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정책연구

북한 주둔 중국인민지원군 철수에 관한 연구

등록일 2014-09-01 조회수 10,098 저자 이종석

   한국전쟁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의 참전은 전쟁의 결과를 바꿔놓은 중대사건이었다. 중국인민지원군은 유엔군의 북진으로 궤멸상태에 빠진 북한군을 도와 전세를 역전시키고, 결국 정전(停戰)으로 전쟁을 마무리하게 한 장본인이었다. 정전 후 중국인민지원군은 북한 지역에서 1958년까지 단계적으로 전원 철수하였다. 그런데 이 철군은 주한미군의 동향과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전후 한반도 정세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즉, 중국인민지원군의 철수는 북한의 국방과 휴전선 경계를 전적으로 북한군이 담당하게 됨으로써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철군과정은 북한 내부의 권력관계와 북-중관계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었다. 
   중국은 정전 직후 120만 명에 달했던 중국인민지원군 중 약 25만 명 정도만 북한에 장기주둔을 위해 잔류시키고 나머지는 1955년 말까지 철수시켰으나, 장기주둔 태세로 접어든지 불과 2년 만에 북한과 나머지 병력의 완전 철수에 합의하고 1958년 말까지 철군을 완료하였다. 그런데 북한과 중국의 공식 문헌들에만 의존하면 중국인민지원군의 철수 과정은 양국의 우호적인 합의와 사전 준비 아래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나, 이 철군은 기존의 중국인민지원군 병력으로 대항해야만 군사력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주한미군이 존재한 상태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북한의 심각한 안보 공백 상태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철군이 이루어진 데는 북-중 간에 누적된 불신과 1956년 8월의 중소의 내정간섭과 헝가리 주둔 소련군의 헝가리 사태 무력진압과 헝가리 정권 전복 등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결국 1958년 중국인민지원군 철수는 김일성이 ‘국가의 안보’ 보다 자신의 ‘정권의 안전’을 선택한 일종의 모험이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북한 철수는 이후 한반도 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 철군이 양국 간에 원만한 전략적 협력 아래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양국 관계의 균열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그 영향은 보다 복합적이고 광범위했다. 그 영향을 살펴보면 ① 북-중관계가 내정간섭이 가능한 위계적인 비대칭 동맹에서  ‘내정 불간섭형 비대칭동맹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② 북한 국내 정치적으로 김일성이 유일권력체제를 구축하고 자주노선을 추구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주한미군과 한국군이라는 연합전력에 대항해서 북한군만으로 국방을 수행해야 하는 부담을 안겨줌으로써 과다한 국방비 투자로 이후 북한의 경제발전에 난관을 조성하였다. ③ 남북관계에서 ‘미군철수’ 주장을 통해 남한을 압박하고 미국과의 직접담판을 추구할 수 있는 대외적 명분을 확보하였다. 이는 결국 긴 세월 동안 남북 군사관계를 기형적 관계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