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3일 한불(韓佛)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고, 한국수력원자력(KHNP)과 Orano(프랑스 국영 핵연료 전주기 기업) 간 원전 연료 전주기 포괄 협력 MOU가 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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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위기와 2030년의 경고 ― 미국의 제약, 일본의 선례, 한불 협력의 현실적 로드맵 ― |
| 2026년 4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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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장세종연구소 부소장 | softpower@sej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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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3일 한불(韓佛)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고, 한국수력원자력(KHNP)과 Orano(프랑스 국영 핵연료 전주기 기업) 간 원전 연료 전주기 포괄 협력 MOU가 체결되었다.1)
다만 이 MOU는 주로 신규 원전 건설과 핵연료 공급 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는 아직 핵심 의제로 다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한불 간 원자력 협력의 제도적 틀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후단 핵연료주기(사용후핵연료의 저장·재처리·최종처분 등 원자로 사용 이후의 모든 핵연료 관리 과정) 협력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정치적 계기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은 그 가능성과 조건을 분석하고 현실적인 정책 로드맵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오랫동안 ‘언젠가 풀어야 할 장기 과제’처럼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의 2023년 재산정 결과는 그러한 여유로운 인식을 무너뜨린다. 이에 따르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 시점은 한빛원전 2030년, 한울원전 2031년, 고리원전 2032년 순으로 도래할 전망이며, 이는 2021년 말 전망보다 1~2년 앞당겨진 수치다.2) 저장공간이 실제 한계에 도달하면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해당 원전의 운영이 중단될 수 있어, 이는 단순한 폐기물 관리 문제가 아니라 전력정책과 에너지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현안이 된다.
이 문제를 둘러싼 국내 논쟁은 흔히 두 방향으로 갈라진다. 하나는 최종처분 중심 접근, 즉 사용후핵연료는 결국 방사성폐기물이므로 중간저장과 영구처분 체계 구축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연료주기적 접근, 즉 사용후핵연료를 전량 ‘폐기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재처리와 재활용 가능성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두 입장은 실제 정책에서 경쟁 관계가 아니라 시간축이 다른 보완 관계에 가깝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는 단순한 기술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한미원자력협정, 국제 비확산 규범, 미국의 사전동의권, 프랑스와 일본의 선행사례, 국내 원전 지역의 수용성, 그리고 장기 에너지 안보의 문제를 동시에 포함한다. 이 글은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위기의 심각성, 미국과 프랑스의 재처리 역량 비교, 일본-프랑스 협력의 시사점, 그리고 한불 협력의 현실적 로드맵을 중심으로 정책적 선택지를 검토한다. -
2026년 현재 한국은 26기의 상업용 원자로를 운영하는 세계 5위권의 원전 강국이다.3)
그러나 원전 운영과 함께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40년 이상 누적된 국가적 난제다. 모든 사용후핵연료가 현재 각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에 보관 중이며,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은 전혀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세계 원전 운영 상위 10개국 중 처분장 부지 선정에 착수조차 하지 못한 국가는 한국과 인도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가장 중요한 국내 대응은 2025년 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2025년 3월 25일 공포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하 ‘고준위특별법’)이다.4) 동법은 중간저장시설을 2050년 이전에, 처분시설을 2060년 이전에 운영 개시할 것을 목표로 규정하고, 국무총리 소속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이하 ‘고준위위원회’) 설치와 부지선정 절차를 법제화했다. 목표 시점이 이처럼 장기로 설정된 데는 기술적 요인과 사회·정치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기술적으로는 고준위 처분장 건설이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지질·토목 프로젝트의 하나로서, 부지선정 단계의 지질조사와 안전성 평가에만 통상 10~15년이 소요되고 이후 설계·시공·시험운영까지 합산하면 30~40년이 필요하다. 세계에서 처분장 운영에 가장 근접한 핀란드의 온칼로(Onkalo)도 1983년 연구 시작 이후 40년이 넘도록 완공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더 결정적인 것은 사회·정치적 제약이다. 한국은 2003~2005년 부안 방폐장 사태에서 지역 주민의 격렬한 반발로 극심한 갈등을 겪었고, 이후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 확보에도 수십 년이 소요된 전례가 있다. 고준위 처분장은 이보다 훨씬 강한 지역 반발이 예상되므로, 입법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시한을 설정한 결과가 2050~2060년이라는 목표 연도로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목표치는 기술적 소요 시간의 반영인 동시에, 부지선정을 둘러싼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정치적 완충의 산물이기도 하다. 2026년 2월 동 위원회 제1회 회의가 개최되었고, 2026년 4월 국회 추천위원 위촉이 완료되어 9인 체제가 갖추어졌다.5)
그러나 특별법의 제정이 곧 문제 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법의 목표 시점(2050~2060년)과 현장 포화 시점(2030~2032년) 사이에는 20~30년의 시간 간극이 존재한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한 단기 브리지 조치—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사용후핵연료를 충분히 냉각한 후 금속 용기에 밀봉해 콘크리트 구조물에 보관하는 방식으로, 물 대신 공기나 불활성 가스로 냉각·차폐함) 확대 및 관련 규제 정비—가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한국의 재처리 역량 확보는 현행 한미원자력협정(2015년 체결, 2035년까지 유효)상 미국의 서면 합의가 있어야만 가능한 구조적 제약 속에 있다.6) 이른바 ‘사전동의권(prior consent right)’이란,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이전받은 핵물질 또는 관련 기술을 제3국에 이전하거나 재처리·농축할 경우 반드시 미국의 서면 동의를 먼저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다. 이는 한국의 모든 원전 연료에 사실상 적용되므로, 프랑스와의 협력 추진에서도 미국의 동의는 법적 선결 요건이다.
다만 2025년 한미정상회담 팩트시트에서 미국이 “한국의 평화적 목적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질 과정을 지지한다”고 명시함으로써,7) 향후 후속 협의와 협정 개정을 위한 정치적 공간이 부분적으로 마련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재처리 기술 측면에서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은 파이로프로세싱(전기화학적 건식 재처리 기술)을 연구하고 있으나,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플루토늄을 별도 분리하지 않아 핵비확산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재 연간 0.2톤 처리 수준의 시험시설(ACPF) 단계에 머물러 있다.8) 따라서 중단기적으로 한국은 해외 위탁재처리를 포함한 다양한 옵션을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1. 미국: 승인권자이지 산업 파트너는 아니다
미국은 국제 핵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규범 설정자이자 한국 원자력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다. 그러나 산업적 관점에서 보면, 미국은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직접 해결해줄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명시하듯 현재 미국 내에는 운영 중인 상업적 재처리 시설이 없다.9) 미국의 상업 재처리는 1977년 카터 행정부의 핵비확산 정책 전환으로 사실상 중단되었으며, 1981년 레이건 행정부가 이를 철회했어도 경제성 문제로 상업시설은 재가동되지 않았다.
물론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사바나강 부지(SRS)의 H-Canyon은 현재 미국에서 가동 중인 유일한 방사선 차폐 화학분리시설이다. 그러나 이것은 방위·연구·연방자산 관리 목적의 제한적 처리 능력이지, 국제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 상업 서비스가 아니다.10) 트럼프 2기 행정부는 2025년 5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재활용 평가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으나, 이것이 곧바로 상업적 재처리 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11)
요컨대 미국의 중요성은 역량보다 권한에 있다.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중 상당수는 미국 의무부담(U.S.-obligated) 성격을 가진다. 이는 해당 핵연료의 원료인 우라늄이 미국산이거나 미국 기술로 농축·가공된 경우, 소유권은 한국에 있더라도 그 사용후핵연료를 제3국에 이전하거나 재처리하려면 반드시 미국의 사전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제3국 이전이나 재처리 문제는 한미원자력협정의 적용을 받는다. 한국이 프랑스와 협력을 추진하더라도 미국과의 사전협의는 피할 수 없다. 이는 정치적 현실인 동시에 법적 현실이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지만, 산업적 실행은 맡기기 어려운’ 파트너로 정확히 위치 설정해야 한다.
2. 프랑스: 서방 유일의 실질적 후단 핵연료주기 파트너
프랑스의 강점은 후단 핵연료주기 전반을 하나의 산업체인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Orano가 운영하는 라아그(La Hague) 재처리 시설은 허가 용량 기준 연간 1,700 tHM(tHM: tonnes of Heavy Metal, 중금속 환산 톤)의 사용후핵연료 처리 능력을 갖춘 세계 최대 규모의 상업용 재처리 거점이며, 2024년까지 누계 36,000톤 이상을 처리해 왔다.12) PUREX(Plutonium Uranium Redox EXtraction, 플루토늄·우라늄 용매추출 공정)를 통해 사용후핵연료의 약 96%를 재활용 가능한 물질로 회수하며(우라늄 약 95%, 플루토늄 약 1%), 회수된 플루토늄은 Marcoule13) 소재 Melox (허가 용량 195 tHM/년)에서 MOX (Mixed Oxide, 혼합산화물) 연료로 제조·재사용된다.14)
프랑스가 재처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순한 경제성 논리를 넘어서는 전략적 의미를 담고 있다.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프랑스는 우라늄의 최대 효율화를 국가전략으로 채택했고, 재처리를 통해 전력 생산의 약 25%를 재활용 핵물질에서 얻고 있다. 2024년 발표된 ‘Aval du Futur (미래의 다운스트림)’ 프로그램은 2040~2050년까지 La Hague에 UP4(현재 가동 중인 UP2-800·UP3를 대체할 차세대 재처리 플랜트) 신규 건설, Marcoule에 Melox 2 신규 건설을 포함하는 수십억 유로 규모의 투자 계획을 포함하고 있어,15) 프랑스가 재처리를 단기적 사업이 아니라 21세기 후반을 내다보는 국가 핵에너지 전략의 핵심 축으로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한국이 프랑스 협력을 논할 때 반드시 직시해야 할 법적 한계가 있다. 프랑스 환경법 L.542-2조는 외국산 방사성폐기물의 프랑스 내 영구저장을 명시적으로 금지한다.16) 따라서 프랑스는 한국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할 수 있어도, 한국의 최종 방폐물 문제를 대신 떠안을 수는 없다. 처리 후 최종 폐기물은 반드시 한국으로 반환되어야 하며, 이는 협력 설계 단계에서 폐기물 반환 조건·회수물질 귀속·운송 및 안전조치 방식을 사전에 정밀하게 규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
일본과 프랑스의 협력은 한국이 참고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선행사례다. 일본은 1977~1978년 미국의 양해를 구하면서 프랑스·영국과 사용후핵연료 위탁재처리 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자국의 롯카쇼(六ヶ所村) 재처리 공장이 완성될 때까지 수십 년간 프랑스에 위탁재처리를 의뢰해 기술과 경험을 축적해 왔다. La Hague 기술을 모델로 1993년 착공된 롯카쇼 재처리 공장은 당초 1997년 준공을 목표로 했으나 27차례 이상 완공이 연기되면서 현재 2027 회계연도 하반기 초기 운전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장기간 지연된 데는 다섯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첫째, 기술적 결함이다. 재처리 본체는 프랑스 기술을 도입했으나 JNFL이 자체 설계한 유리고화(vitrification) 설비—고준위 액체 폐기물을 유리 형태로 굳히는 최종 처리 공정—에서 백금족 원소 침전, 교반 막대 변형, 내벽 타일 탈락 등 구조적 결함이 반복됐다. 기술 이전이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진 결과다. 둘째, 플루토늄 수요의 붕괴다. 재처리로 분리된 플루토늄의 핵심 소비처로 설계된 고속증식로 문주(もんじゅ)가 1995년 나트륨 누출 사고와 안전 관리 부실로 2016년 폐로되면서 플루토늄 수요 기반이 사실상 붕괴했고, 분리된 플루토늄만 쌓이는 결과를 낳았다. 셋째,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강화된 안전 규제다. 2011년 사고 후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NRA)가 도입한 신 규제기준에 따라 내진 설계 강화, 중대사고 대책 설비 추가 등 대규모 개수 공사가 반복적으로 요구됐다. 넷째, 독립적 감시의 부재다. JNFL의 주요 주주가 동시에 시공사이기도 한 이해충돌 구조로 인해 비용 증가를 억제할 내부 통제가 작동하지 않았다. 다섯째, 지역 정치의 고착이다. 롯카쇼 마을이 수십 년간 시설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면서 정책 변경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졌다.17)
일불(日佛) 협력은 최근에도 심화되고 있다. 2023년 5월 일본전기사업연합회((FEPC: Federation of Electric Power Companies of Japan)와 Orano는 사용후 MOX 연료 재처리 실증 연구개발에 협력하기로 합의했으며, 당초 약 200톤으로 계획된 위탁재처리 물량은 2025년 2월 400톤(사용후 MOX 연료 20톤 포함)으로 증량되었다.18) 이에 기반해 2026년 1월 20일 Orano와 NuRO(Nuclear Reprocessing Organization of Japan, 일본 핵연료재처리·폐로추진기구)는 간사이전력 원전 사용후연료 재처리의 주요 계약을 체결했고, 2026년 3월 25일 양국 정부 간 교환각서가 이를 공식화했다.19) 나아가 2026년 4월 1일 일불 2+2 외교·국방장관 회의에서는 고속로(fast reactor: 고속 중성자를 이용해 플루토늄 등을 연료로 소각·활용하는 차세대 원자로) 개발·핵연료주기 촉진·핵융합 에너지 협력을 담은 공동선언이 채택되어, 일불 핵연료주기 협력이 단순 위탁재처리를 넘어 차세대 원자력 기술 공동개발로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일본 사례가 한국에 주는 핵심 교훈은 다섯 가지다. 첫째, 미국의 사전동의가 필수 전제조건이다. 일본은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재처리와 20% 미만 농축에 대한 포괄적 장기동의(long-term consent)를 확보했기에 프랑스 위탁재처리를 추진할 수 있었다. 한국도 이와 유사한 권한 확보가 선결과제다. 둘째, ‘위탁재처리 → 기술협력 → 자국 시설 구축’이라는 단계적 로드맵의 실효성이다. 일본은 약 7,100톤의 사용후핵연료를 수십 년간 프랑스·영국에 위탁재처리하면서 기술을 습득하고 국내 시설 건설의 기반을 마련했다. 셋째, 기술 이전의 완전성 확보다. 일본이 롯카쇼에서 경험한 유리고화 설비의 반복적 결함은 핵심 공정만 이전받고 주변 설비는 자체 설계하는 불완전한 기술 이전의 위험을 잘 보여준다. 한국은 프랑스와의 기술 협력 계약에 전 공정에 걸친 완전한 기술 이전, 설계 문서 제공, 한국 기술진의 실제 공정 참여를 명시해야 한다. 넷째, 플루토늄 수요와 공급의 사전 균형이다. 일본은 재처리 시설을 먼저 짓고 나서 플루토늄 소비처인 고속증식로가 사실상 포기되는 역순을 밟아 분리 플루토늄 잉여 문제를 자초했다. 한국은 재처리 시설 건설 이전에 분리된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구체적인 활용 계획을 먼저 확정해야 한다. 다섯째, 정부 간 법적 프레임워크—2026년 일불 교환각서처럼—가 기업 간 계약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동시에 일본 사례는 네 가지 경고도 제공한다. 첫째, 분리 플루토늄의 급격한 누적이다. 2024년 말 기준 일본의 분리 플루토늄은 약 44.4톤(국내 8.6톤, 프랑스·영국 보관분 35.8톤)에 달하며, 이는 이론상 핵탄두 약 5,500기에 해당하는 양으로 국제사회의 비확산 우려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둘째, 비용의 천문학적 증가다. 롯카쇼의 건설비는 당초 예산 대비 약 5배, 40년 운영·해체 비용을 포함한 총비용은 15조 6,000억 엔(약 1,040억 달러)으로 당초 예상을 크게 초과했다. 셋째, 독립적 거버넌스의 부재다. 사업 주체와 시공사가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면 비용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넷째, 지역 사회 고착의 위험이다. 시설이 들어선 지역이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이후 정책 변경이 매우 어려워진다.20) 이러한 경고들은21) 한국이 일본식 모델을 참고하되 ‘재고 최소화·국제감시 강화·실수요 연계’라는 조건을 강하게 붙여야 함을 시사한다. -
1. 협력의 기본 원칙: ‘만능해법’이 아닌 ‘전략적 브리지’
한국이 프랑스와의 협력을 추진할 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기대는 ‘프랑스가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통째로 해결해줄 것’이라는 인식이다. 그것은 프랑스 법 체계에도 맞지 않고 국제정치 현실에도 맞지 않는다. 대신 한국은 프랑스를 세 가지 목적의 파트너로 설정해야 한다. 첫째, 단기적으로 저장 포화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처리·실증 옵션을 확보하는 것. 둘째, 중기적으로 재활용 연료와 후단산업 제도(재처리·재활용 시설 및 관련 법·운영 체계)에 대한 실제 경험을 축적하는 것. 셋째, 장기적으로 한국 자체 후단정책(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저장·처분 방향을 결정하는 국가 정책) 설계를 위한 비교모델을 확보하는 것이다.
한불 협력은 단순 기술도입이 아니라 상호교환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 프랑스는 Aval du Futur 투자 회수를 위해 안정적인 장기 고객 기반을 필요로 한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건설·운영 역량, 방산·조선·디지털 공정관리, 제3국 원전 시장 공동진출이라는 카드를 갖고 있다. 이를 처리 서비스 구매에만 국한하지 않고, 장기 물량 오프테이크(offtake: 장기 구매 약정)·산업협력·공동연구를 묶는 포괄 패키지로 제시할수록 협상 여지는 커진다.
2. 단계별 로드맵
단기(2026~2027년)에는 한불 공동 타당성조사 착수, 인력교류, 규제대화 제도화, 그리고 한미 고위급 협의 병행이 핵심 과제다. 한국이 먼저 프랑스와 포괄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나중에 미국을 설득하려는 접근은 비확산 논란과 동맹 내 불신을 동시에 초래할 수 있다. 반드시 한불 실무 타당성조사와 한미 비공개 정책협의를 나란히 진행하는 ‘병행 조율’ 구조가 필요하다.
중기(2027~2030년)에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한 포괄적 사전동의 확보를 전제로, La Hague 위탁재처리 파일럿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폐기물 반환 시설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에 제시해야 할 핵심 논리는 명확하다. 이것은 ‘더 많은 플루토늄 분리 능력’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저장 포화 압박을 완화하고 책임 있는 파트너와 투명하게 협력함으로써 ‘더 나은 관리와 더 강한 통제’를 실현하는 방안이라는 점이다.
장기(2030~2040년)에는 프랑스 UP4 신규 시설에 한국 전문인력을 파견하고 파이로프로세싱 공동연구를 본격화하면서, 한국형 후단정책(중간저장·처분·재활용 여부, 국내 시설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재설계하는 단계다. 단, 국내 재처리시설 건설은 저장 부족의 단기 처방이 될 수 없으며, 국내 저장·처분 정책의 충분한 진전과 국제감시 강화가 선행되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3. 정책 제언
이상의 분석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정책 제언을 제시한다.
첫째, 정부와 국회는 재처리 찬반 논쟁 이전에 고준위특별법의 신속한 이행과 독립적 관리체계 정비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저장 포화 대응을 위한 건식저장 확대와 특별법 이행의 가속화는 프랑스와의 어떤 협력보다도 앞서 진행되어야 할 국내 조치다.
둘째, 정부는 한불 협력을 정상 선언 수준에 머물게 하지 않고, 2년 이내에 공동 타당성조사 착수, 인력교류 프로그램, 규제대화 채널을 제도화해야 한다. 특히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원회(이하 HLBC: Korea-U.S. High Level Bilateral Commission on Civil Nuclear Cooperation)를 조속히 재가동하여 대미 사전협의를 병행 추진해야 한다.
셋째, 국가안보실(NSC) 주도로 외교부·산업부·과기부·국방부·원안위·한수원·KAERI가 참여하는 범정부 전략 TF를 설치하여 대미 협상과 대불 협상을 하나의 전략지도로 통합 관리해야 한다. 외교·산업·안보 트랙이 분리될 경우 메시지 불일치와 정책 과속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넷째, 미국 설득 논리는 ‘재처리 필요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저장 포화 관리와 국제적 통제 강화, 책임 있는 협력국과의 제한적·단계적 실증이라는 프레임을 택해야 한다.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재처리’라는 단어 자체보다 통제되지 않는 플루토늄 분리 능력(재처리를 통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능력)과 비확산 상징성임을 인식해야 한다.
다섯째, 한국은 일본 사례의 장점은 취하되 리스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플루토늄 재고 상한, IAEA 및 미국 상주 검증, 폐기물 반환의 명확한 계약화를 협력의 기본 조건으로 설정해야 한다. 프랑스를 단순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라 한국 후단정책 역량 구축의 전략적 파트너로 대우하는 중장기적 시각이 필요하다.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더 이상 ‘언젠가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이미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다. 2030년대 초반 저장 포화 위기, 고준위특별법 시행의 초기 국면, 원전 확대 기조, 그리고 한불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이라는 복합적 환경 속에서, 한국에 주어진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은 2026년에서 2027년 사이에 실질적인 초석을 놓지 못하면 빠르게 좁아질 수 있다. 이 창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국내 제도 기반의 성실한 이행, 미국과의 치밀한 외교적 조율, 그리고 프랑스와의 호혜적 패키지 협력이라는 세 축을 동시에 설계하는 국가 전략적 역량이 요구된다.
Ⅰ. 왜 지금 재처리 문제를 다시 논해야 하는가
Ⅱ.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문제와 정부·국회의 대응
Ⅲ. 미국과 프랑스의 재처리 역량: 구조적 비교
Ⅳ. 일본-프랑스 협력 사례와 한국에 대한 시사점
Ⅴ. 한불 협력의 방향과 정책 제언
1) 한국수력원자력·Orano 간 「원전 연료 전주기 포괄 협력 MOU」 및 한국수력원자력·Framatome 간 「핵연료 기술 협력 MOU」는 2026년 4월 3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방한 계기에 체결되었다. 청와대, “한-프랑스 정상회담 결과 관련 강유정 수석대변인 서면브리핑,”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6.4.3.
2) 산업통상자원부,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시점 1~2년 단축,” 2023년 2월 10일. https://www.motie.go.kr/kor/article/ATCL8764a1224/155118306/view
3) World Nuclear Association, “South Korea — World Nuclear Outlook Report,” updated 19 January 2026, https://world-nuclear.org/our-association/publications/world-nuclear-outlook-report/south-korea---world-nuclear-outlook-report (검색일: 2026.04.01.)
4)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법률 제20843호, 2025년 3월 25일 공포, 2025년 9월 26일 시행. https://www.law.go.kr. 국회 본회의 통과는 2025년 2월 27일 찬성 190표.
5)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제1회 고준위위원회 개최, 회의운영 규칙 제정 및 부지적합성조사계획 등 현안 논의」, 2026년 2월 23일;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 국회 추천위원 위촉으로 9인 성원 완료」, 2026년 4월 7일. 핀란드 온칼로(Onkalo) 처분장은 1983년 부지 조사 착수 이후 2020년대 후반 사용후핵연료 반입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착수부터 운영까지 40년 이상이 소요된다. Posiva Oy, "Final Disposal," https://www.posiva.fi/en/index/finaldiposal.html; OECD/NEA, Radioactive Waste Management and Decommissioning: Strategic and Policy Issues (2024).
6) Agreement for Cooperation Concerning Peaceful Uses of Nuclear Energy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Republic of Korea (2015), 제11조. https://fissilematerials.org/library/kr123.pdf
7) 2025년 한미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2025년 6월). 백악관 및 대한민국 대통령실 공식 발표. 원문은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참조.
8) KINAC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웹진, 「파이로프로세싱과 한미 원자력협정」, 2015년 10월. 전해환원 시험시설(ACPF) 연간 0.2톤 처리 역량. 미국 아이다호국립연구원(INL)과의 공동연구는 202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9) U.S. Nuclear Regulatory Commission, "Reprocessing," https://www.nrc.gov/materials/reprocessing; "Fuel reprocessing (recycling)," https://www.nrc.gov/reading-rm/basic-ref/glossary/fuel-reprocessing-recycling
10) Savannah River Site, Environment Bulletin, March 5, 2026. https://www.srs.gov
11) Jasper Boers, "Closing the Loop: The Power and Promise of Nuclear Fuel Recycling," American Affairs Journal, March 2, 2026.
12) Orano, Annual Activity Report 2024, p. 40.
13) Marcoule은 프랑스 남부 가르(Gard) 주에 위치한 지역 이름으로, 론(Rhône) 강변에 있다. 1950년대부터 프랑스 핵 프로그램의 핵심 거점으로 개발된 곳으로, 현재 Orano의 Melox MOX 연료 제조 공장과 CEA(프랑스 원자력·대체에너지청) 연구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14) Orano, Annual Activity Report 2024, p. 40; Orano 공개 자료. https://www.orano.group/en/orano-across-the-world/france.
15) Orano, "Aval du Futur," https://www.orano.group/avaldufutur/fr; Orano 보도자료, 2026년 3월 12일.
16) Code de l'environnement (France), article L.542-2. https://www.legifrance.gouv.fr.
17) IPFM(International Panel on Fissile Materials, 핵분열성 물질 국제패널)은 프린스턴대학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독립 핵비확산 연구 네트워크로, 플루토늄·고농축우라늄 등 핵분열성 물질의 생산·재고·관리 현황을 추적하고 정책 분석을 발표한다. IPFM Blog, "New provisional operation plan for Rokkasho," February 11, 2026; JNFL(Japan Nuclear Fuel Limited, 일본원연주식회사), “Provisional Operation Plans for Rokkasho Reprocessing Plant and MOX Fuel Fabrication Plant (Possible Annual Quantities of Reprocessing and Plutonium for MOX Fuel Fabrication),” 2026년 1월 28일, https://www.jnfl.co.jp/en/release/press/2025/detail/20260128-1.html (검색일: 2026.4.1.).
18) World Nuclear News, "French-Japanese MOX fuel recycling studies expanded," February 13, 2025; NEI Magazine, February 17, 2025.
19) Orano, "Orano signs an agreement with Japanese customer for the reprocessing of spent fuel to advance bilateral demonstration studies on the reprocessing of spent MOX fuel," April 2, 2026; Nuclear Engineering International, April 8, 2026.
20) Tadahiro Katsuta, "Nuclear power’s role in Japan is fading. The myths of reactor safety and energy needs can’t change that reality,"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December 11, 2025.
21) IPFM(앞의 각주 참조) Blog, January 2026 업데이트.
※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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