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은 계급, 종교, 인종, 및 지역 등과 마찬가지로 정체성이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끊임없는 팽창에도 불구하고 근대국제사회에서 가장 핵심적 행위자는 민족국가이다. 대량이민과 이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때문에 민족국가의 의미는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이 글은 최근 중요하게 논의된 일상적 민족주의의 중요성에 동의하지만 일상성의 정도는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는 점을 논의할 것이다. 민족주의 신화가 일상화되면 다른 민족국가의 구성원에게는 민족주의지만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애국주의와 충성심이다. 그러나 그 대상은 똑같은 민족국가이다. 엘리트의 민족주의 동원에 대중적 호응이 큰 이유는 대중에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은 일상에서는 작동하지 않고 수면 아래 잠복해 있지만 일단 위기가 발생하고 정치엘리트가 호출하면 즉각 반응한다.
2부의 목적은 방역정책이 민족정체성과 정부신뢰에 미치는 효과를 검토하는 것이다. 팬데믹은 1918년 스페인 독감이래 가장 심각한 세계적 감염병으로 발생했다. 시민의 일상생활은 붕괴되고 생업은 막대한 지장을 받았다. 학교는 장기간 휴업 중에 있다. 집단과 계층 별로 고충의 분포는 다를 수 있지만 전반적 고통은 부정할 수 없다. 미증유의 상황에서 개인이 기대할 곳은 정부이다. 시민이 팬데믹의 고통을 완화하는 정부의 방역정책이 성공한 것으로 평가한다면 정부신뢰가 상승하고 국가에 대한 자긍심은 상승할 것이다.
모든 나라에 공통적으로 엄습한 코로나19 팬데믹 하에서 방역정책의 성공과 실패는 다른 어느 정책보다도 국민적 자긍심에 영향을 준다. 또한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역시 방역정책의 성패에 달려 있다. 방역정책의 성공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불가능하다. 방역수칙규제는 경제활동을 억제하고 시민적 자유를 제약하기 때문에 시민의 지속적인 자발적 협조를 기대하기는 곤란하다. 이제 불과 이년에 불과한 팬데믹이 장기화되면 민주주의에서 집권당이 재집권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각국은 감염차단과 치유를 위해 의료서비스와 물품의 공급에서 자국우선주의를 취할 것이다. 자국우선주의는 국제적 공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현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죄수의 딜레마”이라는 최악으로 전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