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세와 한중관계
이성현(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sunnybbsfs@gmail.com
코로나19 방역과 경제 회복에 자신감을 회복한 중국
2020년 중국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은 ‘코로나19’와 ‘미중 갈등’이었다. 코로나19는 비안보적 문제로 국제사회에서 협력의 공감대가 있었지만 미중이 발원지와 책임 소재를 두고 반목하여 양자 갈등을 더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20년 1월 9일, 중국 관영 환추스바오(環球時報)는 중국이 미중 무역전쟁을 통해 “집단적인 자신감”을 길렀으며 “싸울수록 강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1) 하지만 그 후 더욱 악화된 코로나19는 중국의 공산당 체제에 위협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최고 지도자 시진핑 주석의 실각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 되었다. 이에 중국 당국은 코로나가 시작한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도시 전체를 전면 봉쇄하고 강도 높은 방역 조치를 취하며 상황을 타개하려 했다. 시진핑은 3월 10일에서야 우한을 처음 방문했다. 우한이 최악의 코로나19 상황을 맞았던 1, 2월에 우한을 찾지 않아 ‘책임 회피’ 비판을 받았던 그였지만 코로나19 방역을 자신이 “친히 지휘하고, 친히 배치하다”(親自指揮,親自部署)는 메시지를 선전부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내보내면서 우호적 여론 환경 조성에 힘썼다.2)
미중 갈등이 이념과 정치체제로까지 확장하는 가운데 시진핑은 “제도의 우위는 국가의 가장 큰 이점이고, 제도경쟁은 국가 간 가장 근본적인 경쟁”이라고 하며 ‘중국특색 사회주의 제도’의 정비와 현대화를 강조하여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정치체제 경쟁을 시사하였다.3) 중국의 ‘방역전’이 효과적으로 진행되자 중국은 체제의 우월함을 적극적으로 선전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2월 17일 인민일보는 “중국이 사람을 경탄케 하는 책임감”을 보이며 코로나19를 대처하는 데 있어서 “중국정부가 적극적이고 효율적이며 공개적이고 투명한 조치”를 취해 “전 세계와 지역의 공중위생 안전을 지키는데 적극적인 기여를 한 ‘책임 있는 대국’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자평하였다.4) 중국일보는 “국제 각계: 중국의 역병에 대한 대응에 신뢰를 가득 가짐”라고 주장했다.5) 중국공산당 이론지 ‘치우스’(求是)도 중국이 ‘대국의 책임’을 져서 “세계가 안심할 수 있는 ‘정심환’을 보냈고 전 세계의 공중위생 관리에 공헌했다”고 했다.6) 미국의 압박에 대응해 내부적으로 체제 단속과 집권 정당성 확보에 주력한 것이다.
그후 중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코로나19를 일찍 통제하고, 2분기부터 보인 조기 경제 회복은 시진핑과 공산당 지도부에게 권위 회복의 근거를 주었다. 1분기 중국 GDP는 –6.8%으로 큰 폭으로 하락했으나 2분기엔 3.2% 성장을 기록, 1분기 만에 침체에서 바로 벗어났다. 3분기에는 4.9%를 기록했고, 4분기 현재는 8% 성장이 예측되고 있다. 실현 된다면 평년 수준으로 경기 회복이다. 중국 경제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V’자 회복을 일단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또한 코로나 기간 동안 전자 통행 허가증인 스마트폰 ‘건강 코드 (健康碼)’실시를 통해 시민들의 신상정보와 이동 정보를 기록하는 엄격한 QR코드 실시했다. 코로나 방역의 필요성이 중국 정부의 사회에 대한 디지털 통제 강화를 돕는 계기가 되었다. 종합하자면, 올해 코로나19 정국에서 시진핑의 개인 권력은 강화되었고, 공산당의 중국 사회에 대한 디지털 통제력은 공고히 되었으며, 미국이라는 외부의 갈등은 중국 내부에서 중국인들이 더욱 단결하는 민족주의·애국주의 동기가 되었다.
‘쌍순환’ 경제 정책은 사실상 안보 정책
미국 대선 기간 동안 ‘중국이 바이든 행정부를 선호할 것이냐, 트럼프 행정부를 선호할 것이냐’라는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약 6개월 전에 미국 정책에 대한 평가를 내부적으로 진행했고, 그 때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중국에 대한 전반적인 강경정책의 큰 틀이 변하지 않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지난 5월부터 시진핑이 쌍순환 정책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10월 열린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9기 5차 전체회의(5중전회)에서 공식화했는데, 이것도 미중 경쟁이 장기화할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쌍순환’이란 모호한 표현은 결국 자강(自强)의 방식으로 미중 대결의 장기전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이전에 사용한 같은 맥락의 기술 굴기 프로젝트인‘중국제조 2025’(中國製造2025)가 미국한테 비판을 받자 ‘언어 순화’를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내면의 힘을 더욱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미중 갈등 상황에서 중국이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시진핑 정권은 미국의 공세를 공산당 집권 강화의 중요한 빌미로 만들면서 성장을 위한 시간을 벌고자 한다. 미국과 경쟁을 좀 더 잘 준비할 수 있는, 미국의 압박을 잘 견디고 중국의 기술 굴기를 할 수 있는 시간 벌기다. 중국이 코로나19를 빨리 극복하면서 중국의 경제회복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에 미중 경쟁에서 장기적으로는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가지고 있다.
2021년은 소위 ‘두 개의 백년’(两个一百年)중 첫 번째 백년인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로써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이른바 '샤오캉(小康) 사회를 완성하는 한 해다. 중국 관방 언론이 최근 완전한 '빈곤 퇴치'를 강조하고 나선 이유다. 중국은 일반적으로 중요한 국내 정치 일정을 앞두고 있는 경우, 외부의 불확실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고 시도하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적 성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시기에 중국은 외부적 가장 큰 변수인 미중 관계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가지고 가기를 희망할 것이고 그럼으로써 내부적인 사회 안정과 경제적 성과 내기에 집중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궁극적으로는 미중 경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번 5중전회의 특징은 5년 계획 뿐만 아니라 2035년까지 15년짜리 장기계획을 내놓은 것인데, 이런 장기 계획은 과거에 1995년에 한 번 있었을 뿐이다. 시진핑은 2035년까지 첨단기술 개발에 중점을 두고 이에 반도체, 인공지능, 우주개발을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자율주행차에 응용할 인공지능, 전기차, 양자컴퓨터, 항공우주, 5G 통신장비에 중점을 둘 것이다. 모두 미국과 기술적 경쟁 관계에 있는 첨단 ‘4차혁명’분야다. ‘5중전회’에서는 한번도 '수출'이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았는데, 이는 경기 실적 지표에 연연하지 않고 기술개발에만 전념하겠다는 의지 표명으로도 읽힌다.
한국 내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증가
위와 같은 배경 하에서 중국은 ‘쌍순환’(雙循環)정책에 한국 기업 참여를 인센티브로 하여 미중 갈등 심화 과정에서 한국의 미국 편중을 막고 반도체 산업 등 중국이 필요로 하는 첨단 분야에서 한국의 협력을 요청할 수 있다. 최근 중국 왕이 부장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발빠르게 한국을 방문한 것도 동맹과 공조를 통한 대(對) 중국 견제 행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국과 관계를 관리하는 차원이다. 중국이 미국 갈등을 상대하는 것에 전념하면서, 그 미중 갈등 지정학적 프레임 안에서 한국을 ‘전략적 대상’으로 보고, 한국을 중국쪽으로 견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중국이 보는 한중 관계는 ‘우군 확보’에 방점이 찍혀 있다. 미국과의 경쟁에 온 정력을 쏟아붓는 중국이 이웃인 한국을 ‘우호의 대상’이 아니라 견인해야 할 ‘전략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목적 지향적 외교행위는 특히 한중 외교장관 회담 후 왜 한국 정부가 강조한 사항과 중국 정부가 강조한 사항들이 서로 차이가 있는 지에 대해 논란이 생기며 불거졌다. 한국 측은 '한중관계 미래 발전위원회' 설립 등 한중 우호 양자관계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중국은 일본을 포함하여‘방역’과 ‘경제’를 한·중·일 협력 견인의 키워드로 삼고 미국이 부재한 상황에서 중국 주도로 새로운 동북아 협력틀을 ‘디자인’하려고 시도했다. 한국은 한중 관계에 주력했지만, 중국은 중국이 구상하는 동북아전략 큰 그림 속에서 ‘한·중·일’을 생각하고 그 안에서 다시 한중관계를 봤다.
왕이 부장은 또한 방한 기간에 사드 문제를 우선 해결하는 것이 한중 ‘협력의 기초’라고 했다. 즉, 중국은 이미 해결한 듯 보였던 사드 문제를 한국이 미국 조 바이든 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 측으로 선회하지 않도록 견제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중국은 한한령 해제와 시 주석 방한도 같은 맥락에서 본다. 한중 관계는 2020년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불발되면서 사드 파동 이후 수년 간 정체된 양자 관계를 해빙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양제츠(杨洁篪) 정치국원은 최근 한국 등 악화된 이웃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이웃 외교’(周边外交)가 ‘대국외교’(大国外交 = 미국)와 동급으로 중요하다고 했다. 중국이 미국에만 신경쓰지 말고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취지다. 이러한 자각이 현실화될 지 향후 추이를 더 관찰할 필요가 있다.
2021년엔 글로벌 코로나19 정국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 보궐선거·대선 등 한국 국내정치 일정 등으로 인해 한중 관계 회복이 여전히 여의치 않을 수 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있고 코로나19에 대한 중국 책임론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내 일각에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부정적 기류도 엿보인다.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에 의하면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는 75%로 미국인의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 (73%)보다 오히려 더 높다. 이는 중국의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한국 사회 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반 중국 정서는 수교 이후 양국 관계에 최대 도전 요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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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社评:对华贸易战让中国人更加成熟自信” 环球时报, 2020.01.09.
https://opinion.huanqiu.com/article/9CaKrnKoMwk
2) "大国战“疫”,习近平总书记亲自指挥、亲自部署." 求是网. 2020.03.10.
3) “习近平:坚持和完善中国特色社会主义制度推进国家治理体系和治理能力现代化” 中华人民共和国中央人民政府, 2020.01.01. http://www.gov.cn/xinwen/2020-01/01/content_5465721.htm
4) "中国展现出令人钦佩的责任感." 人民日报海外版. 2020.02.17.
http://world.people.com.cn/n1/2020/0217/c1002-31589372.html
5) "国际各界:对中国抗击疫情充满信心 中国方案靠谱!". 中国日报中文网. 2020.02.18.
https://china.chinadaily.com.cn/a/202002/18/WS5e4bb163a3107bb6b57a0940.html
6) "中国战“疫” 大国担当." 就是网. 2020.02.21.
http://www.qstheory.cn/llwx/2020-02/21/c_1125604135.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