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미중 관계의 특징을 설명하는 한 보편적인 수사(修辭)는 미중이‘서로 티격태격하다가도 결국은 협력의 방향으로 갈 것이다’는 식의 자유주의적 담론이었다. 즉, 미중이 때때로 갈등을 겪더라도 상호보완적인 경제이익 등 교집합이 많은 미중관계의 특성상 선의의 경쟁과 협력이 미중관계를 이끌어 나아간다는 논리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 글은 왜 미국과 중국이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은 다시‘이전처럼’ 협조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 간의 패권 경쟁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은가를 살펴보는 탐색적(exploratory)추론의 과정을 담고 있다.
무역전쟁으로 대표되는 미중 갈등이 타협을 보기보다는 장기 간의 패권 경쟁 양상을 보일 것이며, 일시적인‘봉합’을 보일 수는 있으나 전반적으로는‘악화’의 노정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중국 시진핑 주석이‘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中華民族的偉大復興)으로 요약되는‘중국몽'을 완성하는 시기를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으로 설정했으니 미중 갈등은 앞으로 30년, 즉 한 세대의 시기가 될 수 있다.
결국 미중 갈등은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는 기존의 패권국과 부상하는 강대국 사이의 긴장이 만들어내는 보다 구조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때로는 협력을 촉진할 수도 있겠으나 보다 근본적인 갈등적 경쟁구조라는 울타리를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자국 경제에 장기적인 고통을 초래하더라도 미국에 '단기적 고통'을 줌으로써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을 뒤집으려는 의도다. 그러나 이러한 양패구상식 전술은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은 미중 무역 전쟁의 성격에 대해 한발 늦은 인식 진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이는 단순한 '관세 전쟁'도 아니고 '무역 분쟁'도 아니라 미래를 둘러싼 ‘패권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한발 늦은’ 인식은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어떠한‘포지셔닝’을 해야 하는 선택에 있어 더 큰 도전과 고민을 의미한다. 미리 대처할 수 있는 선제적 전략구상이 부재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미·중 사이의 기계적인 중립이나,‘미·중 둘 다 중요하니 어느 쪽도 선택하면 안 된다’는 ‘영리한 변명’(clever excuse) 뒤에 더 이상 숨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변국 줄 세우기는 강대국들의 오랜 역사적 패권 행동 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