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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논평 No. 2018-11] 중국은 왜 ‘코피 전략’에 침묵하는가?

등록일 2018-02-20 조회수 11,546

 

중국은 왜 코피 전략에 침묵하는가?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이성현 연구위원

seonghyon.lee@sejong.org

 

 

중국이 코피 전략침묵하고 있는 것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항간에는 중국이 가만히 있는 이유가 미국의 북한에 대해 제한적인 공격을 중국이 묵인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풀이도 나오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 해석이 맞다면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이는 억측으로 보인다.

얼핏보면 중국이 코피 전략에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중국은 새해 들어 급물살을 탄 남북한 대화와 평창올림픽 기간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의 방한, 이 모든 전반에 걸쳐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최근 진행된 남북한 대화의 추이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현 상황을 주의 깊게 관망하고 있다.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관망 모드코피 전략과 연계시키고, 또 이러한 분석의 틀을 확장하여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제한적 공격 코피 작전묵인하는 신호라는 개연은 무리함이 있어 보인다. 또한 이는 근래 들어 갈등/대립 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미중관계 측면에서 보아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미중관계 대립이 고조되면 중국이 생각하는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는 더 높아진다. 미국과 사이가 안좋은 중국이 미국을 돕는 전략적 자살골을 넣은 셈이 되기 때문이다.

질문의 각도를 달리하여 중국이 왜 현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 관망 모드를 견지하고 있는지,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의 남북한 고위급 접촉에 대해서 중국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그리고 향후 중국이 한반도 긴장 개선 국면에 있어 기여할 여지가 있는지 이러한 차원에서 접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을 바란다고 공언해온 중국으로서는 남북한 대화에 중국이 간섭하거나 영향을 미치려한다는 인상을 피하고 싶어한다. 중국 최고 지도자 시진핑은 2014년 한국 방문 시 남북한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自主和平的統一)”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 중국 정부가 다년간 사용해온 표현이다. ‘자주라는 것은 외세가 개입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지도자들이 자주 쓰는 또 하나의 표현은 남북한 관계 개선”(韩朝双方改善关系)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번에도 유사한 표현을 썼다. 새해 들어 한반도에서 남북한이 대화를 하고 고위급 회동을 갖는 것은 중국이 희망하는 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중국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둘째, 노동신문이 중국을 비판한 것이 중국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8일 논평에서 남북 관계가 좋게 발전하는 시기에 중국 일부 언론이 개별적 전문가들의 주제넘은 논조를 펴냄으로써 남의 잔치 분위기를 흐려놓고 있다고 하면서 이는 남의 민족 내부문제에 간섭하려는 행위라고 못받았다. 중국이 관여할 여지를 아예 차단해 버린 셈이다. ‘내정간섭하지 말라고 북한이 공개적으로 경고를 준 것이다. 이는 중국과의 협상에서 매우 효과적인 접근법이다. 중국 스스로 다른 나라의 내정에 불간섭한다는 외교원칙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냉전 시기 북한의 내정에 간섭하려다가 오히려 북한 내 친중파가 숙청을 당하고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 잔류한 중공군 철수에 대한 김일성의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했던 중국 입장에선 트라우마까지 있는 단어다. 중국은 심지어 김정은의 숙부 장성택이 숙청당하자 신속하게 이것은 북한 내부의 일이다”(這是朝鮮內部的事)라고 오히려 스스로 알아서 거리를 두는 외교적 제스처를 취하기까지 했다.

더불어, 유엔 대북 제재에 대해 중국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은 수준에서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 최근 고조되고 있다. 그런 참에 나온 북한 측 비판이니 찔끔한 면도 있다. 특히 최근 시진핑의 특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을 만나지 못해 체면이 실추된 중국으로서는 더욱 면목이 없게 되었다. 북한은 중국을 다룰 줄 안다.

위의 두 가지 요인 중 어느 것이 더 직접적인 요인인지는 자명하다. 두 번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인 지정학적 국면에서 볼 때 현재의 형국은 중국에게도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우선, 북한의 평화공세가 한미동맹에 긴장을 자아내고 있다. 이는 한미동맹 약화를 바라는 중국의 입장에서도 분명 호재다. 둘째, 남북한 대화로 인해 한반도의 긴장이 일시적이나마 누그려졌다. 이 역시 중국이 원하던 바다. 이렇게 상황이 중국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중국이 굳이 무리를 해가며 남북한 대화에 숟가락을 얹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중국은 남북한 고위급 대화 그리고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과정에서 북한의 주동력이 컸으며 북한이 이제 공을 한국에 떠넘겼다고 본다. 북한이 김여정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카드를 내놓음으로써 이제는 한국이 무엇인가 결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경시켰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제 과연 문재인 정부가 현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유심히 지켜볼 요량이다.

특별히 중국은 이번에 처음 국제정치 무대에 데뷔한 셈이 되는 김여정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그를 파악해보려고 애쓴 듯하다. 김여정 방문이 폐막식 때 한국을 방문하는 트럼프의 딸 이방카보다도 훨씬 더 비중 있는 인물이라고 본다. 이방카는 정치적 상징성이 있는 인물이지만 김여정은 실제적으로 노동당에서 직위를 가지고 있고 상당한 재량권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등 서방 언론은 김여정이 임신했는가 등 가십적인 면에 집중했지만 중국은 김여정이 지도자 자질이 있는 지에 초점을 두었다.

올림픽을 통해 조성된 평화 모멘텀을 살리고 이어나가는 데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첫째, 일각에서는 중국이 대북 특사를 보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지만, 중국이 당장 북한에 특사를 보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일단 북한 쪽에서 환영해 줄 지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북중 간 중요 기념일을 이용하여 중국 사절단을 보내는 자연스러운방식을 통해 북한과 고위급 소통을 시도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둘째, 최근 미국과 대립각을 더욱 세우고 있는 중국이 미국한테 북한과 대화를 하라고 적극적으로 중재할 처지는 아닌 듯싶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과 함께라면 미국 설득에 동참할 용의는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한국은 이러한 상황을 면밀히 판단하면서 평창 이후한국의 전략적 공간이 어디에 있는 지 신중히 탐색할 것이라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