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북한과 미국
우정엽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들어가며
내년도 정세를 전망하는 이 글을 작성하는 필자로서는 현 시점에서 단지 1주 혹은 2주 내에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할 것인지에 대해 예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아마도 김 위원장이 서울 방문 계획에 대해 우리 정부에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방문하지 않겠다고도 확실히 이야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정부로서는 그의 서울 방문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이렇듯 불과 몇 주 앞의 사안에 대한 예측마저 불가능한 상황에서 내년에 대한 전망이 과연 어느 정도나 신뢰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비난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다만, 그의 답방 여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에 대해, 그리고 보다 넓게는 현 시점에서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타당성 있게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밝혀두거니와 상황의 전개란 어느 일방의 의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행위와 대응이라는 복잡한 상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기적이든 단기적이든 전략적 상황의 전개를 전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사실 이렇게 전망하기 힘든 상황이 2018년 한 해 동안 계속되어 왔다. 우리와 북한, 그리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 어떤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단기적 예측이나 전망은 어긋나는 경우가 많았다. 단기 예측·전망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았던 이유는 우리가 북한이라는 매우 특수하고 이질적인 정치 체제와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에 따라 우리와 미국 역시 외부에서 볼 때는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이 매우 불투명한 상황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단편적인 여러 정보들을 취합하여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하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고, 그러한 과정에서 주관적 추측이나 희망적 사고에 기반한 여러 정보들까지 유통되고 있다. 이번 글에서 필자는 미국이 인식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2019년의 정세를 전망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2019년 북·미 관계 전망의 틀
2017년의 북·미 관계와 2018년의 북·미 관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무력 충돌의 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위협적인 우려에서부터 모든 상황이 대화와 협상으로 정리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에 이르기까지 양 극단을 오갔다. 2018년 상반기는 남북정상회담과 사상최초의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통해 북한 비핵화와 그에 따른 북·미 관계 개선이 빠르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었다면, 하반기에는 북·미 간 실질적인 비핵화 협상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향후 북·미 관계에 대한 전망까지 어둡게 하고 있다. 2019년 북·미 관계는 현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비핵화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달려 있는데, 크게 네 가지 방향의 진행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한 극단에는 평화적 해결과 그에 따른 북·미 관계의 진전, 그리고 또 다른 끝에는 2017년 상황으로의 복귀이다. 우선 평화적 해결 시나리오에는 다시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국제사회가 원하는 비핵화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원칙적으로 합의를 이루지만 그 합의 내용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다. 이러한 평화적 해결과 군사적 위기의 증가 사이에는 현재의 상황과 같이 계속적인 협상 국면의 지속이라는 현상유지 상황이 존재한다.
이보다 더 미세한 분류가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위와 같은 총 네 가지 전개가 가능하다고 보았을 때, 김 위원장의 전략적 결단 및 국제적 비핵화 방식 수용 시나리오는 현재까지도 북한이 실무협상에 나서지 않는 상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리고 미국이 다시 북한에 대해 군사적 압박을 가하는 상황, 다시 말해 2017년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은 북한이 당시와 같은 고강도 도발, 즉 핵 혹은 미사일 실험, 아니면 협상 파기의 공식적 선언과 같은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서는 미국이 마땅한 명분을 찾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보았을 때, 특히 계속되는 국내정치적 문제를 타개하고자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군사적 작전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충분한 명분을 필요로 하는데, 북한의 도발과 같은 명분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러한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이렇게 낙관적·비관적 시나리오의 양 극단을 제외하고 본다면, 현실적으로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불완전한 북한의 비핵화와 불완전한 제재 완화 또는 해제가 교환되는 방식으로 상황이 전개되거나, 아니면 2018년 하반기와 같은 상황이 2019년에도 지속되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둘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상황 중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더 높은지에 대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요인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이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현 상황에 대한 인내심인데, 쉽게 말해 누가 더 오래 기다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에 따라 협상력과 협상 전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국내정치 상황의 변화이다. 국내정치 상황의 변화가 대외 협상의 상황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각 요인들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현재의 협상 교착에 대한 미국의 인식
미국은 현재의 상황을 평가함에 있어 북한이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북한이 왜 실무 협상에 나오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및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왜 지난 가을 들어서부터 적극적 행보에서 소극적 행보로 돌아섰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미국이 너무 강한 협상안을 제시하고 있고 양보나 타협의 여지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고위급 협상 혹은 실무 협상이 진전되지 않고 있다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 미국은 현재 상황은 그러한 협상안을 제시할 단계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지난 10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때 김 위원장이 북·미 실무 협상 개시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했음에도 북한측이 일정 조정 등을 이유로 협상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실무 협상이 진행되지 않는 것이지 미국이 지나치게 강한 기준을 내세웠기 때문에 북한이 협상을 거부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미국이 보기에는 북한 입장에서 일단 비핵화 실무 협상에 본격적으로 임하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며, 이런 인식 내지 우려가 현재 북한으로 하여금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12월 내 고위급 회담이나 실무 협상이 개시되는 것은 어렵다고 보고 있으며, 대신 김정은의 신년사에 주목하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의 인식
미국은 지난 6월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큰 틀에서 지도자들 사이의 정치적 합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구체적 실행 계획에 대한 협상안 도출에 실패했다는 점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구체적 실행 계획에 대한 실무 협상이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는 정상회담의 날짜를 미리 정해두고 실무 협상을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실무 협상에서 북한이 적극적 협상안 제시 및 합의 도출에 나서지 않더라도 이미 정상회담 날짜가 정해진 상황이기에 대북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실무 협상이 수반된 고위급 회담이 선행되어야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시기 및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곧 사임할 예정인 앤드류 김 미 CIA 코리아미션센터장과 북한 인사가 최근 판문점에서 회동한 것이 북·미 실무 협상의 재개 인지 여부에 대한 뉴스가 있었으나, 아마도 실무 협상이 재개된다면 장소는 판문점이 아닐 확률이 높아 보인다. 미국은 판문점에서의 실무 협상은 북한 협상단이 수시로 훈령 및 지침을 받고 그에 구속되는 상황에 놓이기에 북한 협상단의 자율적 협상 능력이 현격히 제한되어 이 때문에 그간의 판문점 협상이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지난 가을 미국이 유럽 등 제3지역에서의 실무 협상을 공개적으로 원한 것은 이와 같은 고려에서 기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북 제재 유지 및 완화에 대한 미국의 인식
북한과의 협상이 매우 더디게 진척됨에 따라 초조해진 미국이 제재 완화와 같은 카드를 가지고 북한과의 협상 재개를 목표로 다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인터뷰 내용, 익명의 미국 관리들을 인용한 기사를 통해 그러한 의견이 제기 되고 있는데, 현재 시점에서 미국은 상응 조치로서의 제재 완화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물론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모든 것을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그것 역시 어디까지나 북한이 매우 전향적인 조치를 취할 때에만 제재 유예 등을 논의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인도적 지원의 제재 예외 인정 범위 확대 가능성 여부 역시 뉴스에서 보도되었으나, 한국은 물론 미국 내부에서의 대북 인도적 지원 확대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이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접근한다. 초국경 전염병 같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북한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 내부에서 발생하는 인도적 위기는 국제사회의 지원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문제 때문이라는 입장으로, 인도적 지원까지도 대북 협상력 증대 차원에서 연계시키고 있다는 일부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적어도 당분간은 이러한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인도적 지원 문제에 대해서도 이처럼 강한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북 경협에 대해서는 더욱 강한 입장을 견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내정치 상황의 변화
새해가 되면 민주당이 미국 하원을 장악하게 된다. 민주당은 대북 정책에 있어서 세 가지 원칙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정책을 보다 투명하게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회의 감시 권한을 최대한 사용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소위 정상간 합의에 의한 ‘탑다운(top-down)’ 방식에 기대를 거는 북한에게는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이 2018년과는 다른 상황이 됨을 의미한다. 둘째,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정책 전반에 있어서의 약점이 인권 문제에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대량살상무기(WMD)와 더불어 인권 문제에서의 개선이 없는 한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민주당은 예컨대 개성공단 재개 문제에 있어서도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로는 동맹 관계 강조이다. 이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협상에 있어서 한미동맹의 대비 태세와 관련한 부분을 일종의 협상 카드로 사용하는데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맺으며
내년 초에 개최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북·미 관계의 일대 진전을 이루는 소위 ‘빅딜(big deal)’ 보다는 양국간 실무적 협상을 진행시키는 선에서 두 정상이 공개적으로 합의를 이루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미국의 뜻만으로 이렇게 나아갈 수는 없고, 북한이 동의를 해야만 가능하다. 역사적인 싱가포르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7월부터는 실무 회담이 전혀 진척되지 못한 점, 그리고 향후 정상회담에서도 큰 결과물을 도출하기에는 실무 회담을 진행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들이 미국으로 하여금 정상회담 이후 ‘시한을 정한’ 본격적인 비핵화 실무 회담의 개시를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인식을 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러한 실무 협상이 빨리 끝날수록 또 성과가 높을수록 대북제재 해제 혹은 완화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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