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왜 일본 또는 그 정치가들은 고이즈미 수상의 경우처럼 야스쿠니 신사에 집착하는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부분적인 답은 단순히 고이즈미 수상 또는 자민당 정치가들의 보수적 성향에서만 찾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일본이 근대국가를 시작함에 있어서 국가를 신의 나라로 만드는 종교적 작업이 추진되었는데 그 정점에 야스쿠니 신사가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적 종교화사업이 일부에게는 극단적 거부감을 낳았겠지만, 당시의 많은 일본인들에게는 ‘멸사봉공’의 생각으로 몸과 마음을 국가에 바치도록 만들었고, 따라서 현재에 있어서도 그에 대한 부정은 이와이씨의 증언에서 보듯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근대일본의 역사는 야스쿠니 신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현재까지도 야스쿠니 신사가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를 제공한다고 하겠다.
야스쿠니 신사의 이러한 특수한 의미와 역사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는 무엇보다도 야스쿠니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결코 용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바로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즉 해결방안으로서 제시되는 국민추도시설이나 분사가 진정한 해결방안이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기에 한국으로서는 별도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사점들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야스쿠니문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고 하겠다. 그 근본적인 해결은 무엇보다도 일본 전체가 스스로의 과거에 대해 전면적인 성찰을 진행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밖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스스로 해야 한다는데 어려움이 있는데,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밖의 주변국으로서는 민주나 평화와 같은 가치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대화하는 방법만이 자국의 안보를 위하고 양국의 선린관계를 지켜나가는데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