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출간도서

2025 대한민국 대전망

등록일 2024-10-14 조회수 43 저자 최윤정


⑩ 세계 정치·경제 판을 뒤흔드는 글로벌 사우스

2025년 세계는 본격 지각 변동에 돌입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을 공식화한 트럼프 대통령이 귀환하면서 무역 전쟁을 중심으로 팽팽한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냉전기 미국의 맞수 중국과 러시아도 주변 지역을 규합해 경제·군사 힘을 투사하기 위해 다시금 세력화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강대국 경쟁과 더불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로 불리는 제3의 집단이 등장해 국제 정치의 담론에서 세를 불리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는 냉전기에 비동맹국 또는 서방이나 소련에 속하지 않은 개발도상국들을 지칭하기 위해 처음 사용됐다. 글로벌 사우스는 1955년 반둥회의를 계기로 성립된 비동맹 운동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서구 식민지를 경험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로, 1964년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를 중심으로 공정하고 평등한 국제 질서를 주창하는 개발도상국들의 연합체인 G77(77개국 그룹)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현재 134개국이 포함돼 있는 G77 국가들은 정체성을 '글로벌 사우스'로 정의하고 있다.

 

최근에 이들이 다시 주목을 받은 계기는 2022년 우크라이나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유엔에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 점령지 강제 합병 규탄 투표에서 중국과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소위 글로벌 사우스 국가 35개국이 기권하고 5개국이 반대했다. 이들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글로벌 사우스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핵심 행위자로 부상했다. 미국 국제 정치학자 존 아이켄베리(John Ikenberry)는 세계를 미국‧유럽이 주도하는 '글로벌 웨스트',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글로벌 이스트', 그리고 비서구 그룹인 '글로벌 사우스'의 '세 개의 세계(Three Worlds)'로 구분했다.

 

무엇보다도 세계 경제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현재 글로벌 사우스는 세계 인구에서 70%를 차지하는데 이 중 생산가능인구인 15세~64세가 68%를 넘는다. 선진 7개국(G7)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대 70%에서 현재 40%까지 하락한 공백을 글로벌 사우스가 메우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글로벌 사우스는 이미 세계 경제에서 40%를 차지한다. 2030년에 이르면 세계 4대 경제대국에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가 포함될 전망이다.

 

에너지, 광물, 식량 등 자원의 무기화 시대 도래로 자원 부국인 글로벌 사우스가 세계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도 확대되고 있다. 핵심광물인 희토류, 흑연, 망간, 코발트, 니켈, 리튬의 경우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콩고, 브라질 등이 세계 1위, 2위 생산국이고, 구리와 알루미늄 역시 중국, 인도, 남미 국가들이 상위 생산 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 공급망 경제 안보 강화를 추구하는 서방 국가들에게는 인도, 아세안, 중남미 등이 새로운 생산기지 및 소비시장으로서 중요한 협력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글로벌 사우스는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G20, UN, WTO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경제·외교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공동의 목소리를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를 세력화하는 대표 국가가 중국이다. 지난 10년간 글로벌 사우스에서 중국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중국은 세계 120여 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일대일로(BRI) 사업에 참여한 국가에 약 2조 4900억 달러(약 3370조 원)를 투자했다. 지난 2017년 홍해 연안의 지부티(Djibouti)를 시작으로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 군사 기지도 건설하고 있다.

 

또한 정치, 경제, 사회‧문화 발전의 전 영역에서 서구의 대안으로서 2021년부터 매년 글로벌 발전구상(GDI), 글로벌 안보구상(GSI), 글로벌 문명구상(GCI)을 발표하고, 이러한 구상을 실천하는데 BRICS, SCO와 같이 자국이 중심이 돼 구성하는 협의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BRICS를 G7에 대항할 수 있는 글로벌 사우스의 협의체로 규정하며 회원국을 9개국으로 확대하는 한편, 미국 달러화의 대안 화폐와 결제시스템(BRICS Pay) 도입에 착수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올해 12월1일부터 중국과 수교한 모든 최빈개도국(LDC)의 전체 관세 품목에 대해 무관세 대우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10%~20% 수준의 보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것과 대조되게 중국을 자유무역의 옹호자로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글로벌 사우스의 정체성은 중국과도 다르다. 대표 글로벌 사우스 국가로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인도와 브라질의 사례를 살펴보자. 인도는 2023년부터 총 세 차례에 125개국을 초청해 글로벌 사우스 정상회의(Voice of Global South)를 주재했다. 인도는 반서방(Anti-West)이 아니라 비서방(Non-West)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서구를 따르거나 반대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자기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비동맹 전략으로서 강대국 간의 경쟁을 지렛대 삼아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인도의 주장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로부터 큰 반향을 이끌어내었다.

 

브라질을 위시한 중남미 국가들도 미·중간의 갈등 속에서 적극적 비동맹(Active Non-Alignment)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이는 중남미 각국 정부가 특정 국제 문제에 입장을 취하되 국익에 따라 결정한다는 실용의 입장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들은 미·중간 경쟁 격화에 따른 신(新)냉전 시대 도래에 대응해 '경제적 이익이 가치나 안보보다 우선한다'는 입장을 견지, 옛 냉전 시기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자국의 이익 극대화를 표방하는 글로벌 사우스를 단일 행위자로 간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중국, 러시아와 같이 반서구의 틀에서 서구에 대항하는 세력화를 추구하기 보다는 UN이나 다자개발은행을 비롯한 국제기구의 개혁, 채무 조정, 기후변화 대응, 인프라 건설 등 이해의 교집합이 형성되는 분야에서 공동의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는 현재의 중국, 러시아를 위시한 반서방 국가들 뿐만 아니라 과거의 비동맹운동과도 결이 다를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국제적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서구 주요국 역시 이들과의 협력 경쟁에 뛰어들었다. 유럽 연합(EU)은 2021년 일대일로에 대항하는 글로벌 게이트웨이 프로젝트를 출범시키고 2027년까지 최대 3000억 유로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였는데, 이 중 절반을 아프리카에 할당했다. 지난해 G7 정상들은 6000억 달러 규모의 자본 조달을 포함해 다양한 글로벌 사우스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이와 별도로 미국과 유럽은 개발도상국의 채무 재조정을 포함한 금융지원 강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는 일본이 글로벌 사우스 지원을 위해 추경예산 약 8조 원을 편성하고 인도 지원을 위시한 다양한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글로벌 사우스는 생산거점, 소비시장, 자원의 제공처 등 다양한 경제 가치를 갖고 있다. 수년 내 이들이 세계의 정치, 경제, 과학기술, 환경 등에 미칠 영향은 압도적일 것이다. 이들이 미래 인류의 생존, 번영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의 정치·경제의 판을 흔드는 글로벌 사우스를 이해하고 함께 공생, 공영의 세계 질서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은 지금 시작돼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원조 수급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모범 국가이다. 한국이 갖고 있는 과학 혁신력, 문화 창의성, 경제발전의 서사와 노하우는 글로벌 사우스를 이끌 수 있는 강력한 소프트 파워이다. 이들의 시스템적인 고민과 방향성을 포착하고 한국의 강점을 결합해 이에 대응한 전략을 함께 모색할 때 한국은 글로벌 사우스와 공고한 파트너십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최윤정 외 공저|케이북스|​2024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