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 – 경제·통상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jksuh@kiep.go.kr
세계 경제와 무역에 대한 팬데믹의 영향
2020년은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막을 내린 한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코로나 팬데믹은 세계 경제와 통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2020년 세계 경제는 당초 3.2%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4.4%라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저조한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전망은 최근 코로나 19의 세계적 재확산 추세를 반영하지 않은 수치이다. 따라서 2020년 세계 경제는 –4.4% 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세계 경제의 부진은 곧바로 세계 무역에도 영향을 준다. 세계무역기구(WTO) 전망에 따르면 2020년 세계 무역은 9.2%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빠르고 큰 감소이며, 코로나 19 확산세가 주춤한 9월까지의 흐름만을 반영한 낙관적인 수치이다. 따라서 2020년 세계 무역도 최근의 코로나 19 재확산세를 감안하면 예상 보다 더 큰 폭으로 감소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2021년 경제와 통상분야에서의 화두는 자연 과연 세계 경제와 무역이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에서 벗어나 반등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모아진다. 일단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WTO 등 주요 국제기구는 낙관적인 시각이다. IMF는 2021년 세계 경제가 5.2%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중국, 인도, 아세안 5(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신흥개도국들이 8% 이상의 높은 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OECD도 2021년 세계 경제가 4.2%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MF 보다 수치가 낮지만 반등해 성장한다는 방향은 같다. WTO도 2021년 세계 무역이 7.2%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결국 2021년 세계 경제와 무역은 2020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부진에서 벗어나 반등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반등은 2020년의 급격한 하락에 대한 기술적 반등으로 볼 수 있으며, 수준을 보면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한 이전인 2019년 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러한 전망은 주요국의 경기회복을 위한 다양한 재정 및 금융지원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고,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세계적으로 보급․접종되어 그 효과가 나타나 위축된 세계 수요가 살아나고 각국의 산업 활동도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이 나와 다시 팬데믹이 나타나거나 백신의 보급․접종이 늦어질 경우(특히 세계 인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저개발 저소득국가 국가에서), 2021년 세계 경제와 무역은 전망보다 더 위축될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백신을 세계적인 공공재로 보는 인식이 중요하다.
바이든 행정부와 미중 통상마찰
2020년 미-중 통상마찰이 격화된 것은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이 크다. 당초 미-중 갈등은 2020년에는 큰 문제없이 적절히 관리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미-중 1단계 무역합의의 도출로 일단 양국 간 갈등이 봉합되는 상황이었고, 미국 경제도 무난히 성장을 계속해 트럼프 대통령이 어렵지 않게 재선에 성공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선에 임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굳이 중국과의 갈등을 조장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1단계 무역합의를 성과를 내세우며, 자신이 중국 문제를 잘 관리하고 있음을 선전하는 것이 재선에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이 갑작스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완전히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의 초기대응 실패에 대한 야당의 비판과 함께 경기 급락 및 실업 급증으로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급락의 위기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인종문제까지 불거져 재선가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상황반전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중국과 갈등확대를 활용했고, 대선 직전까지 미-중간 갈등은 최고조로 올라갔다. 비록 재선에 실패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7,400만 표라는 역대 최고의 득표로 얻었고, 2014년 대선 출마 가능성마저 열어 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향후 미—중 통상갈등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특히 새롭게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과의 통상마찰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2021년 세계 통상의 최대 화두가 아닐 수 없다. 바이든 신행정부 앞에 놓인 중국과의 통상 이슈는 모두간단하지 않은 것들이다. 일단 작년 9월 WTO 패널에서 패소한 대중 관세부과(약 2,340억 달러의 중국산 수입상품에 부과한 관세)를 바이든 행정부가 어떻게 처리할 지가 우선 관심사이다. WTO 상소기구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미국이 상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상소 결과가 미국에게 유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1단계 무역합의에 대한 평가와 2단계 협상 개시 여부도 결정해야 한다. 1단계 무역합의에 대한 중국의 이행수준은 작년 10월말 기준으로 약 57%로 추산되고 있다. 즉 2020년 미국의 대중 수출은 약 710억 달러로 1단계 무역합의에 따른 목표액 1,254억 달러의 약 57% 수준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중국의 이행 지연은 객관적으로 충분히 납득할만한 사유가 된다. 따라서 중국이 1단계 무역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금부터 중국이 어떠한 대미 수입정책을 쓰는지에 따라 비록 이행이 지연되긴 했지만 2021년 상반기 중 얼마든지 1단계 무역합의를 100% 이행할 수도 있다. 오히려 중국이 1단계 무역합의 이행 완료를 조건으로 미국의 대중 관세부과 철회내지 축소를 요구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대처가 용이하지 않을 수 있다.
중국의 국영기업을 통한 대규모 보조금 지급과 지재권 문제, 기술이전 강요 등은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영기업은 중국 국가자본주의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다만 특정 분야의 과도한 보조금 지급은 중국으로서도 국영기업의 경쟁력 제고차원에서 일정 부분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아주 제한적인 부분에 한해 타협 가능성은 남아 있다. 그렇다고 해도 합의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고, 근본적인 해결은 여전히 난제이다. 이와 함께 방역 및 의료물품의 공급을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도 기술경쟁과 함께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 관계에서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가 중국계 미국인인 캐더린 타이를 신임 USTR 대표로 내정한 것도 대중 통상관계가 미국에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통상정책이 단기간 내 기존 트럼프 행정부와 큰 차이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기술패권 경쟁이라는 중장기 미-중 간 대결과 갈등의 본질이 대선 결과에 따라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대중 공세에서 전통 우방과의 신뢰 및 협력을 통한 다자적 접근을 취할 가능성은 높다. 또한 대외관계에서 외교적 해결을 우선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양국이 극단적으로 대립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2021년은 최소한 미-중 통상마찰이 지금 보다 더 격화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우선 미국이 대외정책 보다 대내 경기회복 및 미 중산층 고용유지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과의 대결 보다 신임 USTR 대표를 중심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통상정책의 방향을 정립하는 것이 먼저다. 즉, 앞으로 중국과의 통상갈등에 어떻게 풀어갈지, 그리고 이를 위해 기존의 전통 우방국과의 연대와 공조를 어떻게 활용할지, 중국의 대응에는 어떻게 대처할지 등 종합적 시각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설정한 후 이를 면밀하게 검토한 다음 중국과의 대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2021년 미-중 관계는 1단계 무역합의에 대한 중국의 이행정도를 보아가며 미국과 중국이 서로 상대와의 본격 대결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즉, 본격적인 대결을 앞두고 내부 역량을 키우며, 상대를 파악하는 기간이 될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발동한 대중국 관세도 큰 변화 없이 상당기간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 의회가 초당적으로 대중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美국민 사이에서도 대중 인식이 역사상 가장 나쁜 현 상황을 감안한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 관세를 철회하는 것은 국내 정치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현재의 대중 관세는 향후 중국과의 통상마찰을 해결하는데 미국에게 유효한 협상카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출범 초기부터 어떤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 전략상 바람직하지도 않다.
중국도 2021년은 1단계 무역합의를 적절히 이행하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어떻게 나오는지 반응을 살펴볼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행정부 초기부터 미국과의 갈등은 중국으로서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2022년은 시진핑 주석의 집권 10년째를 맞아 2기가 종료되고 새로운 시기로 들어서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해이다. 따라서 중국의 핵심 이익이 침해되지 않는 이상 2021년에 굳이 미국과 갈등을 높일 실익이 중국 입장에서 보아도 없다. 결국 미국은 미국대로 대중국 정책을 새로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중국도 그 과정에서 갈등을 부추길 실익이 없기 때문에 미-중 통상갈등에 관한 한 2021년은 양국이 가급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WTO 다자체제의 신뢰 회복
세계 무역을 관장해 왔던 WTO 다자체제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다자간무역협상을 통해 새로운 무역규범을 제공해 왔던 WTO의 기능은 DDA의 사실상 실패로 회원국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되었다. WTO의 회원국 무역정책에 대한 검토기능도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는 제안은 많지만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무엇보다 그동안 WTO의“왕관의 보석(crown jewel)”으로도 불리며 WTO 다자체제의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의 근간이었던 WTO 분쟁해결기능도 상소기구위원의 부재로 인해 그 기능이 마비되었다. 이에 2020년은 WTO가 새로운 상소심을 심리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였다.
WTO의 상소기구 기능정지 문제는 2017년부터 계속된 미국의 상소위원선임 저지의 결과이다. 미국은 WTO 상소기구나 주어진 권한을 넘어 회원국의 국내 문제까지 판단하는 월권행위를 계속해 왔다고 주장하면서 임기 만료로 공석이 된 상소위원의 새로운 임명을 저지해 왔다. 이에 따라 7명의 상소위원이 순차적으로 임기가 종료되면서 작년 12월부터 WTO 상소위원은 한 명도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다자체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지금까지와 같이 미국의 상소위원 선임저지가 계속될지 여부가 또 하나의 세계적인 관심거리다.
바이든 행정부가 WTO 상소위원 선임으로 급하게 기존 입장을 바꿀 것 같지는 않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도 WTO 상소기구가 가지고 있는 문제, 특히 중국의 국영기업이나 산업보조금에 대해 WTO 상소기구가 내리는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WTO 상소위원 임명을 계속 저지하기도 쉬운 상황은 아니다. WTO 다자체제를 재건하고 그 과정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되찾아 전통 우방국을 규합해 WTO를 개혁(특히 중국의 국영기업과 산업보조금 규제를 위한)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과 일치한다는 것을 바이든 당선자가 수차례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결국 2021년 WTO 다자체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WTO 무시에서 벗어나 WTO의 기능 개선을 위한 다자적 노력이 보다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역시 구체적인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기보다 미-중 통상마찰과 같이 워밍업 단계가 될 가능성이 높고 구체적인 개혁 움직임은 다음 해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2021년은 WTO 다자체제의 신뢰회복 원년이 될 것이다.
대외통상의 원칙과 중견통상국가와의 연대 강화
이렇게 본다면 2021년 세계 경제와 무역 및 통상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침체된 국내 경제를 살리는데 중점을 둘 것이며, 이에 따라 주요국 간 극한 대립과 갈등이 나타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은 소위 소강상태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즉 본격적인 대결이나 갈등을 앞둔 일종의 준비 내지 휴지기로 볼 수 있다.
세계 경제의 안정이 중요한 우리나라로서도 2021년을 잘 활용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중간국의 입장에서 국익에 기초한 분명한 입장을 정립해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당연히 보편타당해야 하며, 또한 미-중이 아닌 그 어떤 나라가 보더라도 충분히 합리적이어서 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원칙이어야 한다. 그래야 미-중 마찰이 격화될 때 일관된 우리 입장을 견지할 수 있으며, 다른 국가의 지지를 이끌어 내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중견통상국가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의 공동 대응은 중견통상국가를 연결하는 좋은 주제가 될 수 있다. 최근 중국과 호주 사이의 통상마찰로 중국이 호주산 와인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사실상 호주산 와인의 중국내 반입을 막자 유럽과 일부 중동 및 아시아 국가들이 호주산 와인을 구매하는 현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록 이러한 구매가 장기간 지속가능하지 않더라도 중견국가들의 연대강화가 강대국에게 주는 의미는 남다를 수 있다. 이에 강대국의‘일방적인 줄 세우기’상황을 억제하면서 나름 적절한 대응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