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안보
허윤지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yjher@keei.re.kr
세계 에너지 시장 동향
2020년에 접어들며 전 세계적으로 석유,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전통에너지의 공급 여력이 감소하였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위축으로 에너지 수요가 감소함과 동시에, 주요국의 탄소중립 선언으로 전통에너지에 대한 신규 투자 및 개발이 둔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2020년 말, 북반구에 이례적 한파까지 겹치며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였다. 2021년 들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급 불안정과 이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 현상이 발생하였고,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러한 현상을 증폭시켰다.
2020년 국제 유가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42.2/배럴에 불과하였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월 $92.4/배럴, 3월에는 $110.9/배럴에 이르렀다. 유럽은 특히 대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데, 유럽의 천연가스 TTF(Title Transfer Facility) 가격은 2021년 1월 4일 $7.1/MMBtu에서 전쟁 발발 후 3월 7일 기준 $72.2/MMBtu까지 10배 이상 상승하였다. 시장 불안정에 따라 가격 변동성도 심해져 5월 30일 $27.5/MMBtu까지 떨어졌던 TTF 가격은 이후 반등하여 8월 26일 $96.3/MMBtu까지 급등하는 등 $30~90/MMBtu 대에서 큰 변동폭을 보이는 중이다. 한편, 이렇게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각국은 계획 중인 탈석탄 정책에 유보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석탄의 수요가 증가하며 호주산 연료탄 기준 2021년 $138.1/톤 수준이던 석탄 가격은 전쟁 발발 이후 $400/톤 수준까지 2배 이상 상승하였다. 또한, 전쟁이 장기화되고 유럽을 비롯한 주요국이 동절기에 대비한 에너지 확보 경쟁을 심화함에 따라 국제 에너지시장의 불안정성은 커지고 있다.
[그림 ] 국제 에너지 가격 및 천연가스 가격 동향
주: 원유는 두바이유, 석탄은 호주 뉴캐슬 석탄 기준, 석탄과 천연가스는 선물가격임.
자료: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브리프(2022년 8월호)
EU의 천연가스 수급안정화 추진 정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대러 제재가 가해졌으며, 여기에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원에 대한 금수조치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세계 에너지시장에 파급효과를 미쳤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유럽의 천연가스에 미친 효과가 지대하다. 앞에서 살폈듯이 유럽의 천연가스 TTF 가격이 급등락 양상을 보이는 것은 유럽의 대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유럽은 러시아로부터 연간 약 155Bcm 수준의 가스를 수입하며 이는 EU 역내 가스 수요의 약 40%에 해당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부터 유럽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러시아의 침공을 비판하며 여러 차례에 걸쳐 대러 제재를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 제한 조치가 포함되었는데, 구체적으로 5차 대러 제재에서 석탄 금수조치가, 6차 대러 제재에서 해상 유조선을 통한 석유 금수조치가 발표되었다. 동시에 EU는 러시아의 가스 의존도 감축을 위한 일련의 정책을 발표하였다.
먼저 유럽집행위는 3월 8일 발표한 입법문서인 REPowerEU에 탈러시아 가스 정책을 담았다. 이에 따르면 EU는 2022년 말까지 현행 155Bcm 규모의 러시아산 가스 수입량을 1/3 수준으로, 2030년 이전에 완전 감축할 계획이다. 구체적 방안은 LNG (Liquefied Natural Gas, 액화천연가스) 도입 확대, PNG (Pipeline Natural Gas, 파이프라인 천연가스) 수입선 다변화를 통한 러시아산 가스 수입 감축과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에너지효율 개선 등을 통한 가스 수요 최소화를 제시하였다. 또한, 동절기 가스 수요에 대비하여 EU 회원국은 역내 모든 가스 저장시설에 대하여 2025년까지 적용되는 최소 의무 저장수준을 설정하였다. 이에 따라 EU 역내 모든 저장시설은 매년 11월 1일까지 최소 90% (2022년에 한해 80%) 이상 저장해야 한다. 추가로 8월 5일 EU 역내 가스 소비 감축 규정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올해 8월부터 내년 3월까지 각국은 자발적 감축 노력을 기울이되, 유럽집행위는 최근 6개년(2016~2021년) 동절기 평균 가스소비량 대비 15% 감축하는 것을 권고하였다. 다만, EU 역내 비상상황(Union alert) 시에는 의무적으로 15% 감축을 수행해야 한다. [그림 2]는 EU의 올해 러시아산 가스 수입량이 2021년뿐만 아니라 2015~2020년과 비교해도 크게 감소하였음을 보여준다.
주1: Minimum과 Maximum은 2015~2020년 5개년의 최소‧최댓값임.
주2: 단위는 백만 입방미터(million cubic meters)임.
자료: Bruegel, European natural gas imports, 2022.8.30.
안보 중심의 에너지 공급망과 에너지 시장 전망
EU는 대러시아 에너지의존도 감축 정책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임과 동시에 러시아의 자원무기화에 맞선 대응이다. 러시아는 4월 1일 수송물량부터 가스대금을 루블화로만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강행하였다. 또한, 6월부터 노드스트림-1 파이프라인을 통한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량을 기존 계획 대비 감축하거나 일시 중단하였다. 노드스트림-1은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장 많은 양의 가스를 수송하는 파이프라인인데, 러시아는 수송물량을 기존의 40%, 20% 수준까지 감축하였다. 급기야 9월 2일 러시아는 이 파이프라인을 통한 공급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발표하였다. 유럽집행위는 REPowerEU에서 가스 수입선 다변화 방향으로 50Bcm의 LNG 도입과 10Bcm의 PNG 수입처 대체를 포함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수입원은 미국 등 우방국으로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즉, 에너지 공급의 방점이 경제에서 안보로 전환된 것이다.
에너지자원 보유국의 자원무기화를 경험하였기에, 이러한 안보 중심의 에너지 공급망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낮은 비용에 에너지를 공급받는 상황과 달리, 안보 중심의 에너지 공급망은 세계 에너지 시장 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결국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일례로 EU가 이미 구축된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대신 미국산 LNG로 들여오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유럽이 미국산 LNG를 수입하기 위해서는 미국 내에서 천연가스를 LNG 수출터미널로 송출하여 이를 액화한 후 LNG 수송선을 통해 유럽으로 운송하고 유럽의 LNG 수입터미널에서 재기화(re-gasfication)해야 한다. 길어진 절차만큼 러시아산 PNG를 수입하는 것에 비해 가스 공급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은 LNG 수입 터미널, 재기화시설과 같은 LNG를 도입할 수 있는 인프라를 추가로 확충해야 한다.
해외 에너지 관련 기관들도 높은 에너지 가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에너지정보청(EIA)은 2022년 국제유가는 WTI유(West Texas Intermediate) 기준으로 연평균 $100/배럴 수준을 유지하고, 2023년 이후 다소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였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연평균 $90/배럴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천연가스의 경우, 유럽의 탈러시아가스 정책 추진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LNG에 대한 증산이 확충될 때까지 높은 가격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 안보 제고를 위한 대응 방안
우리나라의 대외 에너지의존도는 2021년 기준 약 93%로 매우 높다. 이처럼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기에 세계 에너지 시장의 공급 불안정과 불확실성 확대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에도 위험으로 작용한다. 또한, 높은 에너지 가격은 국내 경제에도 큰 위험요인이다. 특히 EU가 러시아 가스의존도를 감축하며 LNG 도입을 확대함에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통적 LNG 수입국이 구매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천연가스 가격이 아시아보다 유럽에서 높은 현상이 계속되어 유럽 프리미엄이 형성된 것도 경쟁에 어려움을 주는 요소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LNG 도입물량의 상당 부분을 장기계약으로 도입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공급 불확실성은 낮지만, 일정 부분의 수요는 LNG 현물 도입으로 충당해야 하며 현재의 높은 가격은 국내 경제와 물가에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편, 최근의 높은 에너지 가격은 역설적으로 청정에너지시스템으로의 전환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미 유럽은 REPowerEU에서 태양광 및 풍력 발전설비 확대, 그린수소 생산 및 수입 확대 등을 포함하여 발표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장기적으로 에너지자립도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으나,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각국은 당장에 직면한 에너지 위기 상황에 맞선 대응도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천연가스의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에너지원별 수급 안정성을 높이고 에너지 수입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석탄발전 상한제나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등의 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다수의 EU 회원국도 에너지 수급 안정을 위해 단계적 탈석탄 기조를 유예하고 한시적으로 석탄발전량을 확대하여 가스 수급 안정화를 제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장기적인 석탄발전 감축이라는 방향성은 유지하되,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한시적으로라도 석탄발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올 동절기 국제 천연가스 시장의 불확실성이 극대화되고 있는 만큼 동절기 가스 수급 안정화 대책을 별도로 마련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EU에서 가스 소비 감축의 방안으로 고려 중인 산업 부문 가스소비 감축에 인센티브 제공, 다른 연료로의 전환 지원, 건물 냉난방 소비 감축 등의 조치를 참고할 수 있다.
또한, 에너지 가격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EU는 러시아의 가스 공급과 하절기 폭염에도 불구하고 역내 가스 저장량을 확보하고 있다. 9월 들어서는 EU 역내 평균 저장수준이 2015~2020년 평균에 근접할 정도이다.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도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이례적으로 높은 가스 가격이다. 치솟은 가스 도매가격이 최종소비자의 요금에 상당 부분 반영되며 가스 수요가 크게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가격이 유의미한 신호를 줄 수 있을 때 에너지 절약, 에너지효율 개선 등이 효과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