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대러시아 정책방향
정은숙(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
chunges@sejong.org
올해는 한러수교 32주년 되는 해이다. 본고는 간략히 전임 정부들의 대러정책을 회고해 보고 신정부의 대러 정책방향을 조망해 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현재진행형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먼저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됐음을 밝힌다. 전세계가 코로나-19팬데믹과 경기회복에 몰두하는 이 시점, 집권 22년차인 러시아군 최고통수권자인 푸틴대통령은 자국 안보붕괴를 막아야 한다며 같은 슬라브 민족인 이웃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열전’ (熱戰)’에 몰입해 있고, 이것이 교전국인 두 나라의 운명은 물론, 유럽의 안보와 강대국 경쟁시대 글로벌 질서, 그리고 신정부 한러관계에도 뜨거운 감자가 됐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요
지난 2월 24일 푸틴대통령(70세)의 결정에 따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북, 동, 남 3개 방향에서 동시 침공에 들어갔다. 우크라이나 영토는 한반도의 약3배 (603,550 km)이며 구소련 공화국중 러시아에 이어 제2위 규모다. 인구(4,400만)로도 그러하다. 서부쪽으로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냉전기 소련주도 공산국가이었으나 성공적 체제전환을 통해 NATO와 EU에 가입한 “유럽”국가들이다. 우크라이나도 “유럽”의 일원이 되고자 NATO, EU와의 협력을 도모했지만, 30년간 우여곡절 속 아직 실현돼지 못했다. 그 배경에는 우크라이나내 친러성향 국민(우크라이나인 80%, 러시아인 17%)과 소련의 구조적 유산이 큰 몫을 한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인이 다수인 영토내 두 지역, 그리고 이들의 동태를 지켜보며 여전히 세력권 개념에 몰두한 강대국 러시아가 옆에 있다.
먼저, 영토남부 크림반도와 세바스토폴은 2014.3. 키이우와의 협의없이 자체 주민투표 및 크렘린의 병합 선언이 일사천리로 전개됐었다. 유엔총회는 즉각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 영토통합성을 훼손했다며 러시아를 규탄하고, 무효화 결의문을 채택했다. 러시아는 미국과 EU의 경제제재에 들어갔고, G8에서 퇴출됐다. NATO정상들은 회원국 GDP의 2% 실천을 공약했고 동부 신속배치군 등 방위태세 증강을 결정했다. 푸틴대통령에게는 아픈 결과였다.
다음, 돈바스 지역 (도네츠크 공화국, 루한스크 공화국)은 2014-2015년간 약 15,000명의 희생을 치르며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반군간 내전을 치렀다. 2015년 민스크 협정에 따라 휴전이 성사됐지만 지난 8년 정부군과 반군은 접촉선 주변 내전을 지속했고 희생자도 늘어갔다. 이 지역에는 러시아군 상당수가 비공식 진주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푸틴대통령은 지난 2월 21일, 그리고 침공당일 (2.24) 비교적 장황한 대국민 연설로 나름의 당위성 수순을 밟았다 (각각 18쪽, 9쪽). 침공 3일전 연설은 러시아가 마침내 ‘도네츠그 공화국과 루한스크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이에 입각하여 각각과 우호 상호협력 조약’을 체결했다는 요지였다. 개전일 아침 연설은 바로 이 두 공화국의 “구조요청”에 따른 “적법절차”에 의거, 자신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을 승인했다는 것이다. 목적은 “탈나치화, 탈군사화, 관련자 처벌”이다. 외부 개입자는 응분의 댓가를 치를 것이라 경고하며 러시아 경제는 안정적일 것이라며 애국심에 호소했다.
푸틴대통령은 단시일내 무력위협 내지 실질 무력행사로서 (i) NATO비가입 (ii) 8년전 크림자치공화국과 세바스토폴의 러시아 합병 현실화; (iii) 새롭게 돈바스 두 공화국의 (준)독립 혹은 러시아 합병 등의 약속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 같다.
러시아의 인명, 경제, 국제위상 손실 예상
지난 한 달여 경과를 보면, 러시아는 예측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첫째, 키이우에 남아 결사항전을 외치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위시, 우크라이나 군과 민이 힘을 다하여 대항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공군이 제공권을 유지한 가운데 러시아군의 인명과 장비손실, 방향과 사기 상실, 연료, 탄약, 식량 공급 차질 등으로 키이우, 하리코프 등 대도시 장악이 지체되고 있다. 언론의 자유가 결여된 러시아에서 국민들은 국방부 입장을 대변하는 정보매체에 의존, 전장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3월 20일 기준, 서방과 우크라이나측 소식통들은 러시아군 최대 15,000명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러시아 매체는 500명으로 발표).
둘째, 적어도 현재까지 서방과 국제사회의 대응은 강력하다. NATO가 비회원국 우크라이나 영토 진입은 아니지만, 동유럽 회원국들의 억지력 제고를 위해 최초로 전시편제를 공표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에 대해 경제적, 인도주의적, 그리고 추가적 안보지원을 결정했다 (스팅어 방공미사일 등), EU도 살상무기 지원결정 등 단합적 대응에 들어갔다. 러시아와 침략공조국인 벨로루시에 대한 문책도 전개됐다. 대러경제제재로는 G7, EU가 기존 제재외에 SWIFT(국제안전결제망)배제, 러시아군산기업의 첨단기술 획득, 러시아 항공기 운항 등 추가제재를 결정했다. 루블화는 추락하고 서방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하고 있다. 독일은 Nord Stream-2의 승인을 포기했고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산 원유금수를 결정했다. 미국, EU, 영국은 개전 다음날 푸틴대통령 개인도 제재대상 명단에 올렸다.
유엔회원국들은 안보리내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자 긴급 총회(3.2)를 개최, 침략을 규탄하는 총회결의문을 채택했다 (찬성 141, 반대 5, 기권 35). 한편 개전 3일째부터 병원과 민간인 주거지까지 러시아군의 로켓포가 발사되면서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전범조사에 착수했다. 국제평화와 안보를 담보하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에게는 이 모든 것이 감내하기 힘겨운 일이 됐다.
2월 28일 첫 협상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측에서는 중립국화 방안을, 우크라이나는 즉각 휴전과 러시아군 철수를 제시하면서 난항을 겪는 듯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낙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에 미칠 영향 및 대응방향
한국은 70년전 (1950-53) 갑작스런 무력침공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법치, 인권존중의 가치를 지키고, 성장해온 대표적 중견(선진)국가로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전일성을 훼손한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주요국 외교에서나 국제무대에서 영토존중에 대한 원칙적 자세를 지녀야 한다. 소련붕괴후 구소련 공간내 약 2000만 러시아인이 소수민족으로 살아간다. 무력침공이 답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국제적으로 인종을 명분으로 한 끝없는 무력사용 정당화의 여지가 있다.
이미 문재인 정부가 긴급 유엔총회 (3.2)에서 결의문을 지지했으므로 신정부는 이를 토대로 외교기조를 유지하면 될 것이다. 신정부는 민간인과 아동 대상 폭격, 핵억지력 지시 등에 대해서도 냉전종식후 국제평화를 위한 강대국협력의 종식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지녀야 할 것이다. 1994년 러시아가 미국, 영국과 함께 우크라이나로 하여금 영토내 소련의 전략핵무기 일체 (1,200여 전략핵탄두 포함)를 내놓고 NPT비핵회원이 되는 대신 안보를 보장한다고 약속했었음도 상기해야 한다 (부다페스트 안보각서).
SWIFT 등 대러 경제금융제재에 따른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능성에 대해서도 여타 민주국가들과의 공동연대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공동방안을 조율해 가야 할 것이다. 조속한 시일내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오고 기존 한러관계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발전해 갈 것을 바란다.
전임정부 한러 정책과 신정부의 과제
한반도는 세계최대 영토를 자랑하는 러시아와 북한 두만강하구 17km가량을 접하고 있다. 신정부가 출범하는 2022년은 1990년(소련붕괴 1년전)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성과중 하나로 간주되는 한소수교 32주년이 되는 해다.
소련붕괴후 15개 공화국중 러시아가 소련의 국제법적 계승국이 되어 관계를 이어 왔다. 지난 30년 러시아는 크게 옐친대통령의 체제전환기, 그리고 이어진 20년은 푸틴대통령의 권력공고화기로 대별되는 반면, 한국은 6개 정부(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가 대러정책을 추진해 왔다. 신정부는 향후 5년 푸틴대통령을 상대로 대러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그의 집권4기는 2024년 끝나지만 수정헌법(2020)은 연속 집권5기-6기 대선출마를 가능토록 했다.
그간 양국은 냉전기 체제이질성에 따른 단절, 문화적 이질성 등 어려움을 극복해 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호혜적 관계발전을 도모해 왔다. 양자 및 다자차원 양국 정상간의 만남이 꾸준히 이뤄졌고, 2008년 양국 관계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2014년에는 한러 사증면제협정이 발효되어 인적교류도 증가세를 보였다. 양국은 2020-21을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한 한러 상호교류의 해로 기념했다.
노태우 정부 포함 지난 30여년 한국의 역대 정부는 일괄하여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i) 경협을 통한 한국 기업들의 실질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창출, 그리고 (ii) 북한핵문제 해결, 북한의 개방 등 북한관련 러시아의 지원 내지 협력을 얻고자 했다. 반면 러시아는 (i) 우랄 동부 및 러시아 극동지방의 기간산업 및 에너지 개발을 위한 한국측의 좀더 과감한 투자를 요구했고, (ii) 철도, 에너지 등 남-북-러시아 3각 경협틀을 통한 한반도에서의 정치적 영향력 및 경제적 실익 추구에 관심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견 양측 기대가 수렴되지만 구체적으로는 국제 및 한반도 상황, 그리고 양국 정치경제 운용 실태에 대한 상호이해 부족 등 어려움도 수반됐다. 예컨대, 2020년 양국 교역규모가 채 200억 달러 미만인 점 (러시아는 한국의 제12대 교역국)은 아직 양국 잠재력과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실정임을 말해준다. 2021년 증가에도 불구, 300억 달러를 넘지 못했다. 설상가상 2022년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부과된 서방의 전방위 추가 대러제재가 지속된다면, 러시아경제에 타격을 주고 한러경협 비전에도 큰 차질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신정부에 대한 대러정책 제언으로 글을 맺으려 한다. 첫째, 전임 정부인 문재인 정부의 대러정책 진척상황을 점검하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해(2017) 9월 블라디보스톡 제3차 동방경제포럼에서 러시아의 신동방 정책과 부합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 정책을 소개하고, 대대적 에너지, 철도, 항만 등 9개 경협분야를 설정했다. 이듬해 모스크바 정상회의(2018.6) 에서는 한러 서비스·투자 FTA 체결협상 조속 개시노력을 약정하는 한편, 2020년을 신북방 협력의 해로 지정하기도 했다. 2022년 서방의 대러 추가제재 국면에서 이들 약정들의 진척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현재로서는 기존 협력업체들이 당장 대러금융제재관련 결제, 송금 애로사항, 수출금지 제한 조치 등에 직면하게 됐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러시아와의 긴밀한 협의”를 강조해 왔다. 소위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과 모스크바와의 “전략적 소통”이 지난 5년 어떠한 성과를 가져왔으며, 한계는 무엇인지 냉철한 점검이 필요하다.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유엔 긴급총회에서 북한은 평소 “주권존중”을 기치로 삼아온 것과 달리 결의문에 반대한 러시아, 벨로루시 등 극소수 5개국중 하나였다. 또한 3월 24일에는 2017년에 이어 또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셋째, 신정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내 재외국민 보호 및 동포사회의 발전. 체류중인 국민들의 안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정부는 이행가능성을 염두에 둔 냉철한 대러정책, 그리고 꾸준한 민간교류와 러시아의 잠재력에 기초한 장기적 협력방안을 강구해 갈 필요가 있다. 더불어 지구촌시대 한러 양자관계의 발전을 위해서 그 지평을 남-북-러에 국한하지 않고 유럽과 국제무대에서의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 그 역사와 변화에 대한 이해를 축적해 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