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협이 제기하는 위험의 성격은 두 가지다. 첫째는 북핵 위협을 어떻게 실효적으로 억제할 것인가의 문제다. 고도화되는 북핵 위협을 맞아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유지하고 한국군의 첨단 재래식 억제 역량을 강화하는 과제를 말한다. 둘째는 위기 불안정성 문제다. 즉, 상호 공포, 오인과 사고 등 통제되지 않는 요인으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핵 확전이 발생할 가능성을 말한다. 다시 말해 한반도 핵전쟁의 비극을 막기 위해선 대북 억제력을 실효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면서도 다른 한편 위기 불안정 위험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한반도의 안보적 도전이 이렇게 이중적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한미 양국의 노력은 억제의 실효성 문제에 집중된 측면이 있다. 대규모 연합훈련 실시, 미 전략자산의 빈번한 한반도 전개 등이 그 일환이다. 한국군 차원에서는 비핵 억제 역량 확충을 위해 킬체인(Kill-Chain),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 대량응징보복(KMPR) 등 한국형 3축 체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 질주에 대해 한미 양국이 대응 태세와 능력을 강화하는 노력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 노력이 미흡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억제 일변도의 군사적 조치들은 한반도의 전략적 불안정성을 높일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억제는 기본적으로 위협에 기초한 전략인데, 핵 시대에 내재된 불안정성이 당사자들의 억제력 경쟁으로 더욱 악화되기 쉽다. 선제공격을 두려워하는 측은 핵 발사 권한의 위임, 고도의 격발 태세 유지 등의 선택을 하게 되고, 이는 상황 오판, 기계의 오작동 등 우발적 핵전쟁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와 한국의 첨단 재래식 전력 증강이 맞물리면서 끊임없는 군비 경쟁을 촉발하는 부작용도 발생한다. 즉, 남북한 간 벌어지는 억제력 경쟁이 한반도 위기 불안정과 군비 경쟁이라는 폐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에서 나타나는 핵 위기 안정성과 군비경쟁의 문제는 미·소 냉전 시대에 이미 치열하게 논쟁했던 이슈들이다. 미·소 양국은 끊임없이 핵 군비 경쟁에 몰두했고, 특히 선제공격에 대한 두려움으로 조기경보와 즉응적 핵 대응 태세에 매달렸다. 늦기 전에 핵 반격을 가하기 위해 ‘경보즉시발사(LoW: Launch on Warning)’ 태세가 고안되었고, 핵 발사 권한의 사전 위임 압력도 높아졌다. 특히, 크렘린 지도부에 대한 참수 작전이 거론되자 소련은 ‘죽은 손’이라는 핵 자동 타격 시스템을 수립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조기경보 레이더의 오작동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모든 게 우발적 핵전쟁의 위험성을 높이는 불안 요소들이었다. 사고에 의한 핵 발사가 아니라도, 일단 위기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치닫게 되면 먼저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핵 사용 문턱을 낮춘다는 점이 문제였다. 실제로 미·소 간에는 의도치 않게 핵전쟁의 문턱까지 가는 위험한 순간을 여러 차례 겪은 바 있다. 이렇듯이 냉전 시대 핵전략의 역사를 살펴보면 핵 독트린을 둘러싼 논쟁, 위험했던 우발적 확전의 문턱 등 한반도에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이 가득하다. 따라서 냉전 시기 제기되었던 우발적 확전(inadvertent escalation)의 위험성을 짚어 보는 것은 한반도 핵전쟁의 비극을 예방하는 데 중요한 교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냉전 시대 핵전략의 논쟁과 사례가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과 교훈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한반도 핵 위기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 북핵 위협이 제기하는 과제가 억제력 증강이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북 억제력 유지와 강화는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필수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따라서 북핵 위협 대처에 대한 정책적 노력의 방향을 억제력 강화뿐 아니라 위기 안정성 측면까지 넓혀 균형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북한의 조기 핵 사용 유인을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규모 대군사 타격 위협, 선제공격, 참수 메시지 등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셋째, 억제 전략과 관련해서는 ‘거부적 억제’보다는 보복 위협에 기초한 ‘응징 억제’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상대의 선제공격을 흡수한 이후 치명적 보복을 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만 확보할 수 있다면 북한의 핵 사용을 억제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위기 불안정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3축 체계 중 대량응징보복(KMPR) 역량을 발전시키고, 미사일 방어(KAMD)의 경우 지휘통제 센터, 미사일 기지, 공군기지 등 제2격을 위한 생존성 담보에 역점을 두고 설계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핵전쟁 예방을 위해서는 재래식 충돌 자체를 막는 노력 자체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반도의 구조적 조건상 고강도 재래식 충돌이 발생하면 핵 위기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래식 충돌을 막는 것이 핵전쟁 예방의 출발이라는 인식하에 군사적 신뢰 구축 노력을 지속 전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