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적개발원조레짐은 국제정치경제 패러다임 변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했다. 전후 미소가 자신들의 진영을 구축하는 수단으로 복구사업을 지원하면서 시작된 ODA는 1950년대 후반 들어 서유럽 국가들이 원조를 제공하면서 다변화됐다. ODA는 1960년대까지는 주로 국가이익을 위한 안보전략적 목적으로 제공됐다. OECD DAC의 창설과 UN 연례개발10년(Development Decade) 시리즈는 국제ODA레짐의 초석이 됐다.
1970년대부터는 유로달러를 활용한 상업적 대부가 개발자금의 주류가 됐다. 미국의 상대적 국력 쇠퇴, 자원 민족주의의 대두 그리고 국제노동분업의 확대로 국제정치경제 질서는 혼란을 겪었으며 국제ODA레짐도 혼란을 겪었다. 대다수 저발전국가들은 사회경제 발전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1989년 냉전이 종식됐다. 1990년대 들어 세계화가 본격화되자 ODA의 안보전략적 도구로서의 가치는 크게 줄었으며 저개발국가의 빈곤과 발전 문제가 국제사회 공공재 차원의 사안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UN은 밀레니엄개발목표를 세우고 OECD DAC은 2003년부터 원조효과 고위급 포럼을 개최하기 시작했다. G20정상회의도 2010년 서울 회의부터 저개발국 개발문제를 의제로 상정해 국제ODA레짐의 주요 프로세스로 자리매김했다.
원조 공여국들은 자국 이익의 도모를 초월해 보편적 인도주의 가치를 구현하는 개발협력 정책을 취하도록 압력을 받고 있다. 탈냉전기 국제관계에서는 하드파워보다 상대국의 자발적 협력과 동의에 기반을 둔 소프트파워가 효과적이다. ODA는 이제 특정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선린외교를 위한 외교자본의 확충 수단 그리고 공공외교의 일환으로 인식돼야 한다. 한국은 제한된 정책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ODA 전략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