막고 반도체 산업 등 중국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한국의 협력을 요청할 수 있다. 중국의 가장 큰 관심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즈음하여 한국 정부의 태도와 입장일 것이다. 왕이 부장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발빠르게 한·일 방문 외교전에 나선 것도 한·미·일 삼각 공조를 통한 대(對) 중국 견제 행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일본, 한국과 관계를 관리하는 차원이다.
중국에게 있어 코로나 방역 성공 과시는 소프트파워 측면이고 미중 경쟁 사이에서 한국을 중국쪽으로 견인하는 것은 전략적 측면의 목적이라 볼 수 있다. 즉, 중국은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내실과 외형을 모두 고려하고 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시진핑 방한의 국내 정치적 성과 뿐만 아니라 이것이 현 미중 갈등 심화 과정 속에서 국제사회에 발산하는 신호까지 포함해 다면적인 전략적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시진핑의 항미원조 연설이 한중 관계에 준 부담
시 주석은 최근 항미원조 기념식 연설에서 중국이 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북한과 ‘함께’(一道) 이뤘다고 했다. 그 전쟁에는 한국도 있었지만 그의 5,060자 연설에서 ‘한국’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의 연설 한 달전 한국은 한국전쟁 중 사망한 117구의 중국군 유해를 송환했다. 6년 만의 최대 규모다. "양국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한국 정부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데 시 주석은 한국전쟁 참전이 '정의‘로운 행동이라는 10년 전 말만 반복했다. 중국의 이웃이며 한국전쟁 당사자인 한국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시 주석의 연설에서 한국이 '잊혔다'는 사실이야말로 한국의 대중 외교에 진중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시 주석의 항미원조 연설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이번 왕 부장 방한 때 유감을 표명했어야 한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한국전쟁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도 매우 연관이 있고, 또 불행한 남북한 분단 고착화를 낳은 한국 역사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시 주석의 발언은 북한의 남쪽 침략 등 한국전쟁에 대한 각국 사료의 공개로 인해 이미 확정된 역사 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중국이 전쟁 발발 과정에서의 개입과 지원을 통해 많은 인명 피해를 낳았다.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중국은 한국전쟁에 대해 사과했어야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이번에도 시진핑의 6·25전쟁 발언에 항의하지 않고 미봉하면 ‘뉴 노멀’로 중국 역사 교과서에 왜곡·고착화 될 수 있다.
국민 정서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있고 코로나19에 대한 중국 책임론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내 일각에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있다. 외교는 결국 국내 정치의 연장선이다. 내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시진핑의 항미원조 발언은 다시 국내 정치의 소용돌이 안에서 쟁점화될 수 있다. 정부가 한중관계를 고려해서 로키(low-key)로 가지고 간다고 해결 되지 않을 사안임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에 의하면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는 75%로 역대 최악이라는 미국인의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 (73%)보다 오히려 더 높다. 이는 중국의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항미원조 연설에서 시 주석이 “한국은 과거에 적이었지만 지금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한중이 역사를 교훈 삼아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맺기를 희망합니다”라고 한 마디 했으면 그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 환영받았을 것이다. 중국과 같은 유교문화권이며 바로 옆에 위치한 이웃나라이며, 아시아 정체성을 공유하는 한국에 대해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성공할 수 없다면 문화가 다른 서방에 대한 중국의 소프트파워 확장성에 대해서는 더 큰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은 양국민들의 우호를 재확인하고 한중 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초석이 되어야 한다. 한국 정부 역시 오로지 국익 관점에서 시 주석 방한 여부와 그 시기를 조율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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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年5月14日外交部发言人赵立坚主持例行记者会." 外交部. 202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