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은 시 주석의 올해 첫 해외 순방이자 2019년 이후 7년 만의 방북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이번 방문은 변화한 국제정세 속에서 북중관계 자체의 역할과 협력 방식을 새롭게 설정하는 성격이 강했음을 시사한다.
|
북중 정상회담 평가와 함의: 시진핑 주석의 7년 만의 평양 방문과 전략협력의 확대 |
| 2026년 6월 12일 |
최은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 ej0717@sejong.org
| 왜 지금 시진핑 주석의 평양 방문인가
2026년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은 시 주석의 올해 첫 해외 순방이자 2019년 이후 7년 만의 방북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이번 방문은 2025년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중에 대한 답방 성격을 갖는 동시에, 1961년 체결된 '조중우호, 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 65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도 북중 관계의 전략적 의미를 재확인하는 계기였다.
또한 이번 방북은 미중 정상회담과 중러 정상회담 직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도 주목되었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백악관은 양국 정상이 북한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중국 외교부는 비핵화를 직접 언급하기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기존 입장의 연속성과 자국의 건설적 역할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 이어 열린 중러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이 강조되었으며, 대북 제재와 압박에 반대한다는 입장이 재확인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시진핑 주석의 방북은 중국이 북미대화의 중재자 역할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북중러 협력 구도를 강화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그러나 방북 이후 나온 북중 양측의 보도는 이번 정상회담의 중심이 북미대화 중재나 비핵화 의제에 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보도문에서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이나 비핵화, 북미관계 개선과 관련한 구체적 언급 대신 전략적 협력, 사회주의 발전, 발전전략의 연계, 접경지역 협력, 인적교류, 다자적 협조와 같은 표현이 전면에 등장하였다. 이는 이번 방북이 북미관계 중재 국면이라기보다, 변화한 국제정세 속에서 북중관계 자체의 역할과 협력 방식을 새롭게 설정하는 성격이 강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는 2019년 이후 달라진 국제정세와 북한의 전략적 지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협력 확대를 통해 대외전략의 선택지를 넓혔고,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 심화, 동북지역 발전 과제, 한반도 안정, 북러관계 진전이 동북아 질서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새로운 조건에 맞게 조정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해, 이번 시진핑 주석의 방북이 이루어진 배경을 살펴보고, 북중 정상회담에서 제시된 주요 협력 의제를 검토한 뒤, 그것이 북중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갖는 함의를 분석하고자 한다.
| 2019년과 2026년: 무엇이 달라졌는가
2019년 시진핑 주석의 방북은 북미 정상회담 and 남북 정상외교가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북중 정상외교의 핵심은 전통친선의 복원, 전략적 의사소통의 강화,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이었다. 2019년 시진핑 주석의 로동신문 기고문과 정상회담 관련 보도문에서도 중국은 '조선반도문제의 정치적 해결', '대화와 협상', '조선측의 합리적인 관심사 해결'을 강조하였다. 이는 당시 북중관계가 한반도 정세 관리와 정치적 해결 과정에 대한 협조라는 맥락에 놓여 있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2026년 보도문에서는 '전략적 협력', '전략적 협조'와 같은 표현이 전면에 등장하였다. 핵심 변화는 협력 분야의 단순한 확대가 아니라, 북중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이 한반도 문제 해결과 정세 관리에서 사회주의 발전협력과 지역질서 대응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데 있다. 2019년에는 북미대화와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전략적 의사소통이 더 큰 맥락을 이루었다면, 2026년에는 '주권·안전·발전이익 수호', '패권주의 반대', '다극화'와 같은 표현이 두드러지면서 북중관계가 변화한 국제질서에 대한 공동 대응의 맥락에서 설명되고 있다.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2019년에는 수교 70주년, 항미원조, 선대 지도자들의 유산, 전통친선 등 역사적 서사가 부각되었다. 2026년에도 전통친선과 항미원조의 기억은 여전히 중요한 요소로 제시되지만, 사회주의, 현대화, 변화된 국제정세에 대한 대응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북중관계가 과거의 공동투쟁에 대한 경험에만 기대는 관계가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공동 발전과 변화한 국제정세 속의 전략적 협력을 함께 강조하는 관계로 설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2026년 방북 일정에서도 확인된다. 2019년에는 시진핑 주석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를 방문해 정치국 성원들과 기념촬영을 하며 당 대당 친선을 과시했다. 반면 2026년에는 조선로동당 중앙간부학교를 방문하여 당 정책강의를 참관하였고 당 간부 양성 체계에 대한 의견 교환 또한 이루어졌다. 이는 북중간 당대당 관계가 친선의 차원을 넘어 집권당의 운영 경험, 간부 양성, 사회주의 통치역량의 교류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시진핑 주석의 4대 제안과 북중관계의 새로운 방향
중국 측 보도에서 제시된 시진핑 주석의 4대 제안은 북중관계의 향후 방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들이다. 제안의 내용은 크게 정치·안보 협력, 발전전략과 연계한 실무 협력, 사회문화 교류, 국제문제에 관한 공조로 나눌 수 있다. 이는 의례적 표현에 그치지 않고, 북중관계를 정상 간 친분이나 전통친선의 차원을 넘어 보다 포괄적인 전략적 협력 관계로 발전시키려는 구상으로 파악된다.
첫 번째 제안은 고위급 교류와 정치적 상호신뢰의 기반 조성이다. 이는 당 대당 교류와 국가기관 간 협력, 전략적 조율을 통해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협력 체계로 발전시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관련하여 이번 정상 회담의 참석자 구성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측에서는 차이치 당 중앙판공청 주임, 왕이 외교부장, 류젠차오 대외연락부장, 장팡여우 정책연구실 주임과 함께 둥쥔 국방부장, 정산제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왕원타오 상무부장이 참석하였다. 북한 측에서는 김재룡·리일환·김성남 등 당 간부와 최선희 외무상, 노광철 국방상, 김덕훈 내각 제1부총리가 배석하였다.
2019년에도 중국 측 수행단에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상무부 책임자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경제·발전협력 분야 인사의 참석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북한 측에서 배석한 김덕훈 내각 제1부총리는 당 경제담당 비서와 내각 총리를 역임한 경제정책 전반의 경험을 갖춘 인물로, 현재는 외교위원회 부위원장을 겸직하며 대외경제협력을 총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2019년 당시 배석했던 박봉주 조선노동당 부위원장 겸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 수행했던 역할에 상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발전전략 연계와 접경지역 협력 등 경제협력 의제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이 이 분야의 경험과 역할을 갖춘 인사를 배석시킨 것은 경제협력 의제를 중요하게 다루었음을 참석자 구성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이번 회담에서는 중국 국방부장과 북한 국방상이 모두 참석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군대 간 교류는 2019년에도 언급된 바 있으나, 당시에는 중국의 중앙군사위원회 정치사업부 주임과 북한의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 배석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에는 양국의 국방 담당 장관이 직접 회담에 참여하였다. 이는 변화된 안보환경 속에서 북중 간 군사·안보 현안에 대한 전략적 소통과 조율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러 군사협력의 확대와 동북아 안보환경의 변화를 고려하면 향후 북중 간 군사 분야 교류와 협의가 일정 수준 구체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만으로는 그 구체적 범위와 수준을 단정하기 어렵다.
두 번째 제안은 양국 발전전략의 연계와 실무협력 수준의 제고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경제무역, 농업, 건설, 과학기술, 보건의료 등 생산·산업·생활 기반과 관련된 협력 의제가 발전전략 연계라는 틀 속에서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지원이나 교역의 확대가 아니라, 양국의 국가발전 전략과 정책 우선순위를 서로 고려하면서 협력 의제와 범위를 함께 설정해 나가려는 구상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중협력을 동북지역 발전, 주변국 외교, 사회주의 현대화 전략과 연결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고, 북한 입장에서는 제9차 당대회 이후 강조하고 있는 지방발전, 과학기술 발전, 보건의료 개선, 산업 기반 확충 등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대외 협력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결국 주목할 부분은 북중 경제협력의 단순한 양적 확대보다, 기존 협력 의제들이 양국의 국가발전 전략 속에서 재해석되면서 협력의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제안은 사회문화 분야 협력의 확대이다. 청년, 교육, 문화예술, 체육, 언론, 지방 교류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중국 측은 이를 '우의 전승을 동력으로 삼고 민심상통(民心相通)의 유대를 더욱 긴밀히 하는' 차원에서 제시하였다. 이는 과거의 전통친선을 현재의 인적 교류와 사회문화 협력으로 이어가고, 북중관계의 사회적 기반을 넓히려는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 내 중국인민지원군 열사기념시설의 관리 강화도 함께 언급되었다. 또한 관광은 인적 왕래 회복과 상호 인식의 확대라는 사회문화적 기능을 갖는 동시에, 접경지역 활성화와 북한의 외화 수입, 지역 경제 회복과도 연결될 수 있는 복합적 협력 분야이다. 따라서 청년, 교육, 문화예술, 체육, 언론, 지방교류와 관광은 양국이 공유해 온 역사적 유대를 현재의 인적 교류와 사회적 협력으로 이어가고, 북중관계의 지속성을 뒷받침하는 장치로 볼 수 있다.
네 번째 제안은 전략적 협력의 내실화이다. 중국 측은 '공평과 정의를 이념으로 견지하며 전략적 협력의 내실을 풍부하게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또한 아시아를 중·조를 비롯한 지역 국가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공동의 공간으로 규정하면서, 양국이 전략적 조율과 협력을 강화하고 각자의 주권·안보·발전 이익을 수호하며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함께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시진핑 주석의 로동신문 기고문에서 언급된 '다무(다자)적인 협조를 밀접히 하고 국제사회의 공평과 정의를 굳건히 수호해야 한다'는 표현과도 연결된다. 이는 북중관계를 한반도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국제 및 지역 차원의 협력과 연대 속에서 위치시키려는 시각을 보여준다. 2019년 북중 정상외교가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에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두었다면, 이번에는 지역의 평화와 발전, 전략적 조율, 국제사회의 공평과 정의와 같은 보다 넓은 의제가 함께 강조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귀국 후 조선중앙통신이 감사전문을 공개한 점도 눈길을 끈다. 감사전문에서 시 주석은 양측이 '일련의 중요한 공동인식'을 이룩했고, 북중관계가 '새로운 역사적 여정'에 들어섰다고 평가하였다. 정상회담 직후 중국 측 최고지도자가 별도의 후속 메시지를 통해 이번 회담의 의미를 재확인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새로운 역사적 여정에 들어'섰다는 표현은 이번 정상회담을 일회성 상징 이벤트가 아니라 향후 협력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중국 측의 입장이 담긴 것으로 읽힌다. 다만 이번 정상회담의 실제 의미는 접경 통상구 재개통, 인적교류 확대, 분야별 실무협력 등 후속 조치의 이행 여부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될 것이다.
| 접경지역 경제협력의 재가동과 협력 방식의 변화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접경 통상구의 전면 재개통이다. 통상구 재개통은 코로나19 이후 위축되었던 북중 교역·물류·관광·인적 왕래를 회복시키고, 접경지역 경제협력을 활성화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코로나19 이후 장기간 국경을 봉쇄했고, 이로 인해 북중 교역과 인적 왕래도 크게 위축되었다가 최근 점진적으로 회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접경 통상구, 국제 여객철도와 민항 항공 운항 재개, 인적 교류의 정상화가 협력 의제로 제시된 것은 북중 접경지역에서의 경제협력 재개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북중 접경에는 다수의 통상구와 교류 거점이 존재하며, 코로나19 이전에는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교역·물류·관광·인적 왕래가 이루어져 왔다. 단둥-신의주 지역은 북한 대중무역의 핵심 거점이며, 훈춘 원정리-나선 지역은 중국 동북지역의 동해 진출 구상과 북한 나선지역 개발을 연결하는 전략적 접경협력 공간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지안, 투먼, 창바이 등 다른 접경지역 역시 북중 교류의 주요 거점 역할을 해왔다. 제재 환경을 고려하면 대규모 인프라 투자나 본격적인 산업협력보다 통상구 운영 정상화, 검역·세관 협력, 물류 재개, 인적 왕래의 확대가 우선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이를 통해 무역 확대, 물류 회복, 관광 활성화, 지방경제 회복을 기대할 수 있고, 중국은 동북진흥 전략, 접경도시의 활성화, 접경경제권 확대와 연결할 수 있다. 따라서 통상구의 전면 재개통은 단순한 북중교역의 정상화가 아니라, 압록강·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접경지역 경제협력 활성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편, 현재까지 공개된 북중 양측의 보도 내용만으로는 두만강 출해 문제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주요 의제로 다루어졌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최근 중러 정상회담에서 두만강을 통한 출해 문제와 관련한 3자 협의의 지속을 언급하였고,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접경 통상구 재개통과 인적 교류 및 물류 연결 확대가 강조되었다는 점에서 두만강 나선 훈춘을 잇는 접경협력의 전략적 의미는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의 동북지역 발전 구상, 북한의 나선지역 활용, 러시아 극동개발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후속 조치와 실제 이행 양상을 통해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질 것이다.
이번 보도문에서 또 하나 주목할 표현은 '양방향 교류'이다. 향후 북중 협력은 중국의 대북 지원이나 관광객 송출에 한정되지 않고, 인적 교류, 경험 공유, 기술 교류 등 보다 폭넓은 상호 교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기업인, 지방정부 관계자들을 북한으로 보낼 수 있고, 북한은 경제관료, 지방행정 간부, 농업·건설·경공업 기술자, 과학기술 인력, 보건의료 전문가, 교육 관계자 등을 중국에 파견할 수 있다. 북한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지방발전정책, 관광 활성화, 보건·교육 개선, 과학기술 발전 전략을 고려하면, 이러한 교류는 북한의 정책 집행 역량을 보강하는 협력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
| 공동의 역사 기억과 전략관계의 상징적 강화
이번 방북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부분은 북한 내 중국인민지원군 열사기념시설에 관한 관리 강화를 언급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우의탑 방문은 2019년과 2026년에 모두 이루어졌지만, 2026년 보도에서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기념시설의 공동 보존관리와 혁명전통교양, 청소년 사상도덕교양이 명시적으로 강조되었다. 특히 중국 측이 '특색 있는 혁명 전통 교육, 청소년 사상 교육을 전개해 양국의 홍색 유전자와 전통 우의를 계승하겠다'고 밝힌 점은, 이 사안이 후속 세대에 대한 역사교육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한 추모를 넘어 기념시설 관리의 강화와 역사교육의 지속성이 함께 강조된다는 점에서, 이는 과거의 공동투쟁 경험을 현재의 북중관계와 연결하고 북중관계의 지속성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자산으로 활용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목되는 점은 북한이 이미 러시아와도 공동의 전투 경험을 전략관계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6년 4월 26일 북한은 해외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 준공식을 개최하였다. 쿠르스크 해방작전 종결 1주년에 맞춰 진행하였다고 밝힌 이 행사에는 러시아 국방상과 국가두마 의장이 참석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연설하였다. 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쿠르스크 작전을 '패권주의 세력의 전쟁 야망을 분쇄한 성전'으로 규정하고, 이 기념관에 '조로친선의 새 역사를 피로 새겼다'고 밝혔다. 중국인민지원군 열사기념시설이 항미원조의 역사적 기억을 양국 전통친선의 원천으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해외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은 현재 진행형의 군사협력과 실제 전투 경험을 전략관계의 상징적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나는 역사적 기억의 관리와 계승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적 기억의 상징화인 것이다.
이 차이는 북한의 대중 대러 관계가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중국과의 관계는 역사적 정통성과 전략적 협력을 기반으로 하면서 경제·지역협력까지 아우르는 다층적 관계이고, 러시아와의 관계는 현재 진행 중인 군사·안보 협력을 중심으로 전략적 결속을 강화하는 관계이다. 북한은 이 두 관계를 각각의 성격에 따라 활용함으로써 대외적 자율성과 외교적 선택지를 확대하고 있다. 공동의 역사 기억하고 전투 경험은 이러한 북한의 복합적인 대외전략을 뒷받침하는 정치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 한국에 대한 정책적 함의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북중관계의 변화뿐 아니라 한국의 대북정책과 동북아 전략 환경에 대해서도 몇 가지 중요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한국의 대북정책은 비핵화 목표와 평화공존 과제를 층위별로 구분해 병행 관리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장기적 목표로 견지하되, 달라진 현실 속에서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현재 북한은 핵무력을 헌법과 국가전략의 핵심 요소로 제도화하고 있으며,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비핵화나 북미대화 재개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다. 이러한 조건에서 비핵화 요구가 대북정책 담론의 전면을 지속적으로 차지할 경우, 위기관리, 접경지역 안정, 인도주의 협력과 같은 실질적인 평화공존 의제가 정책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은 단기·중기적으로는 핵물질 추가 생산 중단, 탄도미사일 기술 개발 억제 등 동결에 준하는 조치를 협상 의제로 설정하는 것을 현실적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군사적 충돌 방지, 위기관리, 인도주의, 보건, 재난 대응, 접경지역 안정, 인적교류와 같은 평화공존 의제는 별도의 정책 영역으로 유지해야 한다. 북중관계가 북한의 발전전략과 지역협력 의제를 중심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가 대북정책 논의의 중심을 계속 차지할 경우, 북중·북러 협력이 만들어내는 지역질서의 변화와 북한의 대외전략 조정을 충분히 살피고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둘째, 북중협력의 질적 변화에 대응해 한국도 실무형·생활형 협력 의제를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중 양측은 사회주의를 양국관계를 설명하는 공통의 지향으로 부각하였고, 당 간 교류, 청년·교육 교류, 역사 기억의 계승을 함께 강조하였다. 이는 북한의 대외 인식과 체제 유지 담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남북 간 가치와 인식의 거리감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이 이러한 흐름을 직접 차단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은 이념적 경쟁에 머물기보다, 남북 주민 모두에게 실질적 이익을 제공할 수 있는 접촉면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다만 협력의 실질적 이익은 단순히 수익이나 투자 효과로 환산되는 경제적 이익에 한정되지 않는다. 감염병, 자연재해, 기후위기, 산림·수자원 관리, 농업 피해, 해양·접경지역 안전 등은 남북 모두에게 공동의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영역이다. 이러한 분야에서의 협력은 정치적 상징성보다 주민 생활의 안정과 위험 감소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 접근이 가능하다. 보건의료, 재난 대응, 농업기술, 기후·환경 협력, 지방행정, 관광 운영, 직업교육 등은 남북 간 사회적 거리 확대를 완화하면서도 상호 이익을 축적할 수 있는 실무형 협력 의제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접경지역 경제협력을 동북아 다자협력의 관점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북중 접경 지역에서의 통상구 재개통과 압록강 두만강 유역의 교류 회복은 우선 북중 양자협력의 문제로 나타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의 동북진흥, 북한의 지방발전, 로시아 극동개발, 한국의 평화공존 구상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두만강 유역은 중국 동북지역, 북한 나선지역, 러시아 극동지역이 맞닿아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기반을 가진 다자협력 구상과 연결될 여지가 있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를 동북아 경제지리와 안보질서가 함께 재편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두만강 유역과 나선·훈춘을 둘러싼 접경지역에서의 협력은 중국, 북한, 러시아의 이해가 교차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북방협력 구상과도 연결될 수 있다. 한국은 북방 물류, 접경지역 안정, 보건·환경·재난 대응, 지방정부 협력 등 상호 이익이 분명하고 가시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다자협력 의제를 통해 한반도 평화공존의 실질적 기반을 넓혀갈 필요가 있다.
넷째, 제재 체제와 북중협력 확대가 병행되는 환경에 대비해야 한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비핵화와 유엔의 체제에 대한 기존 입장을 공식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거나 대북제재 체제를 공개적으로 부정하지도 않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은 대북 제재와 압박에 반대하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해왔고,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발전전략 연계, 접경지역 협력, 인적교류, 관광, 보건의료, 과학기술 협력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추진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국제사회의 제재 체제의 공식적 틀은 유지하면서도 실제 협력 공간은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향후 북중관계는 제재 유지와 해제의 이분법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국은 제재의 공식적 틀은 유지되지만 실제 협력 공간은 확대될 수 있는 상황을 전제로, 북중협력의 확대가 북한의 경제·사회 구조와 동북아 지역협력 질서에 미칠 영향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 본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File