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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포커스] 피스메이커? 페이스메이커? - 이재명 정부 2년 차 대북정책 방향

등록일 2026-08-14 조회수 176

2026년 8월 5일 청와대 영빈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등 정부 외교안보부처의 대통령 하반기 업무보고가 열렸다. 통일부는 이날 보도자료 제목을 '석 자 얼음, 그래도 한반도 평화공존 만들기는 계속됩니다'로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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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정부 2년 차 대북정책 방향
2026년 8월 14일
하태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 taedee99@gmail.com
| 혼돈의 평화구상에 던져진 질문
2026년 8월 5일 청와대 영빈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등 정부 외교안보부처의 대통령 하반기 업무보고가 열렸다. 통일부는 이날 보도자료 제목을 '석 자 얼음, 그래도 한반도 평화공존 만들기는 계속됩니다'로 뽑았다.1) 얼어붙은 남북 관계의 깊이를 인정하지만 평화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재명 정부 2년 차 한반도 평화공존 발전구상을 제시하고, 한반도 정세변화 대응을 위한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플러스)'를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발전구상의 기본 방향은 △ 상호 차이를 존중하는 호혜적 협력 △ 평화적 갈등 해결과 위기 통제 △ 핵 없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라는 세 축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흡수통일론과 '주적(主敵)' 등 대결‧혐오 용어를 배제하고, 9‧19 군사합의 복원에 착수하는 한편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논의 착수를 통해 북미정상회담 견인과 남북미중 4자 대화 동력 확보를 실천하겠다고 밝혔다.2)
통일부 보고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평화공존 정책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 "많이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고, 9‧19 군사합의의 선제적 복원 구상에 대해서는 "우리의 선의대로 하는 게 한반도 평화 안정에 플러스냐, 결론적으로 의문"이라고 지적했다.3) 다음 날 조현 외교부 장관은 더 직설적인 언어로 통일부의 구상에 제동을 걸었다. 그는 통일부의 4자 대화 구상을 "이상주의에 근거한 어떤 희망"이라 규정하며 "정 장관이 이상적인 말을 한 것이니 디스카운트 해 주면 좋겠다"고 언론 브리핑에서 공개 발언했다.4)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구상에 대해서도 "우리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에서 토론을 거쳐서 합의 결정된 문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통일부는 곧바로 "이견 노출을 저희가 한 거냐"며 반박했고, 정동영 장관도 "이상이 있어야 현실을 바꾼다"는 말로 맞섰다.5) 언론은 대체로 '동맹파 대 자주파'의 정면충돌로 해석했다.
표면적으로 부처 간 알력 다툼이자 근본적으로 북한을 보는 시각 차이가 있는 외교부와 통일부의 해묵은 논쟁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8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자임한 '페이스메이커'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의 설계자 격인 임동원의 '피스메이커' 레거시가 장면으로 부딪히는 지점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의 비핵화라는 대한민국 북핵 협상의 금과옥조(⾦科⽟條)가 존립의 기반을 잃고 있고,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는 김정은의 북한이 남북대화는 물론 한반도 평화구상과 관련한 일체의 관심을 거둬들인 현실의 한반도에서 출발한다. 통일부가 8월 업무보고에서 밝힌 실천 조치구상이 단순히 한 부처의 성과 집착이 아니라 30년 북핵 협상의 역사가 반복해 온 구조적 딜레마의 재현이라는 점을 짚은 뒤, 이재명 정부 2년 차가 선택해야 할 정책 방향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 피스메이커 vs 페이스메이커
페이스메이커(pacemaker)는 심장의 불규칙한 박동을 외부 신호에 맞춰 정상화하는 의료 기기이거나, 마라톤에서 우승 후보의 페이스를 조율해 주다가 결승선 직전에 물러나는 조력자라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전자는 스스로 리듬을 만드는 반면, 다른 하나는 주어진 리듬을 따르거나 남을 위해 리듬을 만들어 준다. 피스메이커(peacemaker)는 갈등 당사자 사이에서 능동적으로 중재하고 협상을 설계하며 합의를 끌어내는 주체적 행위자를 가리킨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대북 화해‧협력 정책의 설계자 역할을 한 임동원은 회고록 '피스메이커: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0년'에서 한국이 한반도 평화의 능동적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담았다. 2000년 6·15 공동선언과 2007년 10·4 선언을 '피스메이커' 이니셔티브의 대표적인 성과로 보았다. 하지만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물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의 근본적인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고, 북한은 '절대무기'인 핵무기 개발이라는 군사적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임동원은 워싱턴의 대북(對北) 적대시 정책이 북한 핵 개발의 근본 원인이라고 봤고,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진정한 북한 체제보장의 의지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결국 남북관계의 발전을 통해 한국이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비핵화의 물꼬를 트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완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임동원의 '피스메이커'론은 하나의 인과관계 위에 서 있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유인을 갖게 되고, 그 유인이 비핵화 협상의 동력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이 전제는 2000년대까지는 부분적으로 유효했다. 그러나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트럼프·김정은 담판이 빈손으로 끝나면서 북한은 협상을 통한 체제 안전보장이라는 경로 자체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이어진 코로나19 국경 봉쇄는 대화의 필요성을 희석시켰고, 그 사이 북한은 러시아와의 군사·경제 협력을 통해 남한의 경제적 지렛대에 기대지 않고도 체제를 지탱할 수 있는 대안 경로를 확보했다. 2023~2024년 헌법 개정과 '적대적 두 국가론' 선언은 이 흐름의 결정판이었다. 한국을 통일의 상대가 아니라 '제1의 적대국'으로 명문화한 순간, 남북 관계 개선이 비핵화로 이어진다는 임동원식 인과 관계의 논리가 무너졌다.
지난해 8월 25일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로 나선다면 나는 페이스메이커로서 돕겠다"고 말한 것은 북한의 김정은이 선대의 유훈(遺訓)을 통째로 부정하면서 모든 남북대화를 거부한 현실을 인정한 실용적 선택이었다. 김정은이 비핵화 담론자체를 무력화하며 공세적 대외관계를 선언한 마당에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낼 유일한 대안을 미국으로 본 것이다. 2025년 집권한 이재명 정부가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표방하며 대북 화해 협력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음에도 김정은은 요지부동이다.
통일부의 업무보고는 정상 차원의 '페이스메이커 플랜'이 가동되고 있다는 전제하에 통일부 주도하에 범정부 차원의 '페이스메이커+(플러스)'라는 진화된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는 적극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임동원의 피스메이커가 남북관계를 축으로 비핵화를 견인하려 했던 논리가, 북한의 문이 완전히 닫힌 지금 형태만 바꿔 '플러스'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온 것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 엇박자의 뿌리: 부처 갈등을 넘어선 구조적 딜레마
이번 논란을 '동맹파 대 자주파'의 노선투쟁 정도로 치부하면 본질을 놓칠 수 있다. 30년 북핵 협의 역사가 반복적으로 실패해 온 구조적 원인 두 가지가 지금 정부 내부에서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첫째는 행위자 간 이해관계의 근본적 불일치다. 외교부는 한미동맹과 국제공조의 틀 안에서 협상력을 축적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통일부는 남북대화 채널 자체의 복원이 부처 존재 이유에 가깝다. 통일부 업무보고의 정세 평가 항목은 북한이 올해 2월 9차 당대회에서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대한민국"이라는 규정을 재확인하고, 3월 헌법에서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삭제했으며, 6월 13일 외무성 담화를 통해 정부의 평화공존 정책을 "위장간판이요 기만극"이라고 비난하고 "비핵화는 종결된 사안"이라 못 박았다고 적시했다. 현재 남북대화 추진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국제정세에 대한 평가 부분에서 "한반도 평화·안정 구축 필요성에 대한 미중러 등 주변국의 공감대를 확인했다"6)고 평가한 것은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가까워 보인다. 자신의 주무 영역도 아닌 미중러의 정책 우선순위에 대한 통일부의 평가에 대해 외교부가 동의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정 장관을 둘러싼 논란도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업무보고에서도 국제정세를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채 남북대화 재개에 초점을 맞춘 구상으로 논란을 빚었고, 지난 4월에는 우라늄 농축 시설 관련 발언으로 미국이 한국과의 대북 정보 공유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7)
둘째는 북한 체제 행동(regime behavior) 변화 가능성에 대한 오판 위험이다. 통일부 구상의 저변에는 한국이 인도주의적 손짓과 대화 제안을 지속하면 언젠가 북한이 호응하리라는 기대가 흐르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한국과의 체제경쟁에 대한 두려움이나 한류의 확산을 차단하겠다는 방어적 선택과, 핵 보유국이라는 자신감을 배경으로 한 공세적 결별 선언이 혼재하고 있다. 2020년대에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평양문화어보호법은 한국의 문화·언어·사상을 체제위협으로 간주한 강력한 사회통제법으로 볼 수 있다. 반면 2018년 판문점·평양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정권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환대혼란실망증오로 급격히 변해갔던 흐름, 그리고 2020년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됐다"는 김여정 담화 이후 본격화한 단절 조치들은 정치·군사적 신뢰의 철회에 따른 근본적 대남 적대시로 보인다.
통일부는 76.5%가 '공존이 우선'이라고 답한 민주평통 2030세대 여론조사(2026년 6월)를 근거로 '오늘의 삶'에 한반도 평화공존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통일연구원(KINU)의 2025년 전 연령대 조사에서도 평화적 공존을 선호하는 비율은 2025년 처음으로 60%를 돌파하여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8) 하지만 이 조사의 핵심은 통일의 필요성을 긍정한 응답이 49%로 2014년 자체조사 도입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들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선언한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통일지향의 평화적 두 국가관계를 선호한다는 근거로 삼는 것은 무리다.
여기에 더해 북중러 삼각협력의 복원은 과거 한국이 쥐었던 경제적 지렛대를 현저히 약화시키고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멈춘 자리를 북한은 러시아산 에너지기술과 중국의 경제 지원이 빠르게 채워가고 있다. 9·19 군사합의 복원이나 인도주의 교류 제안이 북한의 호응 없이 일방적 선의로만 그칠 위험은 이 구조적 조건에서 나온다. 결국 이번 엇박자는 단순히 통일부-외교부 간 부처 이기주의의 산물이라기보다, 보수와 진보의 역대 정부가 30년 동안 노력했지만 실패를 거듭해 온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현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차이의 반영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 페이스메이커에서 평화 설계자로
이재명 대통령의 페이스메이커 자임은 스스로의 힘으로 남북대화 재개의 모멘텀을 만들어 낼 수 없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4조에서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대통령에게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66조 3항)를 부과했다. 2년 차에 접어든 이재명 정부가 외교적 레토릭을 구체적 협의 결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다.
정책 방향은 위기관리·안정화(단기) → 확장억제·군비통제(중기)  비핵화·평화체제(장기)라는 3단계 구조로 재배열할 때 메시지가 분명해진다.
단기 목표는 위기관리와 안정화다. 충분한 숙의를 전제로 경원선 복원, DMZ 평화의 길과 평화이음 열차, 평화경제특구 지정처럼 우리 영토·예산·행정력만으로 실행할 수 있는 조치들에 대한 독자적 조치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비행금지구역 설정처럼 동맹 조율이 전제되는 조치는 '독자적 이행'이 아니라 '동맹 설득'의 문제로 재규정해야 한다. 통일부는 실천 조치의 추진 전략으로 "우리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조치를 일관되게 이행"하겠다고 밝혔고, 9·19 군사합의 복원을 위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그 대표 사례로 제시해 왔다.9) 이를 신속하게 실행 가능한 선언적 조치인 것처럼 설명해 온 것은 통일부의 조급함이 낳은 오판이다. 실제로는 대북 감시 공백을 메울 정찰 자산 지원 문제, 유엔사 관할권 문제 등 세부 쟁점을 하나씩 풀어야 하는 협상이며, 이 협상의 실질적 주무 부처는 통일부가 아니라 국방부와 외교부다. 우발적 충돌 방지라는 목표는 단기 과제가 맞지만, 실현 경로는 남북 간 선언이 아니라 한미 간 조율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중기 목표는 핵·미사일 확장 억제와 군비통제다. 통일부가 제시한 '평화가 선도하는 북핵 우선 중단 전략'은 사실상 핵 동결에 가깝고,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언급한 '중단​축소​폐기'의 단계적 해법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이 목표는 미국의 협상 재개 의지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한국이 단독으로 성사시킬 수 있는 의제가 아니다. 한국의 역할은 이 중간 목표를 한미 간, 나아가 2023년 워싱턴 선언으로 출범한 핵협의그룹(NCG)을 매개로 한미일 간 공동의 군비통제 의제로 격상시키는 데 있다.
장기 목표는 비핵화와 평화체제다. 이는 단기·중기 목표가 오랜 시간 축적되며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지, 지금 당장 밀어붙일 수 있는 의제가 아니다. 4자 대화나 동방경제포럼 참여,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같은 구상도 장기적으로는 유효한 목표일 수 있지만, 북한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지금 시점에 무리하게 속도를 내는 것은 부작용이 크다.
궁극적으로 한국이 지향할 위치는 특정 협상의 중재자에 머무는 '피스메이커'도, 강대국의 리듬에 반응하는 수동적 '페이스메이커'도 아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적 규범과 제도의 틀을 설계하고 주도하는 '규칙 기반 평화 설계자(Rules-Based Peace Architect)'다. 한국의 명목 GDP는 세계 12위, 군사력은 세계 5~6위권에 이른다. 핵 동결과 군비통제라는 현실적 중간 목표의 담론을 한미일 공조의 틀 안에서 주도하는 것, 비행금지구역 설정처럼 동맹 조율이 필요한 사안을 캠프 데이비드로 제도화된 한미일 협의체를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 그리고 경원선 복원이나 DMZ 평화적 이용처럼 독자적으로 실행 가능한 신뢰 강화 조치를 통해 명분을 축적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외교부가 쥔 한미일 공조의 축과 통일부가 쥔 남북대화·인도주의의 축을 대립이 아니라 상호 보완 관계로 재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정부 내부에서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중심으로 한 사전 조율 절차를 명문화하는 최소한의 합의가 필요하다.
| 결단이 필요한 시간
8월의 엇박자는 노무현 정부 때 불거졌던 이른바 '동맹파'와 '자주파'의 노선 투쟁의 재현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통일부에 "그 역할은 역시 통일부가 해야 할 역할"이라며 힘을 실어줬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며 속도 조절을 주문한 것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점이다. 정부가 대통령 업무보고라는 가장 공식적인 자리에 부처 간 조율을 마치지 못한 설익은 정책을 그대로 올렸다는 점에서 되풀이돼서는 안 되는 실책이다. 실천이 담보되지 않는 새로운 결의나 구호를 내놓기 전에 NSC가 실현 가능성을 검증하고 외교·안보 부처 간에 심도 있는 토의를 거치는 절차가 선행돼야 정책의 신뢰성과 일관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란 전쟁이 일단락되면 미북 정상회담이 재개될 수 있다는 전망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와 공화당이 패하면 미북대화의 모멘텀이 생길 것이라며 "세부적 비핵화 협상은 피하고, 향후 6개월 동안 양측 협상팀에게 이를 구체화하도록 맡길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다만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남북대화로 이어지지 않으리라고 봤다.10)
우리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시나리오다. 이제는 이재명 정부가 아직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 즉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조율된 답을 내놓을 차례다. 통일부의 논리대로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2018~2019년 미북대화 시기에 우리 정부가 중국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역사적인 미북 정상회담의 동력이 급속히 약화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남북미중 4자 회담 구상의 유용성을 무작정 폄훼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외교부의 우려대로 관련국과의 조율 없는 발표가 협상의 신뢰 기반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선진 글로벌 중강국을 지향하는 한국에 필요한 것은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그 안에서 평화 설계자로 도약할 준비를 동시에 하는 일이다. 임동원의 피스메이커 정신과 캠프 데이비드의 동맹 공조, 통일부의 대화 의지와 외교부의 국제공조를 하나의 일관된 전략으로 통합하는 것, 그것이 이재명 정부 2년 차가 풀어야 할 과제다. 국민 다수가 평화공존이라는 방향 자체에 상당 부분 동의하고 있다는 점은 적어도 이 같은 통합을 시도할 국내적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이 실현돼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 어떤 담판이 이루어지든, 그 결과가 지속 가능한 한반도 평화의 구조로 이어지도록 조건을 설계하는 일은 결국 집권 2년차를 맞은 이재명 정부의 몫으로 남는다.

  1. 통일부, "'석 자 얼음', 그래도 한반도 평화공존 만들기는 계속됩니다" 보도자료, 2026년 8월 5일. '석자 얼음'이라는 표현은 2026년 1월 중국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당시 시 주석의 "석자 얼음은 한번에 녹지 않고, 과일은 익으면 저절로 떨어진다"는 표현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청와대는 이 발언을 한한령과 연관 지어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단계적, 점진적으로 (한한령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평가했다.
  2. 통일부, 2026년 하반기 업무보고 서면자료, 2026년 8월 5일.
  3. 김민서, "통일부, 외교부와의 이견 노출 지적에 '이견 저희가 노출했나'", 『조선일보』 (2026년 8월 6일).
  4. 민선희, "외교부, 북미대화 '페이스메이커' 집중...새 구상은 조율 필요", 『연합뉴스』 (2026년 8월 6일).
  5. 한상희, "외교부 '통일부와 엇박자 사실 아냐'...'4자 대화' 등엔 '조율 필요'", 『뉴스1』 (2026년 8월 6일).
  6. 통일부, 앞의 서면자료, Ⅱ. 2. 정세 평가 및 대응 방향, 2026년 8월 5일.
  7. 유신모, "[뉴스분석] 결국 대통령이 나섰다...정동영 통일부 장관 업무보고 논란", 『뉴스핌』 (2026년 8월 6일).
  8. 이상신 외, 『KINU 통일의식조사: 협력적 국제주의와 호전적 국제주의』 (서울: 통일연구원, 2025).
  9. 통일부, 앞의 서면자료, Ⅲ. 핵심 추진과제, 2026.8.5.
  10. Victor Cha, "After Iran: A Scenario for Renewed Trump-Kim Summitry," CSIS, August 13, 2026. https://www.csis.org/analysis/after-iran-scenario-renewed-trump-kim-summitry.
※ 본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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